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욱의 시민생태이야기 에코톡]

밀물·썰물 넘나들던 장항습지 갯골이었다가
신도시 수변공원·빗물수로로 변신한 한류천
칡부엉이·왕별꽃 등 희귀동식물 연이어 발견
남·북·일·중·러 함께 공동연구 진행됐으면…

한강하구 갯골이었다가 신도시 빗물수로로 정비된 한류천. [사진제공=에코코리아]
한강하구 갯골이었다가 신도시 빗물수로로 정비된 한류천. [사진제공=에코코리아]

[고양신문]우리동네에는 한류천이라는 묘한 이름을 가진 하천이 있다. 원래는 한강하구 장항습지로 이어지는 갯골 중 하나였다. 밀물 때는 서해 바닷물이 밀고 들어왔고, 썰물 때는 갯벌처럼 바닥이 드러나던 곳이었다. 신도시가 생기면서 밀물이 올라오지 못하게 막혔고, 비가 오면 도시의 빗물이 모여 강으로 흘러나가는 빗물받이 수로가 되었다. 그러다가 한류월드라는 브랜드를 가진 도시를 조성하면서 꽤 멋들어지게 수변을 정비했다. 물을 가까이 즐기는 공원이 만들어지고, 사람들이 보기 좋아라 할 시설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도시민들의 친수생활을 위해 나무와 꽃이 심어졌다. 하천이라 부르지만 실은 친수공원이 되었다. 그렇게 한류천은 자연과는 멀어지는 듯 보였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한류천이 생태를 탐(探)하는 사람들에게 생태맛집으로 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첫 소문은 천연기념물 칡부엉이였다. 대포같은 큰 사진기를 들고 하루 종일 한류천 나무 위를 쳐다보는 사람들이 즐비했다. 수도권은 물론 전국에서도 탐조가들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다른 습지에서는 수백미터 떨어진 숲에서 한두 마리 보면 다행인 칡부엉이가 바로 코앞에서 낮잠을 자고 있으니 이 얼마나 좋은 기회인가. 

한류천변에 등장해 전국의 사진작가들을 불러모은 칡부엉이. [사진제공=에코코리아]
한류천변에 등장해 전국의 사진작가들을 불러모은 칡부엉이. [사진제공=에코코리아]

그런데 왜 칡부엉이들은 한류천을 찾아 왔을까? 오랜기간 탐조활동을 벌인 시민과학자들 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주변에 쥐가 많아서 그럴거예요. 빈집과 버려진 밭이 많으니까요.” 곧 들어설 장항지구이야기다. 칡부엉이를 한류천에서 볼 수 있는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한류천을 유명하게 했던 또 하나의 주인공은 왕별꽃이다. 몇 년 전부터 백두산에 사는 식물이 갑자기 한류천에 나타났다며 야생화계에서 난리가 났다. 소문은 순식간에 전국으로 퍼져 이 귀하신 분을 알현하겠다고 사진가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여차저차 시간이 지나고 국립생물자원관에서 유전자분석을 해서 유전자은행에 일산 개체들의 유전자를 등록했다. 아마도 고양시에서 채집된 식물이 전 세계 유전자계에 올라간 것은 처음이지 않을까 싶었다. 

한류천변에서 발견된 또하나의 희귀식물 왕별꽃. [사진제공=에코코리아]
한류천변에서 발견된 또하나의 희귀식물 왕별꽃. [사진제공=에코코리아]

더 신기한 일은 왕별꽃이 자생하는 북한, 러시아, 일본, 중국 등에서는 아직 이 종의 유전자를 등록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 유전자만으로는 아직 족보를 따지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원래 한류천에 자생을 하였는지, 아니면 주변국가들에서 묻어 왔는지 현재로서는 기원을 알 길이 없다. 가장 우선 진심으로 알고 싶은 것은 정말 백두산에서 온 것인가이다. 이를 위해서 우리나라와 북한의 학자들이 서로 손잡고 공동연구를 해보면 금방 답이 나올 것이다. 

우선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원래 일산 자생종이라는 것이다. 대체로 서식지가 매우 좁아서 조사가 되지 않은 은둔종(cryptic species)들이 과학이 발전하면서 새로 발견되는 경우이다. 시민과학이 발달할수록 특정 지역의 종목록이 증가하는 경우가 왕왕 있으니 꽤나 신빙성이 있는 추론이다. 이러한 가설을 검증하는 방법도 비교적 수월하다. 자생종이 아니라면 유전자가 단순할테니 여러 개체에서 유전자 다양성을 검사하면 될 것이다. 

두 번째 가설은 한류천을 조성할 때 조경수목이나 토양에서 우연히 섞여서 들어왔을 가능성이다. 조경회사들이 원예용으로 화초를 수입하여 재배하다가 조경수목을 이식하는 과정에서 우연히 퍼진 것이란 이야기다. 이 경우도 유전자 다양성 검사를 해서 확인할 수 있다.  

세 번째 가설은 별꽃류 식물들의 씨앗이 새모이로 사용하기 때문에 사료로 수입될 때 왕별꽃의 씨앗이 섞여 있다가 확산되었을 가능성이다. 시중에 유통되는 가금류 사료를 구입한 인근 가금농장에서 우연히 한류천으로 유입되었을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실제로 왕별꽃과 같은 속의 별꽃(S.media) 씨앗은 치킨위드(chickenweed)로 시중에서 유통되고 있으니 가능성이 높다고 할 것이다.  

왕볓꽃 자생지를 보호해놓은 울타리. [사진제공=에코코리아]
왕볓꽃 자생지를 보호해놓은 울타리. [사진제공=에코코리아]

이러한 모든 가능성을 확실하게 해결하기 위해서는 한·중·일·러·북한의 샘플을 공동으로 분석해서 근연관계를 밝히고 그 성과로 유전자은행에 왕별꽃의 유전자를 공동으로 등록하는 일이다. 요즘같이 동북아시아가 긴장상태인 상황에 왕별꽃 족보찾기 프로젝트, 참 아름다운 꿈이 아닌가.

왕별꽃이 보고 싶었지만 몇 년 꾹 참다가 얼마 전 한류천을 찾았다. 별처럼 앙증맞게 여러 갈래로 갈라진 흰 꽃잎과 작은 꽃술을 보며 아이들과 백두산 꽃산행을 갔었던 시절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그러다가 혹시나 해서 좀 더 한류천을 조사하다 보니, 희귀식물인 물여뀌가 예쁘게 고개를 들고 꽃을 피워 올리고 있었다. 물여뀌도 경기북부에서는 좀처럼 만나기 어려운 종인데 형태가 내몽골에서 봤던 종과 흡사했다. 혹시 이 종도 우연히 국경을 넘어 온 것은 아닐까. 아니면 원래 살던 종일까. 장항습지의 갯골의 일부였던 한류천의 놀라운 능력은 어디까지일까. 사뭇 궁금해진다.  

예쁘게 꽃을 피워 올린 물여뀌. [사진제공=에코코리아]
예쁘게 꽃을 피워 올린 물여뀌. [사진제공=에코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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