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책모임중독자의 고백
『노생거 사원』 (제인 오스틴)
[고양신문] 틸니 장군으로부터 결혼을 허락한다는 편지를 받은 캐서린의 아버지 몰런드 씨. 그 시각 캐서린도 이저벨라 소프에게서의 편지를 받았다. 오빠 제임스와의 약혼이 취소되고, 자기변명으로 점철된 편지를 한 뒤로 두 번째였다. 앞뒤가 안 맞는 모순투성이에 거짓말도 섞인 그 편지에 캐서린은 답장하지 않았다. 해명을 요구하는 편지에, 그따위로 내용을 적어 보낸 것에 화가 난 캐서린은 답장 쓸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독자들은 이후에라도 이저벨라 같은 친구에게서 왜 거리를 둬야 하는지 알아 두면 좋기에 공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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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캐서린.
어째서 지난번 내 편지에 답장을 하지 않는 거니? 하지만 네 마음을 다 알아. 틸니 장군을 계속 설득해야 하니 얼마나 바빴겠니. 나도 네 오빠 제임스와 결혼 준비를 해 본 적이 있으니 당연히 이해해. 그래도 친구 사이라면 짧은 편지라도 써서 보내는 게 예의라는 것쯤은 알고 있겠지? 이번에는 용서해 줄 테니, 꼭 답장을 해 주길 바라.
짐작하겠지만 요즘 나는 제임스와 행복했던 시간을 계속 곱씹고 있어. 틸니 대위의 유혹에 단 한 번도 넘어간 적이 없지만 나 좋다고 쫓아다니니 그와 소문이 나는 건 시간문제였겠지. 하지만 너도 알다시피 내가 얼마나 칼같이 대했니? 틸니 대위가 온다고 하는 파티에서 늘 그에게 도도하게 대했다고. 그걸 알면서도 집적댄 틸니 대위가 잘못이라고 생각해. 난 그저 사교계 예의상 대화를 하고 차도 마시고 게임을 한 것뿐이야.
만약 내가 못되게 굴었다면 사람들이 날 얼마나 차가운 숙녀라고 생각했을까? 젊은 남녀의 이런 스캔들쯤은 제임스가 넘어가줄 줄 알았는데, 내가 좀 안일하게 생각했나 봐. 인내심도 적고 질투심이 많은 제임스도 난 좋은데 말이야. 내가 지난번 편지에서 말했다시피 제임스 그이는 내 처신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우리 사이는 전혀 달라진 게 없다고 제대로 전달한 것 맞니? 왜 제임스에게서 아무런 연락이 없는 건지 모르겠어.
집에 돌아와서 보니 너랑 보낸 시간이 정말 꿈만 같아. 비록 너는 매력적인 우리 오빠 존을 버리고 헨리 틸니를 선택했지만, 그래도 난 너를 내 친구라고 생각해. 너도 눈치챘겠지만 존은 정말 너를 좋아했어. 결혼하면 어떤 집에 살지, 어떤 마차를 새로 구비할지 계획해 놓고 있었어. 분명 오빠도 네 마음을 확신하고 부모님한테 결혼 허락을 받으려고 했던 건데, 네 마음이 왜 헨리한테 기울었는지 모르겠다. 내 생각에 너도 우리 오빠한테 관심이 있었다고. 나한테는 솔직해도 돼. 결국 헨리의 재산에 끌린 거지? 난 너희 오빠 존이 부자가 아니어도 결혼하겠다고 마음먹었는데 말이야.
너한테 약간의 허영이 있었다고 해도 난 괜찮아. 난 너의 그런 점도 사랑해. 비록 나는 가난한 목사의 아내가 되겠지만, 휴가 때마다 너희 부부 집으로 놀러가는 것도 괜찮을 것 같거든. 우리는 절친한 친구니까 만약 네가 결혼한다고 하면 초대해 주길 기다리고 있을게.
아, 바스에서 너와 제임스, 존과 함께 마차로 달리던 기억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는구나. 비가 많이 와 틸니 남매가 널 데리러 오지 않아서 우리가 대신 너를 데리고 소풍은 간 거였잖아. 중간에 네가 틸니 남매를 발견해서 마차를 세우라고 소리치고, 오빠는 무시하고 계속 달렸던 생각이 난다. 그때 정말 재미있었는데. 우리 오빠 마차는 정말 멋진 것 같아. 너도 그때가 그리워질 날이 분명 올 거야. 너와의 추억에 하루하루를 보내는 나를 위해서라도 빨리 답장 주길 기다릴게.
너의 변함없는 친구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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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서린은 한때 이저벨라를 영혼의 친구라고 생각했던 자신을 후회했다. 편지를 구겨서 난로에 던져 버릴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잘 간직해 두었다고 혹시나 아직도 이저벨라에게 마음이 있을지 모르는 제임스에게도 보여 주어야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제 캐서린에게 영혼의 친구는 헨리 틸니였다.
※ 제인 오스틴의 첫 소설 『노생거 사원』의 후기를 독자의 시선에서 창작한 것입니다. 재미로 읽어 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