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윤의 하류인문학 99

김경윤 인문학자
김경윤 인문학자

[고양신문] 지금까지 썼던 칼럼을 모아놓고 보니 이번이 99번째 글입니다. 매월 한 편씩 썼으니 8년 넘게 칼럼을 연재하고 있네요. 책을 30권 넘게 집필했지만 매월 돌아오는 짧은 칼럼의 마감시간을 맞추기가 쉽지만은 않습니다. 써야 할 소재가 없어서일 때도 있었지만, 써야 할 소재가 넘쳐나도 글이 진도가 나가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특히 요즘에 더합니다.

보통은 수요일 원고마감을 지키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이번에도 수요일을 넘기며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분량을 채우지 못해서 원고마감을 어긴 것이 아니라, 어제 써놓은 글이 격한 감정으로 쓰인 글이라 넘기지 못했습니다. 최근에 정부에서 하고 있는 일련의 행동들은 이성이 이해할 수 있는 정도를 넘어섰기에 제가 쓴 글에 분노를 가득 담게 되었습니다. 칼럼이 성명서나 투쟁문이 될 수는 없기에 새벽까지 격정적으로 써놓은 글을 모두 삭제해버리고 말았습니다. <반공산전체주의당 선언>이라는 제목도 함께 말입니다.

정권은 압수수색이나 영장청구로 싸우고, 국회의원은 입법으로 싸우고, NGO단체들은 로비나 시위로 싸우고, 시민은 촛불로 싸우고, 종교인들은 기도로 싸우듯이, 작가들은 글로 싸웁니다. 그러나 그 싸움이 개싸움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반성이라는 메타인지적 태도를 갖추어야 합니다. 칸트식으로 말하면, 내가 하는 행동이나 말을 고스란히 나에게 해도 괜찮은지를 따져보는 것입니다. 내가 상대방을 비판할 때, 상대방이 같은 방식으로 나를 비판해도 수용하겠다는 역지사지(易地思之)가 필요합니다.

삶에서 끊임없이 이 역지사지를 확인하는 사람을 어른이라 부릅니다. 어른은 어떤 문제를 남 탓으로만 돌리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는 문제가 없었는지를 동시에 점검하는 과정을 밟습니다. 그 역지사지의 최고봉이 공자 말년에 자신에 대해 말했던 ‘종심(從心)’의 경지겠지요. 마음먹은 대로 해도 그 누구에게도 거리낌이 없는, 하늘을 우러러 부끄러움이 없는 경지입니다. 

언감생심, 나 하나 밝히기에도 부족한 내 마음의 불꽃에 분노라는 기름을 부어 환히 밝혀놓은들, 그 커진 불꽃은 나를 태우고, 내 주변을 태우고, 내 이웃을 태울 뿐입니다. 정작 태울 것은 태우지 못하고, 자신과 주변을 태워버리는 불꽃은 잠시 꺼두는 것이 좋습니다. 남을 욕했지만, 상처받고 망가지는 것은 자신밖에 없다면 욕을 멈추고 침묵하는 편이 훨씬 지혜로운 일입니다. 화를 내고 욕을 해서 잠시 시원이야 하겠지만, 화와 욕으로는 세상을 파괴할 수 있을지언정, 새로 만들 수는 없습니다. 

공자는 말년에 남이 나를 알아봐 주지 않더라도 화가 나지 않는 경지가 인격의 완성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말입니다. 나는 남에게 향하는 화의 불꽃을 잠시 끄고, 내 영혼을 밝히는 작은 불꽃이 꺼지지 않도록 노력해야겠다고 결심합니다. 그 불꽃이 있어야 절망에서 벗어나 한 발이라도 디딜 수 있고, 아름다운 문장을 감상할 수 있고, 주변 사람들에게 친절할 수 있게 됩니다. 적을 만드는 일에 앞장서는 것이 아니라 친구를 만드는 일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낡은 세상을 타도하는 방식이 아니라, 아름다운 세상을 창조하는 방식으로 삶을 운영하고 싶습니다. 적의 가슴에 화살을 쏘고 칼로 상처를 입히는 방식이 아니라, 친구의 힘든 가슴을 끌어안고 감싸는 방식으로 내 생각과 몸을 사용하고 싶습니다. 세상을 휩쓸어갈 듯 울어대는 거센 폭풍우도 일주일을 넘기지는 못합니다. 그 시간의 진리를 믿으며 이 지옥의 한 철을 보내겠습니다. 영혼의 작은 불꽃에 기대어, 아프지 않고 슬프지 않게 작지만 아름다운 세상을 가꿔가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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