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운영 중단 주민협치시설 7곳
협치운영 모델 사라지나

작년 12월 14일 위탁 계약 종료를 앞두고 일산도서관에서 진행된 마지막 '산도살롱' 행사 모습. 2년 6개월간 민간위탁으로 운영된 일산도서관은 올해 경기도 최우수 공공도서관으로 선정되는 등 많은 성과들을 인정받았으나 시는 '재위탁 불가'를 통보했다.
작년 12월 14일 위탁 계약 종료를 앞두고 일산도서관에서 진행된 마지막 '산도살롱' 행사 모습. 2년 6개월간 민간위탁으로 운영된 일산도서관은 올해 경기도 최우수 공공도서관으로 선정되는 등 많은 성과들을 인정받았으나 시는 '재위탁 불가'를 통보했다.

사용연장 거부 배다리 마관협은 행정심판 중
“돈 내고 쓰라”는 고양시, 1년째 공간 방치
주민위한 공간운영에 주민은 배제?
원당학습관·일산도서관 등 줄줄이 ‘중단’  


[고양신문] “애초에 도시재생 활성화를 위해 조성된 공간인데 지역주민들이 주인의식을 갖고 운영해야 하는 게 사업목적에 맞는 것 아닌가요? 그동안 행정을 대신해 동네 발전을 위해 공익활동을 해왔는데 이제 와서 내쫓으려고 하는 이유가 도무지 납득이 안돼요.”

지난 28일 원당 도시재생 지역의 사무실에서 만난 신동수 원당 배다리마을관리협동조합 이사장은 하소연을 털어놨다. 현재 마을관리협동조합(이하 마관협) 주민들은 그동안 운영해왔던 원당 배다리사랑나눔터 1·5층 임대 문제를 두고 고양시를 상대로 행정심판을 진행 중이다. 

도시재생 거점시설인 원당 배다리사랑나눔터 건물. 이곳 1,5층은 주민들로 구성된 마관협이 운영중이었지만 지난 7월 재계약을 앞두고 고양시가 사용승인을 불허해 현재 행정심판이 진행되고 있다.
도시재생 거점시설인 원당 배다리사랑나눔터 건물. 이곳 1,5층은 주민들로 구성된 마관협이 운영중이었지만 지난 7월 재계약을 앞두고 고양시가 사용승인을 불허해 현재 행정심판이 진행되고 있다.

 

앞서 지난 7월 배다리마관협은 계약만료를 앞두고 시에 사용신청 연장을 요청했으나 담당부서로부터 거부 통보를 받았다. 도시재생 거점공간에 대해 보다 효율적인 운영관리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서라는 게 시의 답변이었다. 마관협은 그동안 이 공간을 기반으로 각종 문화공연과 교육, 대관 등의 공익사업을 펼쳐왔으며 이를 바탕으로 지역기반 수익모델까지 개발하면서 전국적인 모범사례 중 하나로 평가받아 왔다. 하지만 시는 이곳 공간 운영에 대한 어떠한 객관적인 평가지표조차 없이 단순히 시의 ‘정무적 판단’을 이유로 운영 중단을 결정했다.   

마관협 측은 납득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신동수 이사장은 “이곳은 도시재생 뉴딜사업 마중물 사업의 일환으로 지은 건물”이라며 “사업이 끝난 이후 협동조합이 이곳을 거점 삼아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마을을 관리·운영하는 게 본래 목적인데 이제 와서 시가 자기네 소유 건물이니 나가라는 식으로 통보하는 것은 말도 안된다”고 주장했다. 지역주민들 또한 “행정의 요청으로 협동조합을 만들고 지금까지 헌신해왔는데 배신감이 크다. 주민들을 농락하는 것 아니냐”며 반발하고 있다. 

앞서 고양시는 2022년 이동환 시장 취임 후 도시재생 사업 전반에 대한 재검토를 통해 전면 중단을 결정했다. 시의 예산지원을 끊었을 뿐만 아니라 사업 기간이 남아있는 지역에 대해서는 국비 반납까지 불사했다. 문제는 남아있는 주민 거점시설이었다. 애당초 도시재생의 사업 목표는 주민과 행정과의 ‘협치운영’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에 각 거점시설은 철저히 주민주도의 목적에 맞게 운영되도록 설계됐다. 이동환 시장이 부서에 지시한 ‘민간기업 유치를 통한 수익 창출’은 애초에 건축물 사용 용도에 부합하지 않았다. 한 시의원은 이에 대해 “마치 어린이박물관 목적으로 국비를 받아놓고는 노인회관으로 운영하겠다는 꼴”이라고 지적하기도 했. 

문제는 도시재생 거점시설을 민간기업에 열어두겠다는 시의 발상은 정작 상급부서인 국토교통부와도 협의가 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때문에 현재 도시재생 거점시설로 조성된 화전 드론센터 1층과 고양동 농협창고의 경우 1년이 지나도록 운영되지 않은 채 방치되고 있다. 고양동 도시재생에 참여해온 유미정 더높빛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은 “주민주도로 협동조합을 만들고 거점 공간까지 겨우 마련했는데 정작 고양시는 수백만원의 월세를 내지 않으면 쓰게 해 줄 수 없다며 1년째 시설을 비워놓고 있다”며 “농협 재산인 창고를 주민들이 나서서 도비지원 등을 받아 공유공간으로 만들었는데 왜 시가 주인행세를 하는지 모르겠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반면 시는 거점 공간을 계속 비워놓는 한이 있더라도 임대료 면제(감면) 대상인 주민 협동조합에게는 내어줄 수 없다는 입장이다. 시 관계자는 “올해 초부터 거점시설 운영주체를 마관협 뿐만 아니라 다른 민간기업까지 확대하는 내용의 도시재생활성화계획 변경안을 국토부에 제출했지만 아직까지 승인이 나지 않고 있다”며 “때문에 각 거점시설에 대한 운영계획도 아직 마련하지 못했다. 언제쯤 공간을 운영할 수 있을지는 현재로서 미정”이라고 전했다.
 


