양성희 심리치유센터 대표 
양성희 심리치유센터 대표 

[고양신문] 산에서 나무하던 시절, 사내는 도끼 들고 지게 메고 산을 다녔다. ‘산에’ 다니던 아이는 그래서 ‘사내’가 되었다고 한다. 요즘도 아파트 정원 한구석을 보면 나무꾼이 다녀간 듯 나뭇가지들을 크기별로 야무지게 묶어서 쌓아놓은 것을 볼 수 있다. 연세 드신 경비원이 많다 보니 어릴 적 나무하던 습관이 배어 그렇게 해놓은 것 같다. 

그런데 노끈이 없던 시절 사내는 나무를 어떻게 묶어 내려왔을까 궁금해졌다. 아마도 사방에 널린 칡넝쿨이 훌륭한 끈 노릇을 했지 싶다. 풀이 무성한 곳이면 지금도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게 칡넝쿨이다. 칡넝쿨은 질겨서 굵은 나무든 가는 나뭇가지든 단단히 묶을 수 있었을 것이다. ‘묶을 속束’ 자를 보면 나무를 묶은 모양이다. 나뭇가지들을 묶으면 빠르게 달릴 수 있으니 ‘빠를 속速’ 자가 되었다. 그래서 장에 내다 팔기도 하고 집 한켠에 쌓아두었을 것이다. ‘두려울 송悚’을 보면 나뭇가지가 묶이듯 마음이 묶인 것이 두려움이라고 되어 있다. 죄송하다, 송구하다는 말은 그러한 마음이다.  

불안한 마음은 마음이 묶인 상태다. 과거에 묶인 채 한 발짝도 더 나아가지 못하는 것이 불안장애다. 불안증을 겪으면 머리도 아프고 소화가 안되고 잠도 잘 수 없으며 늘 피로하다. 불안한 병은 긴장이 풀리지 않는 병이다. 결국 몸이 못 버티고 만다. 그런 사람을 반기는 병원도 많고 절도 많고 교회도 많지만 그러나 일단 나가서 걸어 보라고 권하고 싶다. 내 마음을 결박한 끈을 빼내어 운동화에 묶는 것이다. 간의 마음에 묶였던, 뇌에 묶였던, 심장에 묶였던 끈들 말이다. 너무 오랜 세월 묶여 있었다면 풀고 사는 게 어색할 것이다. 그러면 자신에게 대화를 시도해 보라. “OO야, 오늘 한번만 풀어보자”라고 달래고 어르며 실랑이를 하는 것도 재밌는 경험이다. 걷다보면 어떤 여인은 머리에 예쁜 끈을 묶어 자신이 돋보이도록 가꾼 것도 볼 것이다. 누군가는 꽃을 화사한 끈으로 묶어 선물할 마음에 얼굴에 미소가 가득할 것이다. 끈은 참 쓸모와 무용(無用)의 경계를 넘나드는 재주가 있다.
 
젖먹던 시절보다 더 거슬러 올라가 보면 나는 누군가의 뱃속에서 탯줄로 연결되어 있었다. 그곳은 완전했으나 밖으로 나와서는 사정이 달랐다. 탯줄은 사라졌고 배고픔과 공포를 달래주는 대상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불안증은 생애 초기를 어떻게 보냈느냐로 가름이 난다고 볼 수 있다. 젖은 기저귀를 갈아주는 손길, 우는 나를 안아주는 손길, 나를 보고 웃는 얼굴이 편안함을 심어준다. 엄마 대신 아빠가 해줄 수도 있고 할머니나 이모가 해줄 수도 있다. 그렇지 못한 시기를 보냈을 수도 있다. 그래서 우리는 친구를 사귀고 연애도 하고 소속이 되고 다정한 사람을 그리워한다. 
  
사월초파일 부처님 오신 날이 다가온다. 방방곡곡 오색찬란한 등의 향연이다. 사월초파일에 절에 가는 신도들은 어떤 기도 제목을 올리고 올까. 물가가 올라 등값도 올랐다고 하니 기도거리도 많아지는 게 인지상정이다. 절대자에게 가족의 송사를 상소히 고하고 염원을 담았을 터이다. 사람은 본디 불안한 법인데 경기가 나빠지고 있으니 살기 팍팍한 세상은 불안함이 커졌을 수밖에 없다. 우리 고3 아이 인서울 하게 해주세요, 우리 남편 정년까지는 꼭 다닐 수 있기 바랍니다, 이번에는 취직하게 해주세요, 우리 아버지 좋은 의사 만나서 수술 잘 받고 완치 되게 해주세요, 얼마 전에 저 세상으로 떠난 우리집 막내딸 해피가 꿈에 나와서 아프다고 하니 건강을 빌어요 등등 기도를 보면 우리의 불안이 고스란히 들어가 있다.

만일 당신이 속한 단체의 지도자가 자꾸만 무서운 말을 한다면 의심을 해라. 천국 못 간다는 설교를 자주 하는 목사는 자신의 불안 때문에 겁주는 설교를 했을 수 있다. 공부 안 하면 망하는 인생이라도 된다는 듯이 다그치는 부모가 있으면 역시 불안감에 묶여서 그랬을 수 있다. 사람이 제일 최고의 약이고 최선이다. 
  
당신이 만일 마음의 끈을 풀면 그 끈이 오누이의 동앗줄로 쓰임이 바뀌어 해와 달이 되게 해줄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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