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2007년 삼송택지개발로
GB해제하며 유령도로 급증
현재 총 586곳 20년가량 방치
불편 해소위해 시 의지 보여야
[고양신문] 고양에서만 20년간 석재 시공을 해온 박명래(67세)씨는 올해 사업을 확장하며 새 사옥을 짓기로 결심했다. “덕양구에서 인지도를 쌓아온 만큼, 이제는 고양시에 완전히 뿌리내리고 싶다”라는 그가 택한 사옥 부지는 바로 덕양구 주교동 1126-2번지. 바로 앞에 대로가 뻗어있어 접근성도 좋았기에 속전속결로 설계 완료 후 건축허가를 신청했다.
하지만 결과는 ‘반려’였다. 공사 부지 한가운데를 도로가 지나고 있어 건축허가를 내려줄 수 없다는 것이 시의 설명이었다. 그러나 도로가 있어야 할 자리에는 포장도로는커녕 차가 진·출입할 만한 공간조차 없다. 지적도상에는 존재하지만, 현장에는 없는 ‘유령도로’. 어찌 된 일일까.
지적도를 보면 박씨가 소유한 부지를 소로3-346이라는 46m 길이의 도로가 가로지르고 있다<지도 참조>. 도시 계획상 해당 도로는 최초 고시된 2006년부터 존재했어야 하지만, 시가 아무런 조처를 하지 않아 17년 동안 서류상으로만 존재하는 도로가 되어버렸다. 이처럼 지도에만 그어진 채 방치당한 도로들로, 주민들은 재산권 침해를 비롯한 여러 민원을 쏟아내고 있다. 당장 박씨도 유령도로인 소로3-346 때문에 애초 계획한 부지를 사용할 수 없어 유휴부지를 놔두고, 3억1500만원이라는 불필요한 비용을 들여 새 부지를 구해 사옥 착공에 돌입했다.
박씨는 “만들지도 않을 도로를 주민 공청회 하나 없이 그어놓고, 무작정 다른 토지를 알아보라는 것이 올바른 행정인지 묻고 싶다”라며 “지속해서 민원을 넣었지만, 시가 올해 11월 발표한 도로 결정에는 소로3-346을 연장·변경한다는 내용만 있을 뿐, 해당 도로 공사를 착공하거나 영구히 취소하는 등의 적극적인 대책은 전무했다”라고 토로했다.
이처럼 고양시 곳곳에 도시 계획상으로는 존재하지만 실제로 개설되지 않은 장기미집행 시설은 총 677곳에 달한다. 이 중 교통시설이 총 623곳으로 대부분을 차지하고, 공간시설이 43곳, 공공·문화·체육시설이 11곳이다. 즉, 계획상으로만 존재하고 실제로는 삽도 뜨지 않은 시설의 대부분이 ‘유령도로’인 셈이다. 그렇다면 시는 애초 개설할 생각도 없는 도로를 계획했고, 또 이를 해결하지 않고 있을까. 고양시 곳곳에 있는 유령도로를 따라 민원의 실마리를 찾아간다.
GB해제하며 막 그은 도로
소로3-346을 비롯한 유령도로가 주로 분포하는 곳은 취락지구다. 취락지구는 여러 가구가 모인 집단거주지로, 이들 대다수가 2006~2007년 삼송택지지구와 함께 덕양구 향동·지축 등의 취락 10.25㎢, 대규모 취락인 삼송·동산·화전 1.33㎢가 그린벨트에서 해제됐다. 그린벨트가 해제되는 과정에서 시는 ‘개발제한구역법 시행령’에 따라 도로·공원 등의 기반 시설을 설치해야 한다. 그러나 고양시의 경우 한 번에 큰 면적이 해제되다 보니 지역 교통상황에 대해 충분히 파악하지 못하고 지침 기준만을 만족하는 도로를 계획하다 보니, 불필요한 유령도로가 급증했다는 지적이다.
고양시 도시개발과 자료에 따르면 이처럼 그린벨트를 해제하는 과정에서 계획한 뒤 현재까지 착공되지 않은 도로는 총 586곳이다. 일산지역 28곳을 제외하면 나머지 558곳은 지난 2006년과 2007년 그린벨트가 대거 해제된 덕양구에 자리 잡고 있다. 덕양구 중 가장 많은 그린벨트 해제로 인한 미집행 도로는 대자동 34곳, 대장동 32곳, 동산동 31곳, 행주내동 28곳, 삼송동 26곳 순서로 많다. 특히 삼송동과 동산동의 유령도로는 2007년 대규모 취락의 그린벨트를 해제하는 과정에서 급증했다고 풀이된다.