줄줄이 '문 닫는' 주민협치 운영시설 
이처럼 민선 8기 이후 계약만료 혹은 예산지원 중단 등으로 인해 운영이 중단된 고양시 ‘주민협치(민간위탁)’ 시설은 2023년 한 해에만 10곳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된다. 이들 시설은 공통적으로 그간 행정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공공’의 영역에 시민사회 혹은 주민이 ‘협치 파트너’로 참여하는 새로운 형태의 실험들이었다. 이들 상당수는 많은 성과를 거두고 있었다. 

대표적으로 2014년 원당 뉴타운 해제지역에 처음 자리 잡은 뒤 9년간 운영해온 원당마을행복학습관 사례가 있다. 주민자치와 마을공동체, 도시재생 컨셉트로 고양에서 처음 시도된 원당행복학습관은 2023년 기준 28개 프로그램에 수강생 700여명, 연인원 3060명이 오가는 지역의 커뮤니티공간으로 자리잡았다. 학습관 운영을 담당했던 백미영 관장은 “처음에는 행정의 필요에 의해 시작한 사업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지역주민들이 애정을 가지고 함께 만들어가는 공간으로 발전했다”며 “뜨개질 수업을 들으러 오신 80세 어르신이 나중에 직접 시민강사가 되어 다른 주민들을 가르치기도 했고 생태환경 수업을 듣던 분들이 직접 협동조합을 만들어 운영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전했다. 

지난 11월 2일 원당마을행복학습관 운영종료를 앞두고 주민들이 모여서 마지막 행사를 진행하는 모습.
지난 11월 2일 원당마을행복학습관 운영종료를 앞두고 주민들이 모여서 마지막 행사를 진행하는 모습.

 

하지만 이처럼 성공사례로 평가받던 원당마을행복학습관도 올해부터 운영이 중단된다. 고양시가 원당4구역 뉴타운 개발에 따른 지역여건 개선, 타 교육프로그램과의 중복·형평성 문제 등을 들어 예산지원 중단을 통보했기 때문이다. 백미영 관장은 “2022년부터 학습관 운영에 대해 정치적 시비가 계속 있어오긴 했지만 이렇게 운영 중단을 결정할 거라고는 생각 못했다”며 “마음에 들지 않으면 운영주체만 바꾸면 될 문제인데 이렇게 학습관 자체를 없애버리면 그동안 이곳을 찾던 주민들은 어디로 갈지 걱정된다”고 토로했다. 지난해 11월 학습관 폐관을 앞두고 열린 행사에는 지역주민 다수가 참여해 아쉬움과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공공도서관 민간 운영 모범사례로 평가받고 있는 일산도서관의 위탁종료 소식도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사회적기업 ‘행복한아침독서’가 맡아 2년 6개월간 운영해온 일산도서관은 과거 조용하고 엄숙한 도서관과 차별화된 커뮤니티형 도서관을 지향하면서 지역주민과 문화계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대표 프로그램인 ‘산도살롱’은 매달 시민이 직접 주제를 정하고 발표자와 참여자가 되어 다양한 주제로 토론하는 자리로 도서관에 방문한 시민들에게 큰 인기를 얻었다. 그 외 동아리활동과 지역사회를 시민들이 직접 취재하고 기록하는 아카이빙 활동, 독립서점독립출판사와 연계한 지역 네트워크 등도 관심을 모았다. 이러한 노력 덕분에 일산도서관은 올해 경기도가 처음 시행한 공공도서관 운영평가에서 도내 5곳에만 수여되는 ‘최우수도서관’에 선정되는 영예를 누리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한 높은 평가에도 불구하고 일산도서관은 내년부터 직영 운영으로 전환될 예정이다. 박미숙 관장은 “도서관에 대한 외부 평가도 좋았고 운영상의 큰 문제점이 없었기 때문에 위탁 재연장에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며 “하지만 시는 현재 일산도서관 민간위탁이 잘못된 법 적용에 의거해 진행됐다는 절차적·기술적 문제를 들어 운영종료를 통보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게다가 내년에는 고양시 내 작은 도서관 4곳에 대한 위탁종료 시기도 다가오는데 현재 시는 이 도서관들에 대한 운영권을 회수한 뒤 계약직 직원을 파견할 것으로 알려져 우려가 커지고 있다. 

고양시 새마을회가 운영하는 구 일산역 전시관 옆에 자리한 장난감도서관 또한 시의 운영지원이 종료된다. 등록문화재인 일산역의 활용 취지와 맞지 않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전시관을 확장하는 대신 장난감도서관의 문을 닫기로 결정한 것이다. 다만 새마을회 측은 시의 지원이 중단되더라도 장소를 이전해 계속 운영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고양시 새마을회 관계자는 “내년 2월부터 정발산동 새마을회 사무실 3층으로 장소를 옮겨 운영을 이어나갈 예정”이라며 “시민들의 만족도가 높은 시설인 만큼 시의 지원이 끊기더라도 기업 협찬과 자구책 마련 등을 통해  해결방안을 마련해보겠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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