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 체류기 『행복@로컬』 펴낸 
정석 서울시립대 도시공학교수

하동·목포·전주·강릉 한달살이
행복할 수 있다는 믿음 생겨 
재정투자, 비수도권으로 옮겨야  
로컬로 자발적 이주, 치유의 길 

 [고양신문] 현재 총선 국면에서 수도권에서 ‘메가시티 서울’ 이슈가 불쑥 떠올랐다. 하지만 대한민국 전체로 보아서는 지방소멸이라는 이슈가 더 절박하다. ‘메가시티 서울’ 이슈에 가려지는 측면이 있지만 ‘인구 쏠림’에 따른 지방소멸이야말로 한국사회의 문제가 총체적으로 드러난 ‘말기 증상’이라고 진단하는 도시연구가가 있다. 대한민국 만병의 근원이 수도권 과반 인구에서 비롯된다고 믿는다는 점에서 이 도시연구가는 ‘메가시티 서울’을 바라는 이들과 정확히 대척점에 서있다. 그는 지방소멸 문제를 등외시하고 메가시티 서울을 바라는 것이 과연 상식적인가라고 되묻는다.
  
정석 서울시립대 도시공학과 교수 이야기다. 정석 교수는 오랫동안 지방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며 활동해 온 도시연구가다. 정 교수는 국토 면적의 11.8%에 불과한 수도권의 인구가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절반을 넘겼다는 사실은 따지고 보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얼마나 지방 곳곳을 향유하지 못하고 있는가를 역설적으로 보여준다고 말한다. 그는 지방소멸 위기시대에 지방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절박하게 인식하고 있으며 수도권 집중에 대한 비판의식을 누구보다 날카롭게 가진 학자다.  

이러한 정 교수가 지방에 대한 애정이 가득 담긴 여행에세이 『행복@로컬』이라는 책을 펴냈다. 2021년 3월부터 2022년 2월까지 1년간의 연구년 동안 하동, 목포, 전주, 강릉 등 4곳 ‘로컬’에서 한달살이를 기록한 책이다. 이 4곳을 한 달씩 살아봤다지만 단순한 여행에세이라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 하동, 목포, 전주, 강릉의 생생한 현장에 대한 연구 보고서며, 여행을 통해 만났던, 로컬에 오래 살아온 사람들이 왜 더 행복한지 수도권 대도시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로컬에 살기를 권하는 책이다. 오늘날 대한민국 수도권에서 살면서 진정으로 행복한 삶에 대해 고민하고 아파하는 모든 이들을 위한 처방전이라 볼 수 있다. 

정석 서울시립대(도시공학) 교수가 로컬에서 한 달을 살며 느낀 행복 이야기가 담긴 책 『행복@로컬』을 펴냈다. 정 교수는 "지금 살고 있는 대도시에서 행복하지 않다면 그 대안으로 로컬을 추천한다"고 말했다.
정석 서울시립대(도시공학) 교수가 로컬에서 한 달을 살며 느낀 행복 이야기가 담긴 책 『행복@로컬』을 펴냈다. 정 교수는 "지금 살고 있는 대도시에서 행복하지 않다면 그 대안으로 로컬을 추천한다"고 말했다.

이 책을 쓰게 된 동기는. 
내 마음 속에 가장 뚜렷이 자리 잡고 있는 연구주제는 대한민국의 ‘로컬’이다. 대한민국의 로컬이 사라지는 것이 아닐까라는 걱정을 많이 한다. 내가 말하는 ‘로컬’은 크게 4가지로 볼 수 있다. 서울과 수도권이 아닌 비수도권, 대도시가 아닌 중소도시, 신도시가 아닌 원도심, 도시가 아닌 농산어촌 시골로 ‘로컬’을 정의해본다.  
지금 추세는 로컬은 텅 비어가는데 수도권 인구는 점점 넘쳐나는 실정이다. 한쪽은 결핍이 있고 다른 한쪽은 잉여가 있다. 지금 잉여와 결핍의 연결이 가장 절절히 요구된다. 바로 국토와 인구의 연결이다. 저마다 특색과 매력이 넘치는 대한민국 로컬로 사람들이 찾아오는 꿈을 꾸었고, 그것이 가능할지 1년 동안 시험해 보기로 했다. 마침 2021년에 수업이 없는 1년간의 연구년 동안 대한민국 구석구석을 다녀볼 수 있었다. 수도권이 아니라 로컬에 있기 때문에 더 행복한 사람들을 기록물로 남겼고 그 결과가 이 책 『행복@로컬』이다. 이 책을 서울과 수도권 사람들에게, 대도시 사람들에게, 신도시 사람들에게 권한다.  

