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의식 무디게 만드는 ‘익숙함’과 결별해야

[고양신문] 가지고 다니던 가방이 낡아서 여닫는 솔기가 터져버렸다. 괜찮은 가방을 구매해야겠다고 생각하니 텔레비전 드라마의 내용보다는 등장인물이 매고 있는 가방에 더 눈이 간다. 버스나 지하철 안에서도 마찬가지다. 심지어 매일 만나는 직장동료가 늘 가지고 다니던 가방이라고 하는데 마치 처음 본 느낌까지 든다. 가방에 관심을 가지니까 한동안 사람들이 가지고 다니는 가방만을 유심히 보게 된 것이다. 

이런 경우는 실제 내가 하는 일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산업재해 예방에 관련된 업무를 하고 있다 보니 여행지에 가서도 안전표지의 부재나 허술한 안전조치를 먼저 지적하다가 분위기를 망친다며 동행인들한테서 타박을 듣기도 한다. 분명히 내 눈에만 그런 요소가 보이는 게 아닐 텐데 다른 이들은 관심이 없기에 보이지 않는다. 사물이나 장소를 볼 때 그 사람의 주요 관심사가 무엇이냐에 따라 보이는 것이 달라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사업장에서 산업재해로 사망자가 발생하면 안전보건공단은 고용노동부와 함께 사고조사를 하게 된다. 안전관리가 엉망이어서 지금까지 사고가 나지 않은 것이 오히려 이상한 사업장도 있지만, 어떤 사업장은 ‘안전관리를 잘 하고 있어 설립 이후 수십 년 동안 사망사고가 없었고, 또 사고사망자 역시 오랜 경력을 가진 근로자라 이런 사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라며 억울함을 하소연한다. 

그러나 실제로 안전관리를 잘 하고 있었는지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런 하소연과는 거리가 먼 경우가 많다. 사업장에서 안전관리는 안전서류만 형식적으로 작성해 놓거나, 특히 직원과 사업장 환경에 변화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안전교육 내용이나 작업공정, 위험 기계 안전점검 등을 전과 똑같이 유지하고 있는 사업장을 발견하곤 한다.

지난해부터 중대재해 발생 시 경영자에게 책임을 묻는 중대재해처벌법이 발효되면서 많은 사업장이 경각심을 갖고 안전관리에 큰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런데 경영자의 안전의지를 증명하는 수단으로 안전 관련 서류를 비치하면서 이런 서류작성을 귀찮은 행정작업으로 여기는 사업장도 있다. 지금까지 사고가 없었으니 앞으로도 없을 것이라 낙관하며 사업장과 작업현장에 대한 불안전 요인 파악과 개선 그리고 실효성 있는 직원교육에 대해서는 여유가 생기거나 사업장 환경이 더 좋아진 이후에 하겠다고 미루는 곳도 많다. 

2022년 사고사망자 874명 중 60세 이상의 근로자가 380명이라는 통계에서 보듯 경력이 안전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경험과 연륜에서는 절대 뒤지지 않을 연령대지만, 오히려 ‘익숙함’이 안전의식을 더 무디게 만들어 안타까운 사고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이삼희 안전보건공단고양파주지사 교육보건부 부장

안전불감증보다 더 위험한 것이 안전 무시(無視)다. 불안전한 요인에 대한 간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정부의 규제나 처벌이 두려워서가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해 꼭 필요한 것이 바로 안전이다. 산업재해를 줄이며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서는 익숙한 환경과 사물일지라도 안전을 기준으로 ‘낯설게’ 바라보는 안전시각을 키워야 한다.

이삼희 안전보건공단고양파주지사 교육보건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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