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야생동물 실태조사단’ 넉달간 조사
한강합수부~화도교 4㎞구간서 17차례 출현
원흥서도 흔적 확인…“지속적 모니터링 필요”
한강 모든 수계에서 수달 서식 확인 의미 커

지난 1월 30일 창릉천에 설치한 무인 카메라에 포착된 수달.
지난 1월 30일 창릉천에 설치한 무인 카메라에 포착된 수달.

[고양신문] 도심을 통과한 창릉천은 한강과 가까워질수록 거무튀튀하게 보였다. 며칠 전까지 흔하게 보였던 겨울 철새들이 떠나온 곳으로 돌아갔는지 눈에 띄게 줄었고 논병아리와 물닭, 흰뺨검둥오리 몇 마리만 남아 먹이를 찾아 분주히 하천을 오르내리고 있었다. 수변의 가시박 덩굴 옆에는 왜가리 한 마리가 어딘가를 뚫어지게 주시하고 있었다. 

“수달이 산다기에 물이 깨끗할 줄 알았는데 이런 곳에서 수달이 살 수 있나요?” 지난 11일 창릉천 수달 생태조사에 동행한 고양시 공무원들이 반신반의한 표정으로 물었다. 하류 쪽 물이 탁하게 보인 것은 바닥이 개펄인 데다 각종 쓰레기와 오폐수, 흙먼지 등 오염원이 하천에 유입된 탓으로 보인다. 북한산에서 발원한 창릉천은 지축, 삼송, 원흥지구와 창릉신도시 예정지를 거쳐 행주산성 인근에서 한강으로 합류하는 22㎞ 길이의 지방 하천으로 하류 쪽은 폐기물처리장이 밀집되어 있다.

조영자 과장과 김용달 팀장을 비롯한 고양시 환경정책과 직원들은 이날 한강 합수부에서 약 500m 떨어진 창릉교 아래와 상류 쪽으로 2㎞가량 떨어진 강매세월교 아래에서 각각 발자국과 배설물 등 수달의 흔적을 확인했다. 이어 무인 센서 카메라에 수달이 찍힌 사진과 동영상을 확인하고는 “귀엽고 날씬하다”며 감탄을 쏟아냈다.

창릉천 수달 생태조사에 나선 이상규 씨(왼쪽부터)와 조영자 고양시 환경정책과장, 김용달 자연환경팀장이 지난 11일 무인 카메라에 포착된 수달을 보고 있다. 
창릉천 수달 생태조사에 나선 이상규 씨(왼쪽부터)와 조영자 고양시 환경정책과장, 김용달 자연환경팀장이 지난 11일 무인 카메라에 포착된 수달을 보고 있다. 

무인 카메라에 77일간 17차례 출현
수달은 몸길이 65∼110㎝, 꼬리 길이 30∼50㎝, 체중 5∼14㎏가량인 족제비과 포유류로 주로 하천이나 호숫가에 산다. 한국에서 멸종위기야생생물 1급이자 천연기념물 330호로 보호받고 있으며 국제자연보전연맹(IUCN)이 적색목록 ‘위기근접종’으로 지정할만큼 세계적으로도 멸종위기에 처한 생물이다. 이웃 일본에서는 2012년 유라시안수달이 일본영토에서 절멸했다고 공식 선언한 상태다. 최근 서울대공원이 수달을 일본 동물원에 보내려 했지만 문화재위원회의 허가를 받지 못해 불발되기도 했다.


창릉천에서 멸종위기종 수달이 살고 있다는 사실은 지난해 말 고양시민 생태조사를 통해 처음으로 확인됐다. 창릉천 수달 조사는 지난해 국립생물자원관이 주관한 ‘서울대학교 야생동물 실태조사 전문인력 양성사업’(https://www.snu-wildlife.org/)에 참여했던 강사와 교육생 등 고양시민 4명에 의해 이뤄졌다. 지난해 10월 말 덕양구 행신동에 사는 이상규 강사(한국야생동물생태연구소장)가 창릉천에서 강아지와 산책하다가 한강 합수부 인근에서 수달의 배설물을 발견한 것이 조사의 계기가 됐다. 이 소장은 곧바로 필자와 김지희, 이태호씨 등 교육생들을 불러 ‘고양시 수달 생태조사단’을 꾸리고 본격적인 조사에 나섰다. 수달 조사단은 지난해 12월부터 수달이 좋아할 만한 장소에 무인 센서 카메라 8대를 설치하고 한 달에 두 번씩 데이터 점검과 함께 하천을 따라 약 8㎞ 구간을 오가며 현장 흔적 조사를 병행했다. 

