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수정 기자의 공감공간] LP 음악감상실 ‘레너드’

아날로그 감성과 최적의 감상 설비 갖춘
마니아들 사이 입소문 자자한 숨은 명소
LP만 8000여 장… 지금도 꾸준히 사 모아 
음악을 사랑하는 이들과의 소중한 추억들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 8000여 장의 LP.위치를 정확히 기억하고 있어 손님이 신청하면 바로 꺼낼 수 있다고 말한다.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 8000여 장의 LP.위치를 정확히 기억하고 있어 손님이 신청하면 바로 꺼낼 수 있다고 말한다.

[고양신문] 몇 년 전에 ‘응답하라 1988’이란 드라마가 큰 인기를 누렸다. 주요 배경으로 나오는 단독주택이나 생활용품들,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은 그 시절을 살았던 사람들에게는 아려한 추억을 떠올리게 하고 MZ세대들은 타임머신을 타고 그 시대를 가본 듯 드라마를 즐겼다. 특히 에피소드에 딱 맞게 흘러나오는 그 시절 인기가요들은 시청자들이 드라마에 푹 빠지도록 만들어주었다.

라디오를 통해 음악을 듣고, 레코드가게에서 카세트 테이프나 LP판을 사서 모으던 아날로그 시절은 오랜 추억이 되었지만, 드라마 영향 때문인지 복고풍이 유행하면서 LP 음악 감상실이 몇 년 사이에 많이 늘어났다.

덕양구청 후문 쪽 동네 상가 안에 자리한 ‘LP 음악감상실 레너드’는 음악을 사랑하는 마니아층에서는 유명한 동네의 숨은 보물 같은 공간이다.

밴드의 흑백사진필름이 붙어있는 음악 감상실의 문을 열고 들어가면 1층과 1.5층으로 만들어진 독특한 구조가 나타나 몇 개의 계단을 올라가야 본모습을 만날 수 있다. 한쪽 벽면에는 8000장이 넘는 LP가 빽빽하게 가득 꽂혀있고 맞은편에는 여러 명이 앉을 수 있는 테이블 네 개와 아기자기한 인테리어 소품들, 반가운 포스터들이 붙어있어 시선을 사로잡는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보이는 모습. 좁은 계단을 올라가면 새로운 세계가 펼쳐진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보이는 모습. 좁은 계단을 올라가면 새로운 세계가 펼쳐진다.

음악이 너무 좋아 음악밖에 모르던 시절

새로운 음악을 다양하게 듣고 싶어 젊은 시절 미8군에서 디제이 생활을 한 적이 있다는 주인장은 어렸을 때 집에서 형들이 듣던 팝송을 접하며 음악에 빠져들었고 주산학원 선생님이 들려줬던 팝송이 알아듣지 못해도 너무 좋았다면서 감수성이 가득했던 그 시절 추억에 잠겼다.

“너무 음악이 하고 싶어 수업을 빼먹고 몰래 음악학원에 갔다가 아버지한테 들통이 나서 엄청 혼이 났어요. 그 당시에는 음악을 한다고 하면 딴따라고 해서 많이 반대를 했거든요. 이후 연주자의 꿈은 접고 공부하면서 음악을 듣는 걸로 만족하며 지냈죠.”

음악 감상실 곳곳에 붙어있는 다양한 포스터.
음악 감상실 곳곳에 붙어있는 다양한 포스터.

평범한 직장인으로 20여 년을 보낸 그는, 가슴에 품었던 음악에 대한 꿈을 펼치고 싶어 2000년대 초반 일산에 LP 음악 감상실을 열었다. 그렇게 일산에서 10년 정도 운영하다가 다시 화정에 ‘LP 음악감상실 레너드’를 열었고, 벌써 10여 년이 되어간다.

“알고 지내던 동생이 ‘레너드 스키너드(Lynyrd Skynyrd, 미국의 대표적 서던 록 밴드)’를 굉장히 좋아했어요. 그런데 그 동생이 갑자기 세상을 떠났고 자꾸 생각이 나서, 다시 가게를 열게 되면 그 이름으로 해야지 생각했죠.”

주인장 못지않게 음악을 사랑하는 아내(뒷모습)가 함께 운영하고 있다. 칵테일과 간단한 안주를 만든다.
주인장 못지않게 음악을 사랑하는 아내(뒷모습)가 함께 운영하고 있다. 칵테일과 간단한 안주를 만든다.

