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의 공포, 사라지는 한국』 펴낸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정재훈 교수는 서울이나 수도권에서 은퇴한 노인, 중장년, 혹은 도시의 삶에 지친 청년들이 내려가서 영화 ‘리틀포레스트’같은 마을을 만들고 누구나 살고 싶은 생활환경을 만들어보면 어떨까, 질문을 던진다. 그는 사람 친화적 시각에서 마을을 만들면 결국 가족 친화적 마을이 될 수 있고, 이런 사례들이 출산율 문제 해결과도 연결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정재훈 교수는 서울이나 수도권에서 은퇴한 노인, 중장년, 혹은 도시의 삶에 지친 청년들이 내려가서 영화 ‘리틀포레스트’같은 마을을 만들고 누구나 살고 싶은 생활환경을 만들어보면 어떨까, 질문을 던진다. 그는 사람 친화적 시각에서 마을을 만들면 결국 가족 친화적 마을이 될 수 있고, 이런 사례들이 출산율 문제 해결과도 연결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비용부담 줄이는 부분지원만으로는 한계
일·가정 양립과 교육개혁, 노동시장 개혁, 
성평등, 다양한 삶 · 다양한 가족 포용 등
삶 만족도 높이는 구조개혁과 가치변화 필요


[고양신문] "한국이 또 한 번 급격한 출산율 하락을 기록했다. 현재 추세가 지속된다면 한국은 잠재적 소멸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다." 
지난해 우리나라 합계 출산율이 집계 이래 최저치인 0.72명을 기록하자 영국의 한 일간지가 논평한 내용이다. 초저출산·초저출생 문제는 이미 수년전부터 한국사회의 가장 큰 문제로 대두되어 왔지만 상황은 나아지지 않고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정부의 연이은 정책발표에도 불구하고 출산율 감소세는 여전히 반등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문재인 정부 당시 국무총리실 저출생·고령화 특별보좌관 등을 지냈으며 현재 저출산고령화위원회 자문위원단 위원 등을 맡고 있는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장님 코끼리 만지기 식의 부분적 정책을 넘어 국가 대개조 프로젝트 수준의 종합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구체적으로 획기적인 투자와 부모의 일·가정 양립, 교육개혁, 노동시장 개혁, 다양한 삶을 포용하는 가족관계의 변화, 새로운 가치관 등 지금과는 다른 획기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얼마 전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저서 『0.6의 공포, 사라지는 한국』을 펴내 화제가 된 정재훈 교수를 27일 만나 자세한 내용을 들었다. 
 

책을 내게 된 계기는.
그동안 저출산 대응에 대한 답은 넘쳐났지만 구슬이 서말이어도 꿰어야 보배인 것처럼 각각의 이야기를 총체적으로 묶어내는 작업이 필요하겠다고 생각해서 시작하게 됐다. 워낙 한국사회에 중요한 문제다보니 저마다 각자의 위치에서 정답을 내놓고 있는데 개개별 정책들이 일정정도 성과를 낼 수 있을지 몰라도 정작 그것들이 모여서 시너지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 구조는 마련되지 않은 것이 현재의 문제다. 이를테면 주거지원이 저출산 문제의 하나의 대응책이 될 순 있지만 사실 이것은 하나의 개별정책인 것이고 보편적 복지국가로 가는 큰 방향틀 속에서 어떤 형태의 주거지원을 도입할 것인가가 중요한데 정작 이 부분에 대한 사회적 합의는 논의되지 않고 있다. 그래서 이제는 개별정책을 넘어 하나의 큰 설계도를 고민해야 한다는 차원에서 책을 냈다. 

저출산·고령화 문제 관련 정부기구에 참여해온 입장에서 그동안 정책에 대해 평가한다면.
각각의 정책들은 일정정도 성과를 거뒀다고 본다. 가령 주거지원을 통해 출산율이 올라가는 효과가 있었고 출산장려금도 개인적으로 반대 입장이긴 하지만 어쨌든 받는 사람들의 만족도가 올라간 게 사실이다. 다만 그것들이 서로 연계되면서 시너지 효과를 내도록 했어야 했는데 그 부분은 실패했다고 보고 결과적으로 한국사회 구성원들에게 5~10년 뒤의 삶에 대한 어떤 확실성과 희망, 비전을 제공하는 데는 실패했다고 본다. 결국 어떤 나라를 만들 것인가에 대한 고민까지 연결되어야 하는 부분이다. 

책의 주제이기도 하지만 현재 우리나라는 유래 없이 낮은 출생률을 보이고 있다. 이로 인해 어떤 문제들이 발생할 것으로 예측되나.
혹자는 인구수가 줄어들면 오히려 살기 좋은 쾌적한 환경이 되는 것 아니냐고 말한다. 문제는  출생률이 줄어들면 그만큼 장기적으로 생산가능 인구 비중이 낮아지게 되고 경제적 측면뿐만 아니라 정치, 사회적으로 활력을 잃어간다는 점이다. 당장 지방도시들을 중심으로 소멸위기가 현실화 되고 있지 않나. 
사실 출산율 저하문제는 서유럽 국가들도 수십년째 겪어온 사안이다. 독일의 경우 2차 세계대전 이후 70년 동안 인구변화를 겪어왔지만 저출산 대응정책과 이민정책 등을 적극 추진하면서 현재 8000만명 수준의 인구를 유지하고 있다. 그런데 한국은 현재 추계로 보면 40년 뒤에 현재 인구에서 2000만명 이상 줄어들 수 있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이제 외부 인구유입도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고 유럽이 거의 100여년에 걸쳐 진행해온 변화들을 한국사회는 단기간에 급격하게 겪어야 하기 때문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고민을 해봐야 할 부분인 것 같다. 

