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김재진 시집 『헤어지기 좋은 시간』
절망과 희망 사이 이어주는 시어
그림도 그리고, 연주앨범도 발표
27일, 파주 아틀리에에서 북토크
[고양신문] 신작 『헤어지기 좋은 시간』이라는 시집을 출간한 김재진 작가를 파주출판도시에 자리한 김영사에서 만났다. 출판사에서 운영하는 갤러리 카페 ‘행복한마음’에서 목련차를 마셨다. 목련차에는 목련꽃 잎이 한 송이 들어 있었다. 향이 좋았다. 시인과 함께 목련꽃이 피었을 때의 우아함과 질 때의 추레함을 이야기했고, 송이째로 툭 떨어지는 동백꽃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시집 제목이 계절과 잘 맞는다며 축하 인사를 건넸다. 김 시인은 시집 제목을 먼저 정하고 나서 ‘헤어지기 좋은 시간’이라는 시를 썼다고 말했다. 시인이 사인을 한 시집을 받아들고 한 장 넘기니 ‘序’가 나왔다. 작가의 말에 해당하는 글일 테다. 나는 본격적으로 책을 읽기 전에 항상 머리말이나 작가의 말, 들어가는 말을 정독한다. 눈으로 가만히 따라 읽었다.
다친 사람의 상처가 아물기를/ 울고 있는 이들의 눈물이 마르기를/ 시든 꽃이/ 내년에 다시 피기를/ 유리창에 머리 박아 떨어진 새가/ 더 높이 날아오르기를(…)
이 글부터 시 같다고 말해줬다.
작년 말에 출간된 작가의 에세이집 『바람에게도 고맙다』를 읽은 후, 사람들이 왜 그의 글을 좋아하는지를 알 것 같았다. 조곤조곤 들려주는 시 같은 글이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해 주고 있음이 분명했다. 그 책에는 작가가 직접 그린 그림들도 수록돼 있다. 작가는 수년간 병상에 누워계시던 어머니를 위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삶의 아픔과 슬픔이 녹아 있는 그의 그림을, 사람들은 ‘시’라고 말했다.
이번 시집의 표지도 시인의 그림 ‘설산의 별’ 중 일부분이다. 설산 위의 하늘에는 은하수들이 흩어져 있다. 잠자리에서 시집을 펼쳤다. 한 편 한 편 읽다 보니 1부를 지나, 2부로 넘어갔다. ‘시는 이렇게 한꺼번에 읽는 게 아닌데, 한 편씩 천천히 음미하면서 읽어야 할 텐데….’ 다음 시들이 궁금해 마음이 급했다.
2부에 수록된 첫 번째 시 ‘재회’부터는 가을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지난해 꽃들과 했던 약속을/ 지킬 수 없게 되었다(…) 여름이면 꽹가리 치듯 돋아나던 풀들은/ 예초기 없이도 풀이 죽었다/ 풀죽은 풀이 무슨 수가 있겠는가/ 가을이 깊어지면 따라서 깊어지는/ 산 위의 단풍들은 축지법이라도 쓰는지/ 골 깊은 백 리 길을 단숨에 점령할 것이다(…) 햇살이 누워 있는 흙길을/ 풀썩풀썩 먼지 데리고 걸어가/ 한때는 친구였던 희망과/ 재회하면 좋겠다(…)
‘밤의 문자’를 넘어 ‘가난의 자격’, ‘절창의 역사’에 다다르면 코끝이 기어이 찡해왔다. 긴 병을 앓다 세상을 떠난 어머니, 창문에 부딪혀 떨어진 새, 마흔셋에 세상을 떠난 친구, 그와 길동무가 된 또 다른 친구…. 시인은 시 속 주인공들에게 “절망과 희망 사이에 사다리를 놓아주고 싶다”고 말한다.
사람들과 소통하기 위해 글을 쓴다는 그의 시는 쉽게 읽힌다. 은유와 비유를 섞어 쓰는 다른 시인들과 달리 그는 독자가 알아들을 수 있는 쉬운 시가 좋은 시라고 생각한다. 쉬운 시를 쓰기가 더 어려울지도 모른다. 그의 시는 사물을 구상으로 묘사하지만, 읽고 나면 추상으로 다가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가을에 읽기엔 너무 쓸쓸한 시들이었으나, 쓸쓸한 계절에 쓸쓸한 시들을 읽었더니 나는 쓸쓸해지지 않았다.
시인의 말을 잠깐 들어보자.
“죽음이 끝이 아니라는 생각으로 명상과 마음공부에 전념하고 있어요. 우리는 죽은 뒤에 완전히 없어지지 않고, 어떤 세계를 찾아갈 것이라는 생각을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그런가! 그렇다면 그의 글과 그림 그리고 음악은 보이지 않는 것, 들을 수 없는 것, 알 수 없는 어떤 것들을 보고자 하고, 듣고자 하고, 알고자 하는 매개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 작가는 젊은 시절 신문사 신춘문예에 시와 소설이 당선되며 40년 이상 글을 썼지만, 음대 출신이다. 첼로 소리에 끌려서 입학했다고 한다. 지금은 첼로가 아니라 하모니카를 매일 연주한다. 케빈 컨과 마이클 호페 등 해외의 유명 피아니스트들과 공연을 했고, 정목 스님(노래), 김영준 교수(바이올린), 안형수 연주자(기타) 등과는 <입술에 남은 가을>이라는 정규 앨범을 발매했다.
지난 주말(14일), 시인은 대구에 있는 정호승 문학관에서 시집 출간 기념 북콘서트를 마쳤다. 27일에는 파주시 교하에 있는 자신의 아틀리에에서 북토크를 할 예정이다. 그는 “시와 그림, 그리고 음악에 깃든 삶의 이야기를 참석자들과 나누고자 한다”고 초대 인사를 전했다. 김재진 시인을 만나기 좋은 시간이다.
▮김재진 시인 북토크
일시 : 10월 27일(금) 오후 2시
장소 : 경기도 파주시 패랭이길 43-15
사전신청 및 문의 : 010-6730-5221(출판사 고흐의별 담당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