지난해 말부터 수달이 지속적으로 출현한 창릉천 하류 모습.
지난해 말부터 수달이 지속적으로 출현한 창릉천 하류 모습.

조사단이 지난달 24일 그동안 찍힌 무인 카메라의 데이터를 분석해 보니, 수달은 지난해 12월 9일부터 77일 동안 총 17회 출현한 것으로 나타났다. 12~1월에는 2마리가 어울려 노는 장면이 5차례 포착되었으며 2월 이후에는 1마리만 촬영됐다. 이 소장은 함께 지내던 2마리가 엄마와 새끼일 것으로 추정했다. “지난해 5월쯤 출생한 새끼가 1월까지 어미와 함께 이곳에서 지내다가 2월쯤 어미로부터 독립해 다른 곳으로 분산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어미와 새끼 수달이 함께 확인된 것으로 미뤄 창릉천이 서식지로 선호되고 있다고 판단합니다.” 

원흥지구에서도 수달의 흔적 발견
조사단은 애초 흔적이 발견된 하류 쪽에만 무인 카메라를 설치할 계획이었으나 수달이 지속적으로 출현하자 1월 초 8㎞가량 떨어진 덕양구 삼송동까지 무인 카메라를 확대 설치했다. 두 달간 촬영한 데이터를 확인해보니 한강 합수부에서 약 4㎞ 떨어진 화도교까지 지속적으로 수달이 포착되었고 그 위 구간에서는 관찰되지 않았다. 

카메라에 찍히지는 않았지만 상류 쪽에서도 수달의 흔적이 발견됐다. 조사단은 지난달 24일 한강 합수부에서 약 7㎞ 떨어진 원흥지구 서오릉 지하차도 아래서 눈 지 오래되지 않은 수달 똥을 확인했다. 이 지점은 사람들이 오가는 공원 산책로와 가까운 곳으로 깨끗한 물과 모래톱이 형성되어 있었고 가시박 덩굴 등 은폐할 수 있는 식생이 갖춰져 있었다. 똥이 딱딱하게 굳지 않았고 물고기의 비릿한 냄새가 풍긴 것으로 보아 수달이 최근에 다녀간 것으로 판단됐다. 수달은 주로 하천을 따라 생활하는데 한 마리가 차지하는 영역이 수컷 15㎞, 암컷 7㎞로 평균 10㎞ 안팎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하천의 규모와 배타적인 수달의 특성을 감안하면 창릉천에는 1~2마리가 살기에 적합한 것으로 판단된다. 

그렇다면 창릉천 수달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이 소장은 수달이 한강 상류에서 물길을 따라 내려오다 창릉천에 자리 잡았을 것으로 추정했다. 그는 “한강수계에 수달의 개체수가 늘어나면서 한 마리가 창릉천을 서식지로 정하고 한강 합수부에서 원흥지구까지 오가며 자신의 영역을 선포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지난달 24일 창릉천에서 무인 카메라를 점검하며 활짝 웃고 있는 이상규(왼쪽), 김지희씨.
지난달 24일 창릉천에서 무인 카메라를 점검하며 활짝 웃고 있는 이상규(왼쪽), 김지희씨.

한국수달연구소 신화용 박사도 “한강을 이용하는 사람이 여전히 많지만 예전 개발시대와 견줘 수달이 안정적으로 서식할 만큼 수변부의 환경이 좋아졌고 민관 차원의 보호활동도 활발해졌다”며 “수달의 번식이 늘어나고 새끼들이 분산되면서 한강 전체 수계로 번져나가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현재 한강수계에서는 배설물 유전자분석 결과 최소 15마리의 수달이 서식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멸종위기종 1급 포유류 고양서 첫 발견
수달은 귀여운 외모와 달리 하천 생태계의 최상위 포식자로 꼽힌다. 또 수생태계의 건강성을 나타내는 지표종으로 생태계가 훼손되면 가장 먼저 사라지고, 회복되더라도 가장 마지막으로 돌아오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팔당댐 건설로 수달은 한강에서 영원히 사라질 뻔했다. 팔당댐이 준공된 1973년 수달은 한강에서 자취를 감추었다가 40여 년만인 2016년에야 지류 하천인 탄천에서 처음 모습을 드러냈다. 이어 고덕천, 성내천, 중랑천, 청계천, 홍제천, 양재천, 여의샛강, 난지 등 한강 본류와 지류에서 잇따라 출현했다. 이번에 한강의 사실상 마지막 지류 하천인 창릉천에서 수달이 발견됨으로써 팔당댐 하류의 모든 한강수계에서 살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해 12월 어미와 새끼로 추정되는 수달 2마리가 창릉천 물가에서 놀고 있다.
지난해 12월 어미와 새끼로 추정되는 수달 2마리가 창릉천 물가에서 놀고 있다.

