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서가 고흐 & 일러스트레이터 워홀
색다른 시선으로 조명한 ‘책과의 인연’
기획 돋보이는 전시 2건 한곳서 감상

[고양신문] 캔버스에 자신의 영혼을 담아낸 19세기 화가 반 고흐와 20세기 팝아트의 간판스타 앤디 워홀의 새로운 모습을 만날 수 있는 전시가 헤이리예술마을 한길책박물관에서 나란히 열리고 있다. 하나는 늘 책을 가까이했던, 고흐의 애서가적 면모를 보여주는 전시이고, 다른 하나는 팝아트 작가로서의 명성을 얻기 이전 잡지와 책표지 등에 그림을 그렸던, 일러스트레이터로서의 앤디 워홀 흔적들을 짚어보는 전시다. 미술사에 길이 남을 대가들의 자취를 ‘책’이라는 키워드로 새롭게 풀어낸, 한길책박물관의 기획력이 돋보이는 색다른 전시들을 한자리에서 즐겨보자. 

 

<빈센트 반 고흐가 사랑한 책> 특별전
책이 있는 그림, 아를의 침실, 19세기 고서…

지난달 29일 시작된 <빈센트 반 고흐가 사랑한 책>은 한길책박물관 맨 아래층에서 소박한 규모로 열리고 있는 특별전이다. 전시 규모는 작지만 내용은 흥미롭기 그지없다. 첫 코너에는 37년의 짧은 삶을 불꽃처럼 살다 간 고흐의 생애가 연보 형태로 정리되어 있는데, 자세히 보면 중간중간 고흐가 동생 테오와 나눈 편지 인용문이 삽입되어 있다. 인용문은 다름 아닌, 고흐가 자신이 사랑했던 책과 작가들에 대해 언급한 부분이다. 편지에 언급된 작가들은 세익스피어, 가바르니, 찰스 디킨스 등이다. 

패널 아래쪽에는 커다란 양장본으로 제작된 성경, 찰스 디킨스 전집 등 한길책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19세기 고서들이 전시되어 있어서, 고흐가 당대에 어떤 형태의 책들을 접했는지를 상상하도록 이끈다.  

그림 속에 책이 등장하는 고흐의 작품들.
그림 속에 책이 등장하는 고흐의 작품들.

벽면 액자에는 ‘아를의 여인’, ‘소설 읽는 여자’, ‘ 책 세권’, ‘성서’ 등 화폭 속에 책이 등장하는 고흐의 그림 10여 점이 정교한 래플리카 작품으로 걸려 있다. 일상의 소중한 부분으로 묘사된 그림 속 책들에서 보듯, 책은 고흐의 삶 곳곳에 흔적을 남기고 있고, 이는 화가인 동시에 수백통의 편지글 속에 영혼의 고뇌를 담아내는 바탕이 됐을 것이다.  

특히 고흐는 당대 유럽에서 가장 유명한 판화가이자 삽화가였던 프랑스 화가 귀스타브 도레의 그림과 책을 무척 사랑했던 모양이다. 특히 뉴게이트 교도소 마당을 걷는 죄수 군상을 묘사한 도레의 판화에 깊은 인상을 받은 고흐는 정신병동을 드나드는 자신의 상황을 대입한 모작을 그리기도 했다. 전시에서는 30년의 차이를 두고 완성된 도레와 고흐의 그림이 나란히 전시되어 눈길을 끈다.

전시장에 재현된 '아를의 침실'. 관람객이 직접 공간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전시장에 재현된 '아를의 침실'. 관람객이 직접 공간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전시에서 가장 인기 있는 코너는 수많은 걸작들의 산실이 된 ‘아를의 침실’을 그림 속 그 모습 그대로 구현해놓은 공간이다. 하늘색 벽면과 붉은 침대보, 나무로 짠 소박한 가구들과 탁자 위 소품들까지 정교하게 제자리를 잡고 있어서 관람객들은 직접 고흐의 체취를 상상하며 인증샷도 남길 수 있다. 유일하게 그림과 다르게 표현된 부분 벽면의 창문이 활짝 열려 있고, 창밖으로 화사한 아를의 풍경이 펼쳐져 있다는 점이다. 고흐가 바라봤을 풍경을 더해 넣은 전시 큐레이터의 센스가 돋보인다. 

