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산그리다마음건강센터, 지원 늦어져 존폐 위기
이용자와 가족들 “꼭 필요하다” 호소하지만
약속했던 지자체 운영비 지원은 감감무소식
함께 공존해야 할 이웃… 시민들 관심 절실

일산그리다마음건강센터에서 만난 이혜은 시설장(오른쪽 두 번째)와 회원들.
일산그리다마음건강센터에서 만난 이혜은 시설장(오른쪽 두 번째)와 회원들.

[고양신문] 정신질환자들을 바라보는 패러다임이 격리가 아닌 공존으로 전환되면서, 정신질환자들의 마음건강을 일상 속에서 돌보기 위한 사회적 인프라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하지만 현실은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다. 일산서구에 하나밖에 없는 정신질환자 주간재활시설이 운영지원을 받지 못해 문을 닫을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일산서구 일산동에 자리하고 있는 일산그리다마음건강센터(시설장 이혜은, 이하 센터)는 정신의료기관이나 요양시설에 입소하지 않고, 집에서 가족과 함께 생활하는 정신질환자의 사회복귀를 촉진하기 위해 사회적응훈련과 직업훈련, 여가와 문화활동 등 재활서비스를 제공하는 주간재활시설이다. 

정신장애인 정신재활시설과 관련해 지난해 10월에는 국가인권위원회에서 보건복지부장관에게 ‘정신장애인의 인권증진과 지역사회 통합을 위한 정신재활시설 운영 개선 정책’을 권고하기도 했다. 내용을 살펴보면, 보건복지부장관에게 정신재활시설 설치·운영 확대와 근거 법령 개선을, 17개 광역시·도 자치단체장에게는 관련 실태조사 실시와 서비스 확대를 주문했다. 고양시에서 운영중인 정신질환자 주간재활시설은 단 두 곳밖에 없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이곳이다.

사회생활 회복을 위한 사회기술훈련. [사진제공=일산그리다마음건강센터]
사회생활 회복을 위한 사회기술훈련. [사진제공=일산그리다마음건강센터]

“다른 시설도 경험해봤지만, 이곳 만큼 좋은 곳은 없어요. 프로그램이 재밌고 유익하거든요.” (정희준 회원, 이하 회원명은 가명)

“시설장님과 사무국장님이 성품이 너무 좋으셔요. 늘 겸손하고 온유하게 우리를 대해주셔서 참다운 교육자라는 생각이 저절로 들어요” (김경희 회원)

센터에서 만난 회원들은 하나같이 이곳에서 보내는 시간에 대해 커다란 만족감을 표했다. 이들에게 센터는 언제든 찾아가 몸과 마음을 맡길 수 있는 또 하나의 집이었다. 사실 이들은 제각각 조현병, 우울증, 조울증 등 다양한 종류의 정신질환을 앓고 있지만 스스로 약물치료와 정신재활훈련에 참여하고 증상을 잘 관리하며, 당당하게 살고 있는 우리 이웃들이다.  

지난해 1월 운영을 시작한 센터에는 현재 23명의 정신질환자 회원들이 함께하고 있다. 회원들은 매일 다채롭게 짜여진 프로그램들을 체험하며 센터에서의 일정을 보낸다. 마음을 그리는 미술치료로 하루를 시작하고, 차를 마시거나 시를 감상하며 대인관계 생활적응연습으로 오전시간을 보낸다. 오후에는 요일별로 약물증상관리교육, 생활체육, 보드게임, 노래부르기, 영화관람 등 흥미로운 시간이 기다리고 있다. 때로는 센터 주변 산책로를 따라 걷기운동을 즐기기도 하고, 푸드뱅크 협약을 통해 전달된 간식을 나누기도 한다. 

한 주의 활동을 마무리하는 금요일에는 자체 선출된 회장을 중심으로 자치회의를 열고 소통의 시간을 갖는다. 기자가 직접 시설을 둘러보니,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진행하기에 알맞도록 모든 시설이 깨끗하고 쾌적하게 관리되고 있었다. 

피아노연주, 그림그리기, 바리스타 체험 등 각자의 취미를 살리는 자기주도활동. [사진제공=일산그리다마음건강센터]
피아노연주, 그림그리기, 바리스타 체험 등 각자의 취미를 살리는 자기주도활동. [사진제공=일산그리다마음건강센터]

이처럼 안정적으로 제공되는 양질의 프로그램에 꾸준히 참여하면 회원들은 증상이 안정되고 사회적 기능이 회복되는 효과를 얻게 된다. 덕분에 회원 중 무려 6명이 취업하는 성과도 거뒀다. 편의점 알바, 청소, 장애인일자리 등 상대적으로 단순한 일이긴 해도, 취업은 꿈도 못 꾸던 정신질환자와 가족들로서는 더없이 반가운 진전이 아닐 수 없다. 이혜은 시설장은 “가능하면 회원들이 모든 프로그램에 자기주도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권유하고 있다. 단순히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하나가 일상생활과 사회활동을 회복하기 위한 연습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센터의 존재 이유는 수치로서도 확인된다. 고양시정신건강복지센터가 발표한 2022년 보고서에 따르면, 고양시에서 집중사례관리가 필요한 정신질환자, 또는 가족의 숫자가 9000여 명이 넘는 것으로 조사됐다. 또한 2016년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정신질환실태 역학조사’에서는 정신질환 평생유병률(평생 한번 이상 정신건강 문제를 경험하는 비율)이 25.4%에 이른다는 발표를 담기도 했다. 이러한 상황을 반영하듯 개소 이후 센터 이용을 문의한 상담건수만 104건에 이른다. 

