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수 소설가의 ‘텃밭에서 세상읽기’
[고양신문] 다사다난했던 한 해가 저물고 새해가 밝았다.
북극한파에 꽁꽁 얼어붙은 농장에 들렀더니 세상에, 날씨가 얼마나 추웠던지 졸졸 물을 틀어놓았던 수도꼭지가 밤새 얼어서 터져버렸다. 물을 잠가놓았다면 모를까, 분명 물을 틀어놓았었는데 이 난리가 나다니 내심 당황스러웠다. 수도꼭지를 교체한 뒤 라디오를 틀어놓고 커피를 탔다. 등유를 사용하는 난로를 틀어놓았는데도 하우스 안의 기온이 좀체 오르지 않는다. 하우스 사면은 온통 성에로 뒤덮여 꼭 겨울왕국에 갇힌 것만 같다.
모락모락 김이 피어오르는 커피잔을 들고 하우스 문을 여니 오싹한 냉기가 훅 몰아닥친다. 눈에 뒤덮인 밭들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자니 봄부터 가을까지 넘실넘실 이어졌던 싱그러움의 기억들이 온통 거짓말처럼 느껴진다. 채찍같이 날선 바람들이 우우 몰려다니는 농장에는 모든 게 죽어버린 듯 황량하기 짝이 없고, 생명의 기척이 느껴지지 않는 밭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심사는 쓸쓸하기 그지없다.
문득 먼 과거에 지하철역 광장 후미진 구석에서 드럼통에 모닥불을 피워놓고 언 몸을 녹이던 노숙자들 곁에서 소주를 얻어 마시며 첫차를 기다리던, 암울한 겨울 새벽이 떠오른다. 그때 나는 투표함 바꿔치기가 이루어졌던 구로구청을 점거했다가 백골단에게 쇠파이프로 흠씬 두들겨 맞은 뒤 성북경찰서 유치장에 갇혀서 며칠간 조사를 받았다. 조사를 끝낸 형사들은 참 비겁하게도 택시비도 없는 사람들을 새벽에 풀어주었다.
이를 어쩐다, 잠시 우두망찰하다가 무작정 오돌오돌 떨면서 지하철역을 향해 걸었고 그곳에서 모닥불을 쬐고 있던 한 무리의 노숙자들을 만났다. 그들은 아무 말 없이 곁을 내어주며 소주와 새우깡을 건넸고 그 한 잔의 술은 더할 나위 없이 고맙고 서러웠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날 어떻게 집으로 돌아왔는지 도통 기억이 나질 않는데 어느 순간 거리를 가득 메운 크리스마스 캐럴이 들려왔고 나는 왈칵 서러워져서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건 유월 항쟁을 겪으면서 품어왔던 희망이 잘게 부서지는 아픔이었고 내 생에 봄날은 없다는 절망감이었다.
그래서일까, 삼십 년을 훌쩍 넘긴 지금까지도 나는 거리를 걷다가 크리스마스 캐럴이 들리면 가슴이 먹먹해질 때가 왕왕 있다. 겨울은 얼어붙은 땅속에서 뿌리를 내리는 마늘처럼 서서히 봄을 맞이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만한 나이가 되었는데도 혹한을 건너온 기억들은 묘한 긴장감으로 등 뒤에서 어깨를 툭툭 쳐가며 과거의 시간을 소환하곤 한다.
그때마다 나는 오늘을 깊이 들여다보면서 내일을 생각하게 된다. 그건 봄을 시기하는 음험한 그림자들이 도처에 똬리를 틀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북풍한설에도 처마에 주렁주렁 매달린 고드름들이 어느 날 툭툭 떨어져서 부서지고 그 자리에 파란 새싹이 돋아나듯이 봄이 다가오는 건 누구도 막을 수 없다.
눈에 덮여 새파랗게 얼어붙은 텃밭을 둘러보면 한 해가 저물어가는 맹추위 속에서도 봄의 기운이 은은하게 느껴진다.
시월 하순에 파종해서 싹을 틔운 시금치들은 영하 십도를 넘나드는 강추위 속에서도 굳건히 겨울을 견디고 있고, 달래와 부추와 대파도 푸른 빛을 잃지 않았다. 봄의 전령인 냉이도 당장 캐서 먹어도 좋을 만큼 싱그러움을 잃지 않았고, 추위에 취약한 양파도 보온터널 속에서 꼿꼿하게 하늘을 우러르고 있다.
그 모습을 보면 봄은 기다리지 않아도 이미 우리 곁에 머물고 있다는 이야기를 겨울바람이 속삭이듯 들려주는 것만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