저출산 문제로 돌아가보면 크게 ‘비용부담 해소’와 ‘삶의 만족도 향상’이라는 두 가지 과제를 동시에 해결해야 한다고 지적했는데.
아이를 낳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비용부담 해소’가 필요조건이고 ‘삶의 만족도’가 충분조건이라고 본다. 지금까지 정책은 주로 출산지원금 같은 비용부담 문제에만 주로 집중되어 왔는데 두 가지 측면이 모두 해결되어야 ‘아이를 낳기 좋은 사회’를 만들 수 있다. 특히 삶의 만족도 측면에서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성평등 문화 정착이다. 70~80년대 서유럽 사례를 보면 복지국가 시스템이 갖춰졌음에도 출산율이 줄어들었는데 이유는 여성의 사회진출이 늘면서 일가정 양립이 불가능해짐에 따라 저출산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그래서 사회적 돌봄 체계 확립부터 시작해 시장영역에서 기업들의 ‘가족친화경영’이 도입되고 나아가 여성뿐만 아니라 부모 모두의 일·가정 양립이 가능해지면서 다시 출산율이 오르기 시작했다. 물론 우리나라의 경우는 복지시스템도 아직 부족하지만 설사 비용문제가 해결된다고 해도 성평등, 나아가 삶의 만족도 전반이 해결되지 않으면 출생율 재고는 요원하다고 볼 수 있다.

언급한 일가정 양립은 법제도 도입도 필요하지만 사회문화적 변화 또한 뒤따라야 할 것 같은데.
최근 논의 중인 유보통합과 늘봄학교 같은 사회적 돌봄체계 구축도 중요하고 또 한 축으로는 노동시장 영역에서 기업의 역할이 필요하다. 가족친화경영으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국가보다는 사용자와 노동자가 논의의 주체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서유럽 복지국가의 경우 90년대 말부터 가족친화경영을 국가가 아닌 시장이 앞장서서 도입했는데 왜냐하면 저출산 현상이 지속되면 결국 기업이 망할 수밖에 없다는 위기의식 때문이었다. 반면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기업에 가족친화경영 인식이 부재한 상황에서 국가가 앞장서서 도입하다보니 아직까지 제대로 정착되지 않고 있다. 가령 육아휴직도 중요하지만 직원들이 일과 육아를 병행할 수 있도록 근로시간을 조정할 수 있는 탄력·유연근무제가 적극 검토될 필요가 있다. 

저출산 문제 해결방안 중 하나로 ‘사람(가족) 친화적 마을’을 만들자고 제안한 부분이 눈에 띈다.
사회적 돌봄체계 구축이나 가족친화경영 도입은 국가와 시장 차원에서 도입해야 할 부분이고 또 하나는 정말 아이를 낳고 키우기 좋은 환경을 만드는 사례가 필요하다. 서울이나 수도권에서 은퇴한 노인, 중장년, 혹은 도시의 삶에 지친 청년들이 내려가서 영화 ‘리틀포레스트’같은 마을을 만들고 누구나 살고 싶은 생활환경을 만들어보면 어떨까. 사람 친화적 시각에서 마을을 만들면 결국 가족 친화적 마을이 되는 것이고 이런 사례들이 출산율 문제 해결과도 연결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매번 지역소멸 대응기구 만든다고 한해에 몇 백억씩 투자하는데 차라리 이러한 사례들을 만든다면 중장기적으로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을 것 같다. 

'아이 친화적 도시'를 만들기 위한 국내외 사례를 보여주고 있는 정재훈 교수
'아이 친화적 도시'를 만들기 위한 국내외 사례를 보여주고 있는 정재훈 교수

고양시 내에서도 시도할 수 있는 부분들이 있을 것 같다.
당연히 그렇다. 이를테면 예전 킨텍스 주변에서 살고 있을 때 2~3살 된 아이가 지나가던 자전거에 치여 사망한 사고가 있었다. 자전거뿐만 아니라 차량운행속도 등 여러 측면에서 우리나라는 엄마가 어린아이를 데리고 혼자 산책을 다니기에는 매우 환경이 위험하다고 볼 수 있다. 독일에서 거주하던 시절을 돌이켜보면 사람들이 사는 마을에는 기본적으로 보행권이 우선이고 아이가 다니는 곳은 차량속도도 10㎞ 이내로 제한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일률적으로 제한속도를 30㎞로 규정하고 있는데 고양시 차원에서 조례개정을 통해 10㎞ 정도로 제한하는 등의 변화를 시도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핵심은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국가적 정책도 중요하지만 당장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이 지역사회에서 아이를 키우기 좋은 환경을 만드는 방안을 고민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요즘 지자체마다 출산율 지원금 경쟁이 활발한데 차라리 이런 부분에 비용을 투자하는 것이 효과가 클 수 있다. 

마지막으로 강조하고 싶은 게 있다면.
가족 중심의 지원정책에서 아이 중심의 지원정책으로 변화되어야 한다. 즉 ‘정상가족’에서 태어난 아이만 인정받는 사회규범을 변화시킬 필요가 있다. 부계혈통 중심의 민법체계도 개정되어야 하고 당장 자식이 엄마의 성을 쓸 수 있도록 호적제도에 변화만 가져와도 많은 파급효과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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