LP만의 고유한 소리에 귀 기울이다

이곳을 찾아오는 손님들은 20대부터 50대까지 다양하다. 음악을 전공하는 20대들도 꽤 있어서 주인장에게 연주영상을 보여주며 조언을 구하기도 하고 좋아하는 LP음악을 함께 듣는 즐거움도 나눈다. 주로 70~80년대 록, 올드팝, 가요를 많이 신청하고 손님들이 새로운 노래를 듣다가 물어보면 해박한 지식과 경험으로 자세하게 설명도 해준다.

무엇보다 음악 감상에 최적의 환경을 만드는 데 공을 들였다. 앰프는 메킨토시 240, 스피커는 알텍 랜싱 MRⅡ594로 구성해 주인장이 구현하고 싶은 레너드만의 음색을 만들었다.

“LP 음악감상실은 LP를 틀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가게에서는 거의 LP로 음악을 들려주는데 정말 음반이 없는 경우에만 CD나 PC로 들려줘요. LP에는 아날로그 감성과 따듯한 맛이 있거든요. 컴퓨터로 들을 것 같으면 굳이 LP 음악감상실에 올 필요가 없잖아요. 그리고 손님들도 LP의 역사에 대해 많이 알았으면 좋겠어요.”

20년 넘게 LP 음악감상실을 운영하고 있는 주인장의 자부심과 뚝심이 느껴졌다.
“주인이 음악을 많이 알아야 손님한테 좋은 음악을 들려줄 수 있다”라는 생각에 항상 새로운 음악을 찾아본다는 그는 “젊은 시절부터 사서 모아놓은 LP가 집에도 많이 있지만 여전히 LP구입하는 데 비용을 쓴다”고 말한다.

 

고마운 얼굴, 잊지 못할 이름들 

오래된 단골들이 많을 것 같다고 묻자 외국 출장 가면 사다 달라고 슬쩍 말해본 LP도 잊지 않고 구해준 손님도 있고, 레너드가 소개된 LP 바에 대한 책을 쓴 손님도 있다며 기억에 남는 손님들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이전 가게에 왔던 손님 중에 미국에 갔다가 1년 만에 돌아와 물어물어 이사 온 가게를 찾아온 분이 있었어요. 그분이 김광석 노래를 너무 좋아해서 미국 가서 듣고 싶다고 하길래 LP 한 장 사서 선물로 줬어요. 그 마음이 고마워서.”

특히 코로나로 힘든 시절을 버틸 수 있었던 건 레너드를 사랑하는 마니아층 손님들이 낮에도 와서 매상을 올려준 덕이라고 한다. 그렇게 음악을 통해 맺은 인연들이 든든한 힘이 되어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는 비결인 것 같다. 자주 이곳을 찾는다는 동네주민은 “다른 LP 음악감상실 여러 곳을 다녀봤지만 음악을 온전히 감상하기엔 최고의 장소”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LP 음악감상실의 이름이 된 ‘레너드 스키너드’ 앨범 자켓.
LP 음악감상실의 이름이 된 ‘레너드 스키너드’ 앨범 자켓.

“나에게 좋은 음악을 듣게 해준 전설의 디제이 전영혁씨, 성시완씨, 그리고 음악평론가 임진모씨에 대해 항상 고맙게 생각해요. 그분들을 통해 음악을 많이 배웠고, 알게 되었어요. 그리고 LP 음악감상실을 운영하던 초창기 때 힘을 줬던 무아레코드 사장 김용남 형, 고인이 된 디제이 김광한 형, 들국화의 마지막 기타리스트 하찌 형 모두 고맙고 지금까지 잘하고 있다고 꼭 안부를 전하고 싶어요.”

이곳에서는 맥주, 양주, 칵테일과 간단한 마른안주를 판매하고 있다. 어두운 조명 아래 아늑한 공간에서 취향에 맞는 술 한잔 즐기며 추억의 LP 음악 속으로 푹 빠져보는 건 어떨까?

LP 음악감상실 ‘레너드’
주소 고양시 덕양구 화정동 908, 코스미온빌 1층
영업시간 오후 7시~새벽 2시(연중 무휴)
문의 031-815-5421, 010-5300-5421

상가 안에서 바라본 LP음악감상실 레너드 모습.
상가 안에서 바라본 LP음악감상실 레너드 모습.
사장님이 써놓은 문구들을 보는 재미가 있다.
주인장이 써놓은 문구들을 보는 재미가 있다.
한쪽 벽에 붙어있는 '춤추기 금지'.
한쪽 벽에 붙어있는 '춤추기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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