창릉천에 수달이 출현함에 따라 고양시는 멸종위기야생생물 1급 포유류를 보유하게 됐다. 국립생태원이 2022년 펴낸 ‘멸종위기야생생물 통계자료집’을 보면, 고양시에 서식하는 멸종위기종은 총 22종으로, 이 가운데 포유류는 삵(2급)이 유일하다. 고양시에서 발견된 멸종위기종 1급은 두루미, 저어새, 흰꼬리수리 등 조류 3종이며, 2급은 포유류 1종, 조류 15종, 양서·파충류 1종, 곤충류 2종 등 총 19종이다.

지난달 24일 이상규(왼쪽), 김지희씨가 창릉천 다리 밑에서 무인 카메라 점검과 흔적조사를 하고 있다.
지난달 24일 이상규(왼쪽), 김지희씨가 창릉천 다리 밑에서 무인 카메라 점검과 흔적조사를 하고 있다.

“창릉천 정비 때 보호지역 만들어야”
수달이 창릉천을 찾아온 것은 반길 일이지만 계속 머물 수 있을지는 불안감이 남는다. 창릉천은 지난해 환경부의 ‘지역맞춤형 국가통합하천사업’ 대상지로 선정돼 치수, 수질개선, 친수시설 조성 등 하천 정비사업을 앞두고 있어서다. 애초 3200억원이 투입되어 2028년 시행될 예정이었으나 국비 지원이 대폭 줄어 정비사업이 어떤 방향으로 진행될지 불투명한 실정이다. 

전문가들은 자연형 둔치를 콘크리트 호안으로 만든 하천 친수공사를 통해 일본에서 수달이 사라진 것처럼 한국 수달도 위험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일본에서 수달이 멸종한 원인으로 과도한 포획, 수질오염, 먹이 감소와 함께 하천 정비, 도로 건설 등이 지적됐다. 

하천 정비란 명목으로 수달의 서식 환경 파괴가 잇따르자 지난해 전국 50여개 단체와 개인이 ‘한국수달네트워크’를 창립해 수달 보호활동에 앞장서고 있다. 특정 생물종의 보호를 위해 전국 단위의 네트워크가 창립되는 건 매우 드문 일이다. 

간사 단체인 사회적협동조합 한강의 염형철 공동대표는 “수달의 분포는 꽤 넓고 확산 추세이며 특히 도시에서 출현이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서식 환경은 매우 열악한 상태이며 특히 각종 개발과 하천 정비가 문제”라고 꼬집었다. 염 대표는 이어 “향후 서식처 보전이 가장 중요하며 안정적인 공간을 마련해 번식이나 피난 등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 수달보호지역 지정 등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신화용 박사는 “전국 여러 곳에서 하천 정비, 도로공사로 수생태계가 파괴되고 있어 이에 대한 대응책 마련이 시급하다. 홍수 예방 등을 위해 하천 공사가 꼭 필요하다면 최대한 야생동물 서식지를 보호하는 방향으로 충돌이 안되게 절충선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이상규 씨가 창릉천 다리 밑에서 발견한 수달의 배설물의 냄새를 맡으며 살펴보고 있다.
이상규 씨가 창릉천 다리 밑에서 발견한 수달의 배설물의 냄새를 맡으며 살펴보고 있다.

“시민 생태교육의 장이 되길 기대”
창릉천 수달 조사단은 하천물이 불어나는 다음 달 1차 조사를 마치고 11월부터 2차 조사를 실시할 예정이다. 조사단은 2차 수달 생태조사는 관심 있는 고양시민들과 함께 진행하고 싶다는 뜻을 고양시에 전했다. 이 소장은 “수달이 창릉천에서 안정적으로 살 수 있도록 인공쉼터를 조성해주는 방안 등을 생각해볼 수 있겠지만 그보다 앞서 지속적인 모니터링을 통해 변화추이를 살피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이어 “창릉천 정비사업을 하더라도 일부 구간은 사람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조성해야 한다. 수달의 서식공간이 확보되면 수달이 일시적으로 떠나더라도 다시 돌아올 것”이라고 말했다.

고양시는 수달이 출현한 주요 지점에 생태안내판을 설치해 수달 보호의 필요성을 알리고 시민들의 생태교육 공간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김용달 고양시 자연환경팀장은 “창릉천이 시민을 위한 친수공간만이 아니라 수달을 비롯한 다른 생물들도 함께 살아가는 공간이란 걸 알려 나가겠다. 또 수달의 정확한 서식 정보를 위해 지속적인 모니터링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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