센터는 회원들뿐만 아니라 정신질환자 가족들, 나아가 우리 사회 전반에도 다양한 유익을 가져다준다는 게 이 시설장의 설명이다.

“돌봄 부담이 줄어들면 정신질환자 가족들의 삶의 질이 높아집니다. 사회적으로는 정신질환자에 대한 지역관리체계가 강화돼 불안감이 낮아지고, 의료급여 감소로 인한 사회적비용 절감 효과도 누리게 되구요.”

센터 인근 공원녹지를 산책하는 생활체육활동. [사진제공=일산그리다마음건강센터]
센터 인근 공원녹지를 산책하는 생활체육활동. [사진제공=일산그리다마음건강센터]

이처럼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우리사회에 꼭 필요한 역할을 감당해왔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센터가 문을 연 지 1년 8개월이 지났지만, 약속했던 지자체의 운영비 지원은 여전히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그동안은 조만간 지원이 시작될 거라는 기대를 안고 한달 한달을 보냈지만, 요즘에는 회원들과 운영진 모두 센터가 과연 언제까지 유지될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단계에 접어들었다.   

가장 절박한 건 역시 회원들이었다. 박준섭 회원은 “센터가 문을 닫으면 우리 같은 정신질환자들은 낮시간에 갈 곳이 없다. 사회생활을 아예 포기해야 한다”고 말했고, 또다른 회원 역시 “센터 덕분에 마음이 많이 안정됐는데, 다시 옛날로 돌아갈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너무 걱정된다”며 불안을 토로했다. 

이 시설장은 “지자체 지원을 기다리는 센터의 입장은 결코 사적 욕심이나 불합리한 요구가 아니다”라고 말한다. 애초 센터를 준비하는 과정에서부터 1년간의 운영실적을 토대로 예산지원여부를 결정하겠다는 보건소 측의 약속이 있었고, 이후 사회복지사업법과 정신건강복지법이 요구하는 요건들을 충족시키며 운영비와 프로그램비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자격을 꼼꼼하게 갖춰왔기 때문이다. 관할기관인 일산서구보건소 담당자 역시 센터가 운영비 지원을 받을 자격이 충분하다는 평가를 기자에게 들려줬다.

하지만 시·도 매칭사업으로 구성되는 지원예산의 구조가 걸림돌이다. 고양시와 경기도가 책임을 서로에게 미루며 핑퐁게임을 하는 동안, 센터 지원예산은 번번이 공중에 떠 버렸고, 그러는 동안 시설장과 사무국장이 사비로 지출한 시설 운영비는 어느덧 3억원을 훌쩍 넘기고 말았다.

“최근에 고양시 2차 추경에 운영예산이 반영되기를 간절히 기대했는데, 이마저도 무산됐다는 소식을 듣고는 정말 기운이 빠졌어요. 이제는 정말 센터 문을 닫아야 하나 고민하다가도, 아침에 밝은 모습으로 센터 문을 열고 들어오는 회원들의 얼굴을 보면 어떻게서든 버텨봐야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차를 마시며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집단상담 프로그램. [사진제공=일산그리다마음건강센터]
차를 마시며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집단상담 프로그램. [사진제공=일산그리다마음건강센터]

힘든 상황에서도 이혜은 시설장이 믿는 것은 센터를 필요로 하는 회원과 가족들의 절박함, 그리고 시설의 존재가치를 응원해주는 이웃들의 마음이었다. 사회복지사 자격증 취득을 위해 한달 전부터 센터에 실습을 나오고 있는 국소영 씨는 “뉴스나 방송에서는 정신질환자들을 곧 잘 두려운 존재로만 그리곤 하는데, 센터 회원들을 접하면서 그동안 내가 잘못된 선입견을 갖고 살았다는 걸 깨달았다”면서 “우리 곁에 이런 시설이 있다는 게 정말 고마운 일인데, 존립 자체를 걱정하는 상황에 처했다니 너무너무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혜은 시설장은 “우리 곁 누구나 정신질환을 앓을 수 있다”면서 “선입견을 던져버리고 살펴보면, 주간재활시설을 간절히 필요로 하는 이들의 모습이 보일 것”이라며, 이웃들과 지자체의 관심을 요청했다. 

[사진제공=일산그리다마음건강센터]
[사진제공=일산그리다마음건강센터]
독서, 보드게임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으로 진행되는 여가문화활동. [사진제공=일산그리다마음건강센터]
독서, 보드게임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으로 진행되는 여가문화활동. [사진제공=일산그리다마음건강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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