하동, 목포, 전주, 강릉 등 4곳의 매력이 각각 다른 것 같은데, 실제로 다녀보니 어떠했나. 
하동은 고요했고, 목포는 재미있었으며, 전주는 푸근했고, 강릉은 상쾌했다. 하동은 벚꽃이 흐드러지게 필 때 머물렀는데 정말 행복했다. 하동에서는 한 달 동안 아무런 계획 없이 살았는데 ‘이렇게 살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하동의 차와 햇볕과 고요함은 나에게 힐링의 느낌을 주었다. 
목포는 정말 재미있는 곳이었다. 목포에 한 달 동안 머문 곳이 협동조합이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였다. 그곳 아래층 맥주집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즐겁게 보냈다. 만난 사람들 중에서 서울에서 내려와 창업을 한 6명의 30대 청년 이야기가 마음에 남는다. 어깨를 짓누르던 서울의 주택 구입 문제를 목포에서 해결하고 나니 활력이 생기더라는 이야기다. 창업을 위한 공간 임대료도 서울에 비해 훨씬 싸 창업을 수월하게 했다고 이야기했다. 청년들의 로컬 창업은 이제 트렌드로 자리잡았다. 
내 고향인 전주에서의 한달살이는 따뜻했다. 한 달 동안 게스트하우스로 운영되는 ‘인봉집’이라는 곳에 머물렀다. 부모님과 가족, 지인들을 초대해 한 달 살아보니 전주라는 도시도 전주시민들도 모두 따뜻함을 지니고 있었다. 
강릉은 방금 샤워한 기분처럼 상쾌했다. 숲과 바다가 주는 상쾌함을 한 달 동안 누렸다.  

일반인들의 로컬에서 한달살이는 시간과 비용 모든 측면에서 쉽지 않은 일이다.
물론 직장인들이 하기는 어렵다. 그렇지만 은퇴한 중장년들은 대도시에만 머물지 말고 로컬에서 한 달 정도 살아보기를 권한다. 여기 저기 돌아다니기보다 한 곳에서 본인의 삶이 스며들 수 있도록 체류했으면 한다. 
직장인이라면 휴가 기간 여러 군데 여행하기보다 한 곳에 머무는 ‘체류형 여행'이 되길 바란다. 많은 사람들이 대한민국의 로컬을 경험하면서 ‘이곳에서 한번 살아보고 싶구나'라는 것을 느끼길 바란다. 이러한 사람들이 점점 늘어날 때 로컬의 ’생활인구‘에 편입되고 그 이후에는 ‘정주인구’가 된다.   

대한민국 만병의 근원을 수도권 과반 인구라고 보는 이유는. 
대한민국은 최단기간에 최빈국에서 선진국에 진입한 국가다. 그런데 행복하지 않은 선진국이다. 우리를 불행하게 만드는 원인은 수도권의 인구집중이다. 우리나라 인구 문제의 핵심은 인구 ‘감소’보다 ‘쏠림’에 있다. 로컬보다 서울이, 수도권이 희망과 기회의 장소라고 여기지만 막상 살아보면 그다지 행복하지 않다. 인구가 쏠린 곳은 경쟁이 과열되고, 부동산 가격이 치솟으며, 주택문제가 심각해지고, 교통이 복잡해지고, 환경문제까지 가세한다. 청년들의 삶도 점점 더 피폐해진다. 수도권에는 과밀인데 비해 농산어촌은 소멸할 위기에 처했다. 70세가 넘은 어르신들만 살고 이 분들이 돌아가시면 주민이 아무도 없는 쓸쓸한 곳이 되어버린다. 고향이 없어져버리는데 과연 우리는 태연하게 행복을 말할 수 있는가. 우리 몸의 피가 한 곳에 쏠리는 것보다 몸 전체 두루두루 흘러야 건강한 것처럼 대한민국 곳곳에 사람들이 골고루 살아야 건강하고 행복해진다. 

