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찬권 대화노인종합복지관 아코디언 봉사단원
[고양신문] 오찬권(89세) 대화노인종합복지관 아코디언 봉사단원은 “주름상자 같은 곳에서 나오는 소리에 마음을 빼앗겨" 10년째 아코디언 봉사단원으로 활동 중이다. 내년 갑진년이면 90세가 되는 오찬권 단원은 6‧25 참전용사다. 상이등급 6급으로 상이군경 국가유공자다.
70대 후반에 덕양구 명지병원에 진료를 받으러 갔다가 병원 로비에서 마음을 울리는 주름박스 연주에 사로잡혔다. 그날은 덕양노인복지관의 아코디언 봉사팀이 환자들의 치유와 힐링을 위해 연주 봉사를 했다. “나이가 많아도 마음만 있으면 받아 줄 수 있다”는 단장의 말에 힘을 얻어 바로 입단신청을 해서 다음날부터 연습단원으로 활동했다.
그는 “젊은 시절에도 방송에서 들었던 아코디언 소리를 좋아해 늘 마음 한켠에 자리 잡고 있었는데, 명지병원에서 직접 보고 들었던 소리는 더 감동적이고 시간이 흘러도 잊을 수가 없다”고 한다.
연습단원으로 들어갔기에 다른 이들보다 뒤처지지 않으려 집에 와서도 1시간씩 연습했다. 그렇게 덕양노인복지관에서 6년간 활동하다가 좀 더 잘 연주하기 위해 대화노인종합복지관 아코디언 단장 정희준 강사에게 가르침을 받다가, 자연스럽게 단원으로 합류해 지금에 이르렀다.
그는 “아코디언 연주를 하면서 요양원, 경로당 등에도 봉사연주를 가고, 가족모임에서도 연주를 하면서 박수 받을 때 기분이 최고였다”고 한다.
번지 없는 주막, 나그네 설움 등 좋아하는 곡 연주는 더 신나게 연주한다. 황해도가 고향인 그는 이북 5도청 내 한국유격군 8240부대 백토부대전우회 회원이기도 하다. 규칙적으로 생활하는 데다가 구수한 멸치와 된장으로 끓인 시레기국을 즐겨먹고, 담배는 40년 전, 술은 10년 전에 끊었을 정도로 건강관리에 신경을 쓴다. 60대부터는 교회를 다녔고 73세까지 고양에서 서울 오가는 운수업에 종사했다.
6‧25전쟁 때 중학생(18세)이었던 그는 고향인 황해도에서 피난을 나왔는데 교장선생님 말에 따라 학도병으로 전쟁에 나갔다. 20살이 되던 1953년 2월 왼발 뒤꿈치에 총알이 관통했는데 구사일생으로 살아났다.
오 단원은 “부상이 심해 다리를 절단해야 한다고 했는데 애걸복걸 해 자르지 않았다”라며, “지금도 후유증으로 왼쪽을 절며, 비가 오는 날이면 통증이 더 심하다”고 한다.
엄마, 남동생 1명, 여동생 2명은 6‧25 당시 피난 오는 배에 못 탔고, 아버지와 단둘이 피난을 나왔다가 헤어졌다. 5년 만에 기적적으로 아버지와 눈물겨운 상봉을 해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까지 같이 살았다. 가정을 이뤄 아들 3명, 딸 3명을 뒀다.
오찬권 단원은 “인생 하반기에 시작한 아코디언 봉사연주는 건강이 허락할 때까지 계속하겠다”는 의지를 나타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