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칼럼-우리 사회는 이제 장애인과 더불어 사는 새로운 장애정책이 절실하다. 배 유 현<시사뉴스 주필/한국공공정책연구원장> 아테네 올림픽에서 우리가 10위권 안에 오르면서 경제가 어려운 가운데에서도 큰 위안이 되었다. 우리나라가 '소득 1만 달러, 세계 12위의 경제 대국'이라는 통계는 있지만 실제로 몸으로 체감하는 사람은 우리 사회에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런데 미국-중국-러시아-일본에는 못 미치지만 어느새 독일-프랑스-이태리-영국과 어깨를 견줄 수 있는 수준이 된 것이다. 아테네 올림픽이 몇 가지 아쉬움 속에 성공리에 끝났지만 올림픽이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다. 1백45개국 4천여 명의 선수가 참가하는 장애인올림픽이 17일부터 28일까지 12일 동안 아테네에서 이어진다. 우리나라도 80여명의 선수단이 참가해서 종합 10권을 목표로 국위를 선양하게 된다. 우리 장애인의 위상도 어느 사이에 세계 10위권에 우뚝 서게 된 것이다. 실제 우리 사회에 통계를 보면 우리나라 인구의 약 10%정도, 즉 4백60만 정도가 장애인으로 집계되어 있다. 그러나 장애인들도 정신-지체-시각-청각 등 종류가 다양하고 정도가 심하지 않은 장애 인구를 합치면 그 숫자가 좀더 많을 것 같다. 특히 수명이 늘어나면서 사실상 장애 정도를 넘어서는 노인성 질환을 앓고 있는 계층까지 합치면 심각한 수준이 된다. 그런데 장애인들에 대한 정부 대책을 살펴보면 저절로 한숨이 나온다. 역사가 5천년에 이르는 나라이지만 장애인들을 매우 홀대해 온데 그 원인이 있다. 또 일제치하의 애국지사나 6.25 참전과 전화로 장애인이 양산됐지만 정부에서 '우선 먹고 사는 핑계'로 외면한 데에서도 그 책임이 있다. 사회의 냉소 분위기는 장애 가족들에게 '쉬쉬'하는 풍조까지 낳았다. 결국 사회분위기는 장애인들이 당당히 권리를 찾고 떳떳하게 생활하는데 많은 부담을 주고 있다. 일정한 수입이 있거나 집안 친지로부터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장애인들이 많지 않은 처지도 그들의 생활에 어려움을 가중시키고 있다. 우선 대부분의 주변 환경이 정상인들만 사용하도록 만들어져 있다. 주택 구조와 길거리, 교통수단 모두가 불리하게 되어 있다. 따라서 장애인들이 정상인과 똑같이 활동하기 위해서는 시간과 노력이 아주 많이 들어간다. 주변의 도움이 없이는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도 많다. 시각 장애인과 청각 장애인들이 길거리에 나서면 위험하기 짝이 없다. 시각 장애인들은 정상인들이나 훈련된 맹견을 활용해야 하는데 그 비용이 만만치 않다. 청각 장애인들이 사용하는 보청기도 수백만원을 호가한다. 지하철에 진출입할 때 정상인들은 아무런 불편을 느끼지 못한다. 그러나 지체 장애인들은 운반기를 사용하더라도 매우 위험스럽다. 절차도 관련 직원을 호출해야 하는 등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버스나 기차를 탈 때도 마찬가지다. 건널목이나 건물에 들어 설 때도 포기해야할 경우가 많다. 직장이나 학교에서 체육활동을 할 때도 장애인들은 철저히 소외 당한다. 가까운 일본을 살펴보면 장애인용 버스가 많고 항상 장애인들을 먼저 태운다. 버스 운전기사가 맨 먼저 장애자를 승차 확인한 뒤 정상인들을 승차시킨다. 뉴질랜드에는 장애아가 학교에 입학하면 아예 전담교사가 배정된다. 장애인들이 생활하는데 전혀 불편을 느끼지 않는다. 또 고용 면에서도 주차관리 등 간단한 일은 장애인이나 노인들을 우선 채용하고 있다. 우리는 주변의 장애인들을 보면 멀쩡한 육신에 정말 감사해야 한다. 장애인들 중에는 선천적 장애인들도 있지만 사회생활 중에 병마나 사고에 의한 장애인들이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아침에 건강하던 친구가 저녁에 휠체어를 타야 하는 사례도 없지 않다. 그러니까 정상인이 장애인이 되는 것은 거의 순간의 차이밖에 나지 않는다는 속설이 지나치지 않다. 