앞선 박씨의 상황뿐 아니라 다른 곳들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동산동 183-15 일원에 자리한 소로1-150도 지적도상으로는 취락을 가로지르고 있지만,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도로다. 비슷한 사례로, 폭 8m가량 소로2-399는 삼송동143-9 일원을 지나고 있지만 해당 소로는 통행로는커녕 밭과 개인 주차장을 위한 유휴부지로 방치된 상황이다.
이에 대해 시 도시계획과는 해당 민원들에 대해 현장을 고려치 않고 도로를 계획한 것이 아닌 ‘재정상 이유’로 일축했다. “2006년과 2007년 사이 정부가 고양시 내 취락들에 대한 그린벨트를 해제하는 과정에서 지방 재정 여건을 충분히 고려해서 결정했다고 보기는 어렵다”라며 “고양시도 자체적으로 그린벨트 해제와 함께 증가한 장기미집행 시설들을 정비해나가려고 하지만, 예산 한계 때문에 녹록지 않다”라고 답변했다.
그러나 이러한 시의 답변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목소리도 있다. 고양시의회 건설교통위원회 권용재 시의원은 “서울·인천·부산 등 타 지자체와 달리 고양시는 현황도로와 같은 기본적인 지역 도로 상황에 대한 데이터도 확보되지 않은 상황”이라며 “문제에 대한 조사나 고민 없이 예산을 핵심 원인으로 꼽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라고 밝혔다.
부서 협업시킬 ‘컨트롤타워’ 절실
국토계획법에서는 도로를 비롯한 도시계획시설이 20년간 집행되지 않는다면 그 효력을 잃도록 규정하고 있다. 유령도로처럼 장기미집행된 시설이 무한정 주민들의 재산권을 침해하는 것을 막기 위한 취지다. 그러나 취락지구의 그린벨트 해제가 집중 발생한 2006년과 2007년 동안 결정된 유령도로의 완전한 실효를 위해서는 아직도 4년가량을 더 기다려야만 한다.
아울러 이번 고양시의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장기미집행 도시계획 시설 관리용역’ 또한 전액 삭감돼 실효되는 과정도 순탄치 않을 전망이다. 해당 용역이 장기미집행 도시계획시설의 자동 실효에 따른 행정절차 이행을 위해 대책을 수립하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권용재 시의원은 “만약 ‘유령도로’들이 20년이 지나 실효되는 과정에서 시 집행부가 새로운 지구단위계획에 주민민원을 반영치 않고 그대로 반영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관할 부서들의 답변을 종합했을 때 시가 현재 그어져 있는 유령도로를 추후 지구단위계획 과정에서 전부 제거·수정하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라며 “만약 집행부의 해결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면, 의회는 실효 과정에서 지구단위계획을 재수립하는 용역 예산을 삭감하는 등의 제동도 고려할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현재 고양시의회는 불필요하게 형성된 도로는 10년이 지난 것들에 대해서는 미리 삭제를 제안할 수 있는 권한 또한 가지고 있다. 대부분의 취락 유령도로가 실효되는 2027년까지 기다릴 필요 없이 즉각적인 수정을 집행부에 제안하는 것이다. 그러나 최종 의사 결정권은 집행부에 있다는 점에서 시의 의지가 확고하지 않다면 주민 불편은 가중될 수밖에 없다.
분산된 부서들도 중요한 문제로 지적된다. 현재 그린벨트 해제 중 그려진 도로 등 도시계획시설은 시 도시개발과, 도시계획정책관, 도로정책과 등 3개 부서 소관이다. 이들 부서는 각각 도시혁신국, 도시주택정책실, 교통국 소관으로 ‘컨트롤타워’ 없이 분산해 담당하다 보니 시가 의지를 갖고 해결하기가 어려운 구조라는 비판이다.
권 의원은 “2006년과 2007년에 취락지구들에 대한 대규모 그린벨트 해제 후 처음 맞는 ‘실효’이다 보니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없고, 컨트롤타워도 부재해 주민들의 재산권 피해 등 불편이 가중되는 것”이라며 “공동의 문제 해결을 위해 3개 과로 분산된 GB해제취락의 도시계획도로 관련 업무를 1개 과로 통합하고, 주민과 의회, 집행부 모두 힘을 모으는 것이 절실하다”라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