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빛시론]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고양신문] 0.78! 금방 아셨을 것이다. 2022년 한국사회의 합계출산율이다. 같은 해 25만명이 채 안되게 태어났다. 초저출산과 초저출생이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 그러다보니 이제는 어딜 가더라도 ‘어린 아이가 보이지 않는 세상’에 대한 걱정을 듣는다. ‘심각한 인구문제’를 걱정하는 모임도 여기저기에서 열린다. “한반도에서 2750년이 되면 사람이 사라질 것이다”라는 어느 영국 인구학자의 말이 유령처럼 사회에 떠돌고 있다. 그래서 0.78이 더 공포스럽게 대중의 마음을 파고드는 듯하다.
인구로서 사람 수의 변화를 수학 공식에 넣으면 어느 순간 0이라는 결과가 나올 수 있다. 그러나 개인으로서 사람의 일생에 눈을 돌리면 숫자로써 설명할 수 없는 다양한 모습이 펼쳐진다. 푸른 눈, 검은색 피부, 금발머리 등을 가진 다양한 한국인이 한반도의 또 다른 공간을 채울 것이다. 수학 공식으로 일반화시킬 수 없는 다양한 삶의 양상이 펼쳐질 수 있다. 오히려 700년이라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발생할 수 있는 초자연적 재난이나 전쟁 등 상황 등이 한반도뿐 아니라 기존의 어떤 인구 밀집 지역을 비워버리는 요인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수학 공식’ 없는 예측이 더 타당할 것이다.
지금까지 한국사회는 인구 변화를 수학 공식에만 의존하는 접근을 했다. 숫자로서 인구를 국가가 성공적으로(?) 관리한 역사적 경험도 있다. ‘MR사업’이 상징하는 국가 지원 낙태시술 등 모든 수단을 동원했던 산아제한정책이 성공하였다. 그래서 저출산 현상이 정책적 주제로 떠오른 2000년대 이후에도 계속 숫자로서 인구를 관리하는 정책, 즉 인구정책적 대응을 하였다. 기혼부부이든 청년이든 국가가 지원을 확대하면 출생아 수가 늘어날 것이라는 ‘투입 대비 산출’ 공식에 대한 믿음을 지켜왔다. 인구정책의 지향이 숫자를 줄이는 산아제한정책에서 늘리는 출산장려정책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그 결과가 0.78이다.
이렇게 20여년을 보내는 사이 놓친 게 있다. 가족정책이다. 한국에는 가족정책이 없다. 여성가족부가 있고, 이 여성가족부에서 정기적으로 내놓는 건강가정기본계획, 다문화가족정책 기본계획이 있는데 무슨 소리냐고? 거창한 가족정책 관련 기본계획을 내놓는 여성가족부에서 실제로 할 수 있는 가족정책은 한부모ㆍ다문화가족 지원 정도 수준이다. 건강가정기본계획은 가족 다양성을 무시하는 개념으로서 비판도 받는다.
반면 가족정책으로서 영유아기 보육 지원은 복지부, 초등돌봄은 교육부, 부모의 일ㆍ가정양립은 고용노동부에 가 있다. 0.78의 이유를 물어보면 일자리가 없어서, 마땅히 아이를 낳고 살 집이 없어서, 극단적인 경쟁사회에서 아이 낳아봤자 희망이 없어서 등등 백만 가지 답이 나올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이 있다. 아이는 두 사람이 만난 관계에서 탄생하고 성장한다는 점이다. 두 사람이 만나고 아이가 태어나면 가족이 된다. 아이의 탄생과 성장 과정에서 부모가 책임을 다할 수 있도록 다양한 지원을 하는 정책이 가족정책이다.
가족이 모이면 인구가 되지만, 우리는 지금까지 인구를 보면서 가족을 보지 않았다. 가족정책을 총괄하는 부처가 명칭만 있을 뿐 역할이 없다. 가족을 거부하는 사람들은 늘어만 간다. 이른바 정상가족이든, 다양한 가족이든 가족을 이루어야 아이가 나온다. “가족이다”로 쓰여있는데 자꾸 “인구다”로 읽으니 여러 다양한 시도들이 사람들의 가슴에 와닿질 않는다.
인구정책으로서 비혼출산 지원이 아니라 가족정책으로서 비혼출산 지원이다. 국가적 차원에서 인구 규모 관리는 중요한 정책 영역이다. 인구정책은 그래서 필요하다. 그러나 사람들은 인구가 아닌 가족으로서 아이를 낳는다. 가족을 이루는, 이루고 싶어하는 혹은 거부하는 사람들의 다양한 마음에 다가가는 가족정책이 등장하지 않는 이상 0.78의 공포는 계속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