정석 교수는 인구감소 위기가 가장 큰 경상북도의 로컬을 연구하기 위해 제자들과 함께 경북의 여러 곳을 체류하면서 그 연구결과를 지도 위에 기록했다.
정석 교수는 인구감소 위기가 가장 큰 경상북도의 로컬을 연구하기 위해 제자들과 함께 경북의 여러 곳을 체류하면서 그 연구결과를 지도 위에 기록했다.

지역균형발전을 위해 정부가 노력한 측면도 있지 않은가. 
진보·보수 정부를 막론하고 역대 모든 정부는 겉으로는 지역균형발전을 외치면서 실제로는 이에 역행해왔다. 지역균형발전에 가장 열정적이었던 노무현정부에서도 동시다발적 신도시 건설을 밀어붙였다. 수도권으로의 쏠림 현상을 막으려면 신도시 건설부터 중단해야 한다. 지금도 신도시를 건설하고 GTX를 뚫고 멀쩡한 철도를 지하화하겠다고 한다. 로컬로 인구를 유인하기 이전에 정부가 먼저 해야 할 일은 수도권 기반시설에 대한 투자를 멈추는 일이다. 수도권이 아닌 로컬에서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고 사람들이 점차 인식할 수 있는 나라로 만들기 위해서는 정부 재정 투자의 중점을 비수도권으로 옮겨야 한다. 

대한민국 치유의 길을 ‘로컬로의 자발적 이주’로 요약했는데. 
서울과 수도권으로 집중되는 인구이동의 방향을 거꾸로 바꿔야 한다. 로컬로 옮겨가는 새로운 인구이동의 흐름을 만드는 것이다. 로컬로의 이주를 강제하거나 강요할 수 없기 때문에 자발적 이주를 선택하도록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들이 죽을 각오로 할 수 있는 노력을 다 해야 한다. 로컬로의 이주가 더 행복한 선택이라는 믿음을 주고, 실질적인 효과를 체감할 수 있도록 한다면 로컬로의 자발적 이주는 이례적인 것이 아니게 된다. 로컬로의 자발적인 이주는 대세가 되고 트렌드가 된다. 

▍‘로컬로의 자발적 이주’를 위해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어떠한 노력을 기울여야 하나. 
우선은 인구를 서울과 수도권으로 집중시키는 모든 정책과 사업들을 중단시켜야 한다. 
다음으로 해야 할 일은 로컬에 일자리, 살자리, 교통, 관계망 형성, 돌봄 행정을 실현시켜야 한다.
나름의 전문성을 지닌 청년들에게 로컬창업을 장려·지원하고, 은퇴한 중장년들의 열정이 교육훈련을 통해 로컬에서 창업이 이뤄질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또한 중소도시 원도심과 농촌마다 방치되어 있는 빈집들을 주택으로 되살리는 데 지자체가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하고 정부는 적극 지원해야 한다.
로컬로 인재를 초대하기 위해 시급히 준비해야 할 게 교통망이다. 시내 대중교통뿐만 아니라 지역과 지역을 연결하는 지역 간 대중교통을 신설해야 한다. 하동 한달살이를 하면서 겪은 불편 때문에 하동군수를 만나 ‘구례-하동 BRT’와 화개, 악양의 지역 내 미니버스를 제안했다. 이것을 확대해 ‘지리산 BRT’를 구상하기도 했다. 로컬에 사는 사람들도 서로 연결되어야 외롭지 않게 행복하게 살 수 있다. 
그리고 로컬로 내려온 사람들이 비빌 언덕인 네트워크 조성에 힘써야 한다. 가령 ‘전라북도 청년모정’처럼 지역과 지역을 연결하는 청년 네트워크가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개발시대의 관행적 행정을 버리고 재생 시대의 섬세한 행정으로 과감히 변해야 한다. 로컬로 이주해 온 사람들의 생애 주기를 내내 세심하게 살피고 돕는 ‘돌봄행정’으로 혁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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