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르신들이 겪는 ‘디지털 소외’
고속버스·택시·병원·은행·관공서 등
생활 속 디지털 전환 가속화
민원서류 발급 시 수수료 차이도
“과도기 없어 적응하기 어렵다”
[고양신문] “키오스크로 결제해야 하는 식당에선 뒷사람 눈치도 보이고 창피하기도 해요. 결제하기까지 절차가 복잡하고 잘못 누를까봐 걱정됐어요. 인터넷 사용을 어려워하니 고속버스 예매도 딸이 해주는데 오늘은 현장에 와서 예매했어요.”
고양종합터미널 무인 발권기 앞에서 진땀을 흘리던 이지순(가명, 69세)씨는 직원 도움을 받고서야 승차권을 예매했다. 고양종합터미널은 코로나19 팬데믹을 겪으며 작년부터 매표소 창구를 폐쇄하고 무인발권기 4대를 비치했다. 무인발권기로 모든 예매와 발권을 대체하면서 발권을 돕는 직원 한 명만 상주한다.
디지털 기기가 보편화되면서 음식점이나 카페뿐 아니라 고속버스, 고속철도 등도 온라인이나 기계를 통한 예매로 바뀌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따르면 국내 키오스크 운영 대수는 2019년 18만9951대에서 2022년 45만4741대로 3년 사이 2.4배 증가했다. 카페, 음식점 등 요식업 부문은 동기간 5479대에서 8만7341대로 15.9배 늘었다. 코로나19 팬데믹 속 디지털 전환은 일상에서 많은 변화와 편의를 가져다줬지만 디지털기술에 익숙하지 않은 이들에겐 불편함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고양시엔 디지털 취약계층인 노년기 인구(60세 이상)가 26만305명으로 전체 인구의 24.2%를 차지한다. 고령층은 정보취약계층으로 분류되는 장애인, 고령층, 저소득층, 농어민 중에서도 디지털정보화 수준이 가장 낮았다.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 ‘2022 디지털정보격차실태조사’ 에 따르면 고령층의 디지털정보화 수준은 69.9%로 나타났다. 생활정보, 전자상거래, 금융거래, 공공서비스 등의 생활서비스 이용률도 76.7%로 정보취약계층 중 가장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중에서도 금융거래 서비스(49.2%), 전자상거래 서비스(42.1%), 공공서비스(21.2%) 이용률이 저조했다.
이지순씨는 요즘 들어 택시 잡기도 어려워졌다고 설명했다. 택시 호출 서비스 어플이 보편화됐지만 정작 이씨는 어플로 택시 호출하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이다. 이씨는 길가에서 손을 흔들어 택시 잡기가 어려워졌고 간혹 ‘빈차’인 줄 알았던 택시가 어플로 손님을 받아 승차하지 못했던 경험도 털어놨다. 이씨는 “누군가 택시를 호출해 주거나 택시 정류장이 가깝지 않으면 택시를 타지 않게 됐다”고 말했다.
버스터미널과 택시 호출뿐 아니라 병원, 은행, 관공서도 디지털 전환이 이뤄졌다. 대학병원 접수 등록이나 병원비 수납도 무인 기계로 진행되고 있다. 병원 예약 서비스 어플이 등장하면서 어플로 병원 예약을 하지 못한 노인이 현장접수를 하고 하염없이 기다려야 하는 상황도 발생한다.
은행 업무의 디지털 전환으로 은행 오프라인 영업점도 사라지는 추세다. 고양시 내 시중은행 점포수(우리·SC제일·KB국민·신한·한국씨티·하나)도 2019년 72개소에서 2021년 64개소로 줄었다. 통장관리나 계좌이체 등 주요 은행 업무가 빠르게 디지털화되면서 그만큼 어려움을 겪는 노인도 늘어났다.
관공서에서도 무인민원발급기가 보편화되면서 창구 순서를 기다릴 필요 없이 서류를 발급받을 수 있어 편리해졌다. 하지만 무인민원발급기 이용이 어려운 노인들의 경우 누군가의 도움을 받거나 창구에서 발급해야 한다. 무인발급기를 이용하지 못하는 것이 가족관계등록부와 주민등록 등·초본은 무인민원발급기에서 발급하면 각각 500원의 수수료를 내거나 무료 발급 가능하지만 창구에 방문해 발급할 경우 각각 1000원, 400원이 수수료를 지불해야 한다. 디지털 취약계층에겐 생활 속 수수료가 더해지고 있는 상황이다.
노인의 디지털 소외를 해결하기 위해 고양시 3개 노인종합복지관에서 디지털 교육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디지털 배움터·체험존, 스마트폰·컴퓨터·정보화 교실 등을 운영하며 가속화되는 디지털화 속에서 노인들이 적응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일산동구청에서 민원봉사를 하는 윤경자(가명, 67세)씨는 “관공서에서 민원봉사를 하다 보면 기계 앞에서 헤매는 사람들은 대부분 고령층”이라고 설명했다. 윤씨는 민원봉사를 하며 기계 다루는 법을 알려주고 있지만 은행 업무는 어플이나 ATM기계 대신 창구를 방문해야 하는 자신의 상황을 털어놨다. 윤씨는 “노인복지관에서 디지털 교육을 하지만 복지관에 가기 어려워하는 사람도 있고 아직 노인들이 보편적으로 이용하기엔 어려움이 많다”며 “노인들도 디지털 전환에 맞춰 가야겠지만 조금 천천히 바뀌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