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수 소설가의 ‘텃밭에서 세상읽기’
[고양신문] 여름이 시작되면 모든 농부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온 밭을 뒤덮는 풀들과 한바탕 씨름을 벌이는데 그 결과는 매번 풀들의 완승이다. 호미나 낫으로 김을 매고 지나가면 그 뒤에서는 새로운 풀들이 까꿍, 고개를 내민다. 낙엽을 두툼하게 덮으면 풀들이 자라는 걸 어느 정도 막을 수는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풀들은 낙엽을 뚫고 맹렬한 기세로 자라기 시작한다. 예초기를 돌려도 며칠만 지나면 풀들은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그 자리를 점령한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보고 있으면 텃밭의 주인은 애초부터 풀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지혜로운 농부는 풀과 싸울 생각을 하는 대신 풀에 대해서 공부하고 풀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찾는다. 왜냐하면 그 속에 해법이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모든 풀들은 사람을 괴롭히기 위해서 자라는 게 아니라 그 자리에 꼭 있어야 하기 때문에 싹을 틔운다. 풀들이 자라는 모습을 오래 들여다보면 풀들도 사람처럼 생각을 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종종 있다.
열흘 전쯤 농장 주차장에서 느티나무 쪽으로 오는 길에 설치한 터널 안에 넝쿨작물들을 심기 위해 낫으로 김을 맸다. 터널 안은 늘 사람들이 지나다니기 때문에 흙이 단단하게 다져져있고 거름기도 없어서 가장 척박한 환경에 놓여있다. 그래서였을까, 풀뿌리를 낫으로 슥 베는데 풀뿌리가 잘리는 대신 수도 없이 뒤엉킨 풀뿌리들이 융단처럼 들어 올려졌다. 그렇게 걷어낸 풀뿌리들을 뒤집어놓고 자세히 들여다보니 아, 이래서 인간은 절대로 풀을 이길 수 없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보통 텃밭에서 자라는 풀들과 달리 터널 안에 자리 잡은 풀들은 종을 가리지 않고 마치 어깨동무를 하듯 서로가 서로의 뿌리를 단단히 붙잡고 있었다. 그러니까 터널 안에서 자라는 수십 종의 풀들은 그들만의 언어로 대화를 나누면서 연대를 통한 공생이라는 생존전략을 짜고 그 전략에 따라 하나의 거대한 뿌리를 만들어낸 셈이다. 그리고 그 뿌리 밑에서는 또 다른 새싹들이 흙을 밀고 올라올 준비를 하고 있었다.
십 수 년 간 농사를 지어오는 동안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경이로움 앞에서 나는 잠시 말문을 잃었다.
풀들이 흙을 살리는 일등공신이라는 사실은 진작부터 알고 있었지만 서로 다른 종류의 풀들이 모두를 위해서 연대하고 협력한다는 것까진 미처 몰랐었다.
자연을 거스르지 않는 방식으로 농사를 짓다보면 풀이 새롭게 보일 때가 참 많다. 이른 봄부터 늦은 가을까지 풀들은 끊임없이 자라나는데 텃밭에서 만나는 풀들은 해마다 그 종류가 조금씩 달라진다. 그건 흙의 생태계가 계속해서 바뀌고 있다는 이야기이다. 그러니까 풀들은 흙의 상태가 어떤지 스스로 점검하고 판단하면서 내년엔 어느 곳에 자리를 잡을지 가늠을 해보고 그 계획을 다른 풀들과 공유하면서 전체적인 큰 그림을 씨앗에 새기고 있을지 모른다.
그래서 선조들은 씨앗 한 알에 온 우주가 들어있다고 얘기한 걸까.
농사 초창기 때 나는 김을 맬 때마다 매번 풀에게 미안합니다, 말을 건네곤 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그 마음을 잃어버렸다. 어쩌면 나는 그 마음을 잃어버리면서 다른 많은 것들도 함께 잃어버렸는지 모른다.
그래서일까, 풀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비칠지 문득 궁금해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