그런데 우리의 장애인 보는 시각이 올바르지 않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우선 장애인을 '측은하다'는 생각으로 본다는 점이다. 장애인들도 우리 사회의 중요한 구성원이라는 점을 잊고 있다. 선천적 장애인에게는 본인이 자각하는 시점에서, 후천적 장애인에게는 좌절을 느끼는 시점에서 장애를 이겨내고 현실에 적응하도록 제도적으로 지원하고 훈련해야 한다. 장애인들을 '측은하다'는 차원에서 몇 푼 적선하고 말면 그들은 현실의 높은 벽 앞에 주저 앉게 된다. 현실에 적응하고 이해하며 당당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재활의 기회를 열어 줘야한다. 북한 탈북자가 국정원의 보호 아래 우리 사회에 적응하고 재활 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 것처럼 장애인들은 보건복지부의 보호 아래 재활의 기회를 분명히 얻어야 한다. 사회의 분위기도 중요하다. 대기업이나 공공기관, 사회단체에서도 정확한 직무분석을 통해 장애인들의 고용기회를 확대해 가야한다. 또 정부는 장애인들에게 알맞은 교육의 기회를 확대해 가야한다. 장애인들과 함께 적성과 특성을 찾아내고 직업교육을 받도록 이끌어 가야한다. 장애인들의 좌절과 실패는 어쩌면 우리 사회의 성패를 가름하는 잣대인지도 모른다. 우리 사회는 '경제가 어렵다'는 핑계로 많은 중요한 일들을 소홀히 하고 있다. 특히 소외 받는 계층의 양산은 폭발적인 위험이 있다. 장애인과 불우 노인, 저소득층의 양산은 위험한 범죄를 낳는다. 최근 연쇄 살인 사건을 저질은 유영철 사건과 경찰관들을 살해한 이학만 사건이 좋은 사례다. 자신만이 잘 살고 이웃을 돌아보지 않을 때 저주를 받을 수가 있다. 결론적으로 장애인들을 우리 사회의 밝은 태양 아래 끌어내기 위해서는 몇 가지 전제가 앞서야 한다. 첫째, 우리 사회의 장애인들에 대한 인식이 새로워져야한다. 장애인들이 바로 우리의 이웃이며 친지, 가족이라는 사실을 확실히 깨달아야 한다. 따라서 가족과 친지처럼 보살펴 줘야하고 사회에 적절히 적응할 수 있도록 이끌고 도와줘야 한다. 둘째, 장애인들은 장애의 정도와 적성에 맞는 교육이나 재교육의 기회를 열어줘야 한다. 무상 교육보다는 정부 주도의 사전 지원 뒤에 장기 저리의 상환제도도 채택해 볼만하다. 장애교육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분명한 재활의 용기와 의지를 불어넣는 것이 중요하다. 셋째, 제도적인 취업기회의 확대가 필요하다. 보건복지부는 우선 장애인들이 고용될 수 있는 기회를 파악하고 확대해 가야 한다. 필요하다면 고용보험을 지원하고 사용자들에게는 세제혜택도 줘야 한다. 장애인 생산 제품과 서비스를 정부조달에 우선 채택하는 방법도 좋다. 마지막으로, 장애인들의 치료에 대한 종합적인 연구가 필요하다. 장애인들의 발생 사례별 자료들을 보관하고 치료와 재생방안을 연구해야 한다. 장애 사안별로 건강보험의 특별지원도 필요하다. 장애인 발생이 줄어드는 것이 바로 우리 사회를 밝게 해주는 지표가 된다. 이제 우리 사회도 21세기 건강 장수 시대를 열고 있다. 우리 주변에서도 예부터 보기 드물다는 고희(古稀)를 넘겨 사는 분들이 많다. 아니 80∼90세를 넘겨도 건강한 분이면 '아쉽다'는 말을 연발한다. 어쩌면 금세기 안에 평균 수명이 1백세를 넘길 수도 있다. 언제부터인가 몇 살까지 사는가 보다는 얼마나 건강하게 사는가에 좀더 관심이 쏠려 있다. 그런데 우리가 나이가 들거나 병약해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사고에 따른 장애의 발생도 불가피하다. 그렇다면 장애인지원 제도 정비에 누구도 반대할 이유가 없다. 장애인과 불우 노인들을 위한 시스템 갖추기-. 이것은 우리 사회가 복지사회로 가는 필연적 과정이다. 때 마침 여야 모두가 장애인 출신 국회의원을 배출했다. 모두가 공감하고 장애인들에게 절실한 21세기형 새로운 장애인 복지정책을 기대해 본다. ※배유현(HP018-353-3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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