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 통합돌봄 시범사업신청 X
시가 의지 갖고 돌봄 주도해야
민·관 협력, 정보수집 과제도

사진은 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습니다.[사진=픽사베이]
사진은 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습니다.[사진=픽사베이]

[고양신문] “우리 노인들은 혼자 집 밖을 나서기가 어려워요. 어찌어찌 현관을 지났다 하더라도 택시 없이는 병원조차 못갑니다. 버스를 타면 되지 않느냐고 하실 수 있지만, 당장 근처 목욕탕도 보조기구 없이는 못가는 마당에 무슨 대중교통을 이용한답니까?”

원흥동에 거주 중인 박수명(78세)씨는 척추 후만증을 앓고 있어 보조기구의 도움 없이는 오래 걷기 어렵다. 자주 찾는 병원들이 위치한 화정까지의 가까운 거리도, 불편한 허리 때문에 대중교통 이용이 어려워 늘상 비싼 요금을 내고 택시를 탄다. 몇 번이나 버스를 타려 했지만, 정류장과 버스 사이 도로 틈에 기구가 걸려 난감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박 씨의 상황은 그나마 좋은 편이다. 중증 장애로 스스로 일어설 수 없어 택시마저 타지 못해, 홀로 병을 방치하는 사례도 있기 때문.

그렇다면 상시 돌봄이 가능한 ‘시설’은 어떨까? 고양시정연구원에 따르면 고양시내 노인 의료복지시설(이하 시설)은 총 173곳으로 노인인구가 비슷한 수원시 75곳, 성남시 49곳 등에 비하면 많은 편이다. 그러나 시설은 장기요양등급 1~2등급만이 우선 입소할 수 있다. 일상에서 부분적으로 도움이 필요한 3~5등급 노인들은 입소가 제한된다. 특히 고양시에 거주하는 3~5등급 노인은 1만1524명으로 1~2등급 2569명에 비해 다섯배 가량 많다. 일상생활 속 이동제약에도 불구하고 낮은 등급 때문에 시설도, 병원도 못 가는 경우가 흔하다. 고양시내 시설들도 고양시민 환자는 56%에 불과하며, 나머지는 다른 지자체 시민들이 입소해 있다.

고양시는 현재 초고령 사회에 직면했다. 경기도가 집계한 자료에 따르면 고양시 노인인구는 7월말 현재 16만8125명으로 5년전 12만6572명에 비해 32.8% 정도 증가했다. 3년 뒤에는 21만1532명으로 늘어나 노인 비율이 20.6%에 달할 것으로 고양시정연구원은 예측했다. 그러나 이런 전망이 무색하게도, 고양시에는 ‘복지 사각지대’에 남겨진 노인들을 위한 섬세한 복지제도가 없다. 왕진 한 번에 끝나는 일차원 복지가 아닌 중장기적으로 의료, 주거, 경제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해 궁극적인 삶의 질을 높이는 방법은 없을까?


복지 수혜자 배려한 ‘통합돌봄’…고양시 적극성은 글쎄
이에 대한 해답으로 노인들이 시설이나 집에 홀로 남겨지는 대신, 지역사회 속에서 평소처럼 살아가며 동시에 삶의 질도 높이는 일상 속 녹아드는 새로운 복지가 주목받고 있다. 바로 ‘지역사회 통합돌봄’. 이름에서 유추할 수 있듯, 각 지자체 주도로 보건·고용·교육·주거 등으로 분산된 돌봄서비스를 통합해 더욱 적절한 복지를 제공하는 제도다. 기존 복지가 노인들 스스로 상태를 파악해 필요한 서비스를 직접 찾아 신청하는 것이었다면, 통합돌봄은 시에서 파견한 전문가들이 이들을 직접 방문 진단해 각종 분야의 복지 서비스를 ‘올인원’ 형태로 연결해 준다. 즉, ‘주는 사람’ 아닌 ‘받는 사람’ 위주의 더 친절한 복지인 것.

이러한 장점으로 최근 수요가 잇따라 보건복지부에서는 △1단계 선도사업 △2단계 시범사업 △3단계 지속사업 등 세 단계로 나누어서 지역사회통합돌봄사업을 추진 중이다. 작년을 끝으로 마무리 된 1단계 ‘지역사회 통합돌봄 선도사업’은 통합돌봄이 각 지역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파악하고 장단점을 따져보는 실험적 성격이 강했다. 올해 시작한 2단계 ‘노인의료돌봄 통합지원 시범사업’은 대상자를 노인으로 구체화한 뒤 각 지역 사정에 맞는 시스템을 확립하는 중요한 단계이다. 이때 마련된 지역별 시스템들을 바탕으로 추후 진행될 3단계 ‘지속사업’에서 통합돌봄이 전국적으로 상용화될 예정이기 때문이다.

통합돌봄 시범사업 참여 지자체와 고양시간 노인인구 비교.
통합돌봄 시범사업 참여 지자체와 고양시간 노인인구 비교.

