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욱의 시민생태이야기 에코톡]
국제 철새의 날, 생물다양성의 날, 습지주간…
“생명 보전을 위해, 이제는 행동하자!”
기후변화·개발 맞서 강력한 국제적 메시지
장항습지 람사르등재 기념일도 기억했으면
[고양신문] 아 잔인한 달 오월이여….
노동절을 기점으로 가정과 스승과 성년을 기념하느라 정신이 없는 오월, 그런 와중에 철새와 생물다양성과 벌과 습지를 기념하는 날이 들어있다. 이리도 정신없으니 어찌 잔인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더욱 슬픈 것은 평소 생태와 생물다양성에 관심이 있던 사람들조차 이런 정신없는 시국에 생명의 기념일이 있는지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이미 10년 전 나고야에 모인 유엔회원국들은 이른바 ‘생물다양성 주류화’를 결의했다. 말하자면 모든 분야에 ‘생물다양성’을 넣어서 사람들이 그 중요성을 알게 하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언감생심, 말 잔치뿐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꽃과 새들이 넘쳐나고 벌과 나비가 춤을 추며 물가엔 물살이동물들과 온갖 개구리들이 야단법석을 떠는 이런 생명 넘치는 5월에 꼭 기억해야 할 생명기념일이 있다. ‘철새들의 날’과 ‘생물다양성의 날’이다. UN 지정 기념일이다. 여기에 우리나라는 두 기념일 사이에 습지주간을 추가해서 철새와 생명과 습지에 몰입하는 기간을 가졌다.
매년 5월과 10월 둘째 주 토요일을 기억하자. UN이 정한 ‘세계 철새의 날’이다. 약자로 WMBD(World Migratory Bird Day)라고 한다. 살아있는 모든 생명에게 물이 필요하듯이 물과 습지는 먼 길 이동하는 철새에겐 목숨 줄이다. 그래서 올해 철새의 날 주제는 “새의 삶을 유지하는 물”이었다. 간단한 실천만으로 철새들을 살릴 수 있다. 마른 산에 조그만 옹달샘을 만들고 집마당에 조류 물통만 두어도 새들을 살릴 수 있다.
사실 계절의 기후에 따라 움직이는 철새들은 기후위기에 막닥뜨려 생존을 위협받고 있다. 사정은 이렇다. 철새를 여름철새(Summer visitor), 겨울철새(Winter visitor), 통과철새(Passage visitor)로 나눈다. 그런데 요즘 같은 기후 위기 시대에 계절의 변화가 뒤죽박죽이다. 그러니 기후에 순응해온 철새의 삶도 녹록지 않은 것이다.
올 5월 습지풍경만 봐도 그렇다. 원래 겨울철새로 한반도를 찾아왔던 큰기러기와 쇠기러기가 5월 중순이 넘었는데도 아직 장항습지를 떠나지 않았다. 번식지인 툰드라까지 충분히 날아갈 정도로 건강해 보이는 녀석들의 기후시계가 고장났음을 직감했다. 또한 일본과 순천만 등지에서 월동하고 3월이면 시베리아로 올라가는 흑두루미 한 쌍이 5월 초인데도 한강하구변 농경지에 머물렀다. 어디 그뿐이랴. 남중국에서 겨울을 나고 3월이면 한반도를 거쳐 북쪽 번식지로 올라가는 통과철새인 개리는 5월 말인데도 김포 조강리 수변에서 보였다.
여름철새는 어떤가. 동남아에서 겨울을 나고 올라오는 저어새들은 올해도 평년보다 일찍 유도에 둥지를 틀고 백로와 가마우지들과 경쟁하고 있다. 매 조사 때마다 마주치는 이런 상황에 시민과학자들은 착잡하기만 하다. 생태학자들의 경고는 더욱 심각하다. 기후위기가 개별 생물종만이 아니라 먹이연쇄와 같은 상호관계에 영향을 주어 생태계 전체가 위험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저어새의 경우 갓 태어난 새끼들은 위장의 문제로 논에서 미꾸라지 같은 담수성 먹이를 먹어야 하는데, 너무 일찍 번식을 시작하면 논에 물을 대는 시기와 맞지 않을 수 있다. 결국 새끼들의 사망률이 높아져 저어새 번식이 실패로 끝날 우려가 있는 것이다.
또한 5월 22일은 ‘세계 생물다양성의 날’이다. 영어 약자로 IBD(International Biodiversity Day)라고 한다. 올해 IBD의 주제는 가히 혁명적이다. 영어 원문은 “From Agreement to Action: Build Back Biodiversity”이다. 직역하면 “합의에서 행동으로: 생물다양성 재건”이다. 국제사회가 협약만 하고 행동하지 않으니, 말만 하지 말고 생물다양성 보전에 행동하라는 것이다. 요즘같이 우리 국토 곳곳에서 개발의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생물다양성 소실의 징후가 뚜렷한 시절에, 이 얼마나 강력한 메시지인가. 이 땅의 생물다양성을 지키는 시민들에게 강력한 응원가이자 서식지를 훼손하고 있는 개발 당국에겐 비수가 될 것이다. 우리나라에선 철새의 날과 생물다양성의 날 사이를 습지주간으로 기념하고 있으니 이 또한 기억해 둘 만한 일이다.
사람들이 가정의 달 5월 가족나들이 길에, 밥상 위에서, 주고받는 선물에서 생물다양성을 느끼고 이야기할 수 있게 하는 방법은 없을까. 예를 들면 이태 전 5월 20일 세계 벌의 날에 벌과 수분매개자들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 안젤리나 졸리는 온몸에 벌을 붙이고 사진 한 장을 찍었다. 전 세계는 즉각 반응했고, 수분매개자의 중요성을 많은 이들에게 각인시키는 효과를 가져왔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와중에도 필자는 상상한다. 고양에 사는 BTS의 RM이나 가수 이무진이 나와서 “모든 살아있는 생명은 다채롭고 아름답습니다. 장항습지의 생물다양성은 아름다움입니다”라고 한마디만 해준다면, 파주에 사는 윤도현 가수가 생명의 달 5월을 기념하여 “한강하구습지 생명의 다양함은 생태계가 건강하고 안정하다는 것입니다”라고 한마디만 해준다면…. 참 상상만으로도 즐거운 일이다.
그리고 꼭 기억해야 할 5월의 기념일 하나 더! 장항습지가 람사르습지로 다시 태어난 날이 5월 21일이다. 얼마 전 막을 내린 드라마를 흉내 내어 기억하자.
“똑바로 읽어도, 뒤로 읽어도 장항습지 람사르 등록일은 21년 5월 21일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