한길책박물관 관계자는 “볼거리와 인문학을 결합한 이번 전시는 2023 박물관·미술관 지원사업 예산을 받아 운영된다”고 설명했다. 

 

<영 앤디 워홀> 상설전시
워홀이 그린 잡지, 책표지, LP커버 작품들 

한길책박물관의 상설전시 타이틀은 <영 앤디 워홀>이다. 이름 그대로 팝아트의 대가이자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미술가로 평가받는 앤디 워홀의 젊은 시절을 조명한 전시다. 한길책박물관은 지하1층에서 지상3층까지 4개 층에서 전시를 관람할 수 있는데, 1층에서 3층까지가 상설전시 공간이다. 그만큼 구성이 다채롭고 전시작품 숫자가 풍성하다. 

박물관 입구·로비를 겸한 1층에서는 앤디 워홀이 상업미술 작가로 활동하던 1949년부터 1964년 사이의 잡지 일러스트를 모아놓았다. 1949년 광고와 잡지산업의 중심인 뉴욕으로 이주했고, 이후 38년 동안 400여 개의 잡지에서 일러스트 작업을 선보였다.

특히 세련되고 섬세한 감각이 요구되는 패션, 구두, 향수, 액세서리 분야에서 매력 넘치는 재능을 발휘하며 당대 상업미술계의 스타로 자리매김했다. 우리가 알고 있던 팝아트의 탄생이 어느날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게 아니고, 긴 세월 일러스트 작가로서의 경력과 감각을 토대로 순수미술과 상업미술의 경계를 허무는 미술사적 진보가 시도됐다는 사실을 전시를 통해 알게 된다. 

앤디 워홀이 그린 잡지 일러스트 작품.
앤디 워홀이 그린 잡지 일러스트 작품.

앤디 워홀이 손을 댄 분야는 잡지뿐만이 아니었다. 2층과 3층 전시장으로 올라가면 앤디 워홀의 손에서 탄생한 책 표지와 삽화, 그리고 LP음반 커버 디자인을 만날 수 있다. 특히 LP커버 작업은 앤디 워홀이 각별한 애정을 쏟은 분야였던 것 같다. 클래식과 재즈 등 다양한 분야의 작품을 완성했고, 팝아트 순수미술작가로의 변신을 도모하는 기간에도 LP커버 작업에 꾸준한 애착을 보였다고 한다.

전시는 ‘캠벨 수프 캔’, ‘마릴린 먼로’ 등 팝아트의 대표작으로 불리는 워홀의 작품 이미지가 벽면을 가득 메운 공간으로 관람객의 동선을 이끌며 마무리된다.   

앤디 워홀은 작가의 고유성과 작품의 희소성에 기반한 미술의 전통적 가치를 사정 없이 뒤흔들었다. 하지만 그것이 단순한 혼돈에 그치지 않고, 새로운 개념과 사조의 탄생으로 이어지며 미술사에 불멸의 이름을 남겼다. 그리고 그 출발점이 1949년부터 1964년 상업작가 시기의 작업들이었음을 전시가 여실히 보여준다. 

<빈센트 반 고흐가 사랑한 책> 특별전은 올해 말까지 열리고, <영 앤디 워홀>은 상설전으로 진행된다. 한길책박물관에서는 전시와 연계한 여러 가지 이벤트 프로그램도 진행된다. 관람료는 어른 1만2000원, 어린이 1만원이다. 문의 031-949-9786

파주 헤이리예술마을에 자리하고 있는 한길책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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