그러나 지난해 경기도 내 노인인구 수 1위를 기록한 고양시의 경우, 1단계 선도사업과 2단계 시범사업 모두 신청조차 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도농복합시로 인한 의료불균형, 특례시라는 위치 등 지역적 특수성을 반영한 ‘고양형 통합돌봄 시스템’을 구축할 기회를 놓쳤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특히 고양시 노인인구는 이번 시범사업에 참여한 부천시 13만711명, 안산시 8만4893명 등 다른 12개 시군과 비교했을 때 월등히 높다는 점에서 의문을 더하고 있다. <그래프>

이에 고양시 복지정책팀장은 “이번 시범사업이 말 그대로 시범적인 성격이 강하다고 판단해 신청을 유보했고, 시스템이 안정화된 후 통합돌봄을 순차적으로 도입할 것”이라며 “아직까진 통합돌봄이 지자체 의무 사항은 아니다 보니 서두를 이유는 없는 것같다”라고 답했다. 이어 “지난 정부까지는 ‘찾아가는 복지서비스’를 추진해 왔지만, 이번 정부 들어 ‘통합돌봄’으로 정책 기조가 바뀐터라 ‘선도사업’에 참여했던 부천·안산과 달리 별도의 전담팀도 개설되지 않은 상태”라고 덧붙였다.

현재 고양시에서 추진 중인 노인 돌봄사업으로는 ‘노인맞춤돌봄서비스’가 있다. 독거·고령부부 등 취약 노인인구를 대상으로 △안전지원 △사회참여 유도 △생활교육 진행 △가사 지원 등이 주 골자다. 

이 밖에도 별도의 연계서비스를 통한 생활·주거·건강 관련 등 돌봄뿐만이 아닌 여러 분야의 지원도 포함돼 있으나 민간후원 방식으로 운영된다는 점, 전문가들의 사전진단이 없다는 점 등 여러 한계가 존재한다. 시 복지과 관계자는 “시가 주체적으로 다른 복지 분야와 유기적으로 협업하는 형태가 아니다 보니 ‘통합돌봄’으로 보기는 어렵다”라며 “종합적인 문제점 해결보다는 ‘정기적인 돌봄’에 초점이 맞춘 것도 사실”이라고 밝혔다.


복지 ‘사각지대’ 극복 위해 시가 ‘컨트롤타워’ 돼야
전문적인 통합돌봄을 위한 가장 큰 숙제는 다름 아닌 ‘정보’다. 시 곳곳에 불규칙하게 분포한 노인들이 처한 상황을 개별적으로 파악한 후에야 의료인·복지전문가가 직접 방문해 조사하는 통합돌봄을 시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방대한 정보수집은 시의 전수조사와 지속적인 현황관리 없이는 불가능에 가깝다. 이후 정보가 일정 수준으로 모였다면, 두 번째로 고민해야 할 것은 ‘전달’이다. 파악한 정보를 민간 의료·복지 전문가에게 소통오류 없이 전달할 수 있는 체계적인 ‘공공전달체계’가 마련되어야 한다. 정보수집과 전달체계마련 두 가지 모두 시의 적극적 주도로 진행해야 하는 기반 작업이다.

지난 2019년부터 작년까지 지역통합 선도사업에 참여했던 부천시의 경우 별도의 ‘통합돌봄팀’을 창설해 시가 정보를 수집해 민간기관에 전달, 총괄지휘하는 위탁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우선, 시 담당 공무원은 정기적으로 도움이 필요한 노인 인구 현황을 조사한다. 이 과정에서 시가 컨트롤타워 역할을 맡아 입수한 정보를 바탕으로 가능한 예산 등을 파악해 필요한 의료·복지서비스를 결정한뒤, 최초 방문할 민간전문가와 공무원을 배정한다. 만약 민간전문가가 이를 수락하면 시 공무원과 동행해 진단한 뒤 이 둘이 복지대상자의 담당자가 되어 추가로 필요한 서비스를 연결해 주는 구조다.


고양형 통합돌봄, 어떻게 시작할까?
그렇다면 이번 시범사업을 놓친 고양시는 어떻게 ‘지역사회 통합돌봄’을 이뤄낼 수 있을까? 가장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것은 시-민간 의료·복지기관 간의 업무협약이다. 당장 시 전체 규모의 통합돌봄 사업에 착수하기보다는 복지영역에서의 민관협력을 늘려나가는 방법이다. 부천시에서 통합돌봄 선도사업에 참여했던 서화한의원 심희준 원장은 “시작 단계에서는 보통 시와 의사회, 한의사회 등민간단체가 양해각서(MOU) 형식으로 협약을 맺고 대상자에 대해 공유하고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식을 많이 사용합니다. 이 과정에서 데이터가 쌓이고, 관련한 조례를 만들어지기 때문이죠”라고 말한다.

현재 고양시의 경우 국립암센터와 ‘암 생존자의 지역사회 통합돌봄 사업’을 위한 MOU를 작년 4월 체결해 현재까지 연계 체계를 이어오고 있다. 대상자가 노인·장애인 등 전반적인 취약계층이 아닌 일부 암 환자에 한정되어 있기는 하지만, △주거 △돌봄·방문간호 △암생존자 통합지지 서비스 지원 등 암 생존자의 특성을 반영한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아울러 일산병원은 시가 아닌 보건복지부 주도 사업이긴 하나 ‘일차의료개발센터’를 올해 4월 개소해 환자의 건강관리부터 △방문 진료 △비대면 관리 △교육 상담 △지역사회 보건의료자원 연계까지 총괄하는 부분적 통합돌봄을 이어오고 있다.

앞으로 개발될 고양시 주도의 통합돌봄에 대해 심 원장은 “새로운 복지서비스를 만드는 것보다 기존의 복지를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가장 중심이 되는 의료서비스와 의료정보들이 잘 활용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라며 “사업 초기에 비해 방문진료도 활성화되고 있으니 방문진료와 복지서비스를 묶어 효율화할 방안을 마련해야 합니다. 주거개선, 방문간호, 식사지원, 가사지원, 방문재활, 방문의료 등등이 묶일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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