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윤의 하류인문학 100

김경윤 인문학자
김경윤 인문학자

[고양신문]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나에게 안부를 묻습니다. “요즘 어때?” 나는 피식 웃으며 답합니다. “손가락 빨고 지내. 엄지손가락 빨다가, 검지손가락 빨다가, 중지손가락 빨다가…” 친구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쳐다봅니다. 농이 심했나? 연이어 말합니다. “글빚 갚고 있어. 예전에 계약한 책들을 쓰고 있어. 올해 안에 3권 정도 써야 하고, 한 권은 다 썼고, 지금 두 권째 쓰고 있는 중이야.” 이 말을 듣고 친구가 고개를 끄덕입니다. 다행이다 싶었겠지요.

그래요. 요즘 저는 성석동 글감옥에 갇혀(?) 책을 쓰고 있습니다. 20대부터 이런저런 글을 쓰기 시작해서, 지금까지 글쓰기를 멈추지 않고 있으니, 아마도 글쓰기는 저의 천직이 아닐까 싶습니다. 40년 가까이 글을 쓰고 있으니 이제 지칠 만도 한데, 여전히 글을 쓰며 살아갑니다. 고양신문에 칼럼을 쓴 지도 이번에 100회가 됩니다. 오늘은 혼자라도 조촐하게 기념해볼까 싶기도 하네요. 이 칼럼을 다 쓰고 나면, <50에 읽는 노자>의 샘플 원고를 써야 합니다. 아마도 올해 마지막 써야할 책이 될 것 같습니다.

내년도에 환갑이 됩니다. 60갑자의 인생 고비를 넘겨 아직까지 살아있습니다. 환갑이 되기 전에 쓰는 마지막 책이 <노자>와 관련돼 있다는 것도 나름 나에게는 의미심장합니다. 노자의 핵심 메시지가 비움, 아낌, 베풂, 뒤로 물러남입니다. 욕심을 비우고, 앎을 비우고, 절약하고 남겨서 남에게 베풀고, 전면에 나서지 말고 든든한 뒷배가 되라고 노자는 충고합니다. 노자와 관련돼서는 벌써 교육론과 글쓰기론을 썼는데, 이제 마지막으로 인생론을 쓰게 되네요. 노자와 함께한 글쓰기 삶이 참 좋았습니다.

환갑부터는 조금은 가볍고, 긍정적이고, 웃음기 많은 글을 쓰고 싶습니다. 아마도 <장자>가 제일 적합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상상의 새가 되어 높이 날면서, 높은 곳에서 바라보는 평등세상을 그려보는 재미가 쏠쏠할 것 같습니다. 고정된 자리에서 훌쩍 떠나 유랑하는 삶도 꿈꿔 봅니다. 가장 단출한 차림으로 돌아다니며 어린아이처럼 세상을 신비하게 바라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새롭게 바라보는 세상을 글로 말로 전달하는 이야기꾼이 되고 싶습니다.

골방에서 꼼짝없이 앉아 글쓰는 버릇도 바꾸고, 거리에서 산보하며 글을 쓰고 싶습니다. 생각해보면, 인생살이 글감이 아닌 게 없습니다. 기쁨도 슬픔도, 고난도 영광도, 성공도 실패도, 민주도 반동도, 진보도 퇴보도, 만남도 헤어짐도 다 글감입니다. 좋았던 때도 있었고, 안 좋았던 때도 있었지만, 글을 쓰지 않았던 때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심지어 결혼하고 5년 지나 국가보안법으로 구속되어 감방생활을 할 때에도, 아내에게 매일 세 쪽의 편지를 썼습니다. 모아놓고 보니, 사과상자 하나가 가득찬 만큼의 글입니다.

코로나 시기에 브런치 작가가 되어, 아무 계산 없이 올린 글도 이미 975회가 넘었습니다. 아마도 올해 안에 1000회를 넘겠지요. 제일 자주 하는 것이 제일 좋아하는 것이라면 분명 저는 글쓰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맞겠네요. 글을 쓰며 살았고, 앞으로도 쓰며 살 것 같습니다. 나의 글쓰기가 남의 삶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짐작도 못하지만, 분명 나의 삶에는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었던 나를 사람 꼴로 준비시킨 것도 글쓰기였고, 젊은 시절 나의 밥거리를 마련한 것도 글쓰기였습니다.

이제 이 글쓰기가 밥벌이 노릇은 못하겠지만, 남은 인생 살아가는 데 가장 든든한 동반자가 될 것은 분명합니다. 친구가 없어져도, 친구를 만나지 못해도, 나는 나를 친구삼아 글을 쓰고 있을 테니까요. 나는 씁니다, 고로 나는 존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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