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에 대해 말하지 않는 것들』 펴낸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정책위원장

‘더 내고 더 받는 안’은 기금고갈 해결 못해
현세대 연금보장 위해 미래세대 책임 떠넘겨
보험료율 점진적 인상 통해 ‘재정 안정화’ 
소득대체율 인상 대신 ‘연금 3총사’ 대안


[고양신문] 세간의 관심이 온통 22대 국회를 구성하기 위한 4월 총선에 쏠려있지만 이번 국회에 아직 중요한 과제가 남아있다. 바로 국민연금 개혁안 논의다. 최근 국회 연금특위 산화 공론회위는 국민연금과 관련된 두 가지 개혁안을 발표했다. 아울러 해당 개혁안을 500인 시민 숙의토론에 상정해 결정하기로 합의했다. 4월 말 공론화 결과가 발표되면 이를 바탕으로 연금개혁안을 도출해 21대 국회가 끝나는 5월 30일 전까지 통과시킨다는 계획이다. 
현재 두 가지로 압축된 국민연금 개혁안은 흔히 ‘더 내고 더 받는’ 방식(제1안)과 ‘더 내고 그대로 받는’ 방식(제2안)으로 정리된다. 이른바 ‘소득보장파’와 ‘재정안정파’의 의견 충돌이다. 이중 ‘재정안정파’로 분류되는 시민단체 내가만드는복지국가(이하 내만복) 오건호 정책위원장(행신2동 주민자치회장)은 제1안에 대해 “미래세대에 부담을 떠넘기는 무책임한 개혁안”이라고 지적한다. 최근 발간한 『연금에 대해 말하지 않는 것들』이라는 책을 통해 ‘더 내고 더 받는’ 개혁방식의 문제점을 상세하게 짚어낸 오건호 정책위원장을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책을 내게 된 계기는. 
연금 개혁이 현재 중요한 화두인데 정작 사람들에게 객관적인 정보가 전달되지 않고 있다고 느꼈다. 앞으로 초고령 사회로 접어드는 상황에서 연금 개혁이 미래세대에 부담을 지우는 방식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하고 그렇기 때문에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알리면 시민들이 합리적인 판단을 할 것이라고 본다. 다만 연금문제가 워낙 복잡하고 어려운 사안이라 어떻게 알리면 좋을까 고민하던 중 대담 형식으로 책을 내면 좋겠다는 제안이 와서 이번에 출간하게 됐다. 청년 나이인 기자와 연금 문제를 계속 다뤄온 노년학자가 진지하게 대화를 나누는 포맷으로 구성했는데 독자들에게 접근성도 높일 수 있고 신뢰도 줄 수 있을 것 같아 그렇게 했다.
 

❚젊은 세대에선 국민연금 제도 자체에 대한 불신도 크다. 특히 재정파탄 이야기까지 나오니 더욱 그런 것 같다. 
실제 위원회에서 내놓은 보고서를 보면 현재 추세대로라면 기금이 2055년에 소진되고 소진 이후에는 보험료가 엄청 오르게 되는데 만약 그때 일하는 세대들이 동의하지 않으면 내가 낸 국민연금 혜택을 못받는 것 아니냐, 이런 불안감을 가지는 게 너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연금제도는 전 세계 모든 선진국에서 필수적으로 운영되는 제도다. 누구나 노인이 되고 그때가 되면 노동소득이 사라지게 되는데 그러면 젊었을 때부터 노후를 준비할 수밖에 없고 이러한 공적인 사회부양제도는 꼭 필요하다. 이걸 사적 방식에만 맡겨 놓으면 소득불평등 격차가 극심하게 나타날 수밖에 없으니….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국민연금은 회사가 절반을 낸다는 장점이 있다. 이러한 공적제도마저 없어지면 미래는 더욱 불안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국민연금 자체는 반드시 필요한 제도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기금고갈 문제에 대한 해법은.
크게 두 가지 처방이 이야기되고 있다. 하나는 국가에서 어떻게든 책임져 줄 것이니 걱정하지 말라는 식의 이야기인데 사실 굉장히 문제가 있는 접근방식이라고 본다. 미래 재정이 불안정하다는 말은 곧 지금 세대가 보험료를 더 내야 한다는 뜻 아니겠나. 현재 국민연금 보험료율이 9%인데 벌써 26년째 그대로인 반면 저와 같은 60년대생 베이비부머 세대들이 이제 보험료 납부를 끝내고 연금을 받는 시기가 도래하고 있다. 이미 1차 골든타임은 놓쳤는지도 모른다. 지금이라도 하루 빨리 보험료율을 단계적으로 올려서 기금소멸 시기를 연착륙시키지 않으면 나중에 급격한 보험률 인상으로 인해 세대 간의 심각한 갈등을 겪게 될 것이다. 
 

❚노무현정부 당시 민주노동당 소속으로 연금개혁 합의에 참여한 것으로 알고 있다. 이후 18년째 연금개혁 논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유가 무엇인가.
정권마다 이 문제를 회피해왔다. 법에 따라 국민연금 재정계산위원회가 5년마다 한 번씩 대통령 취임 초반에 재정결산 보고서를 제출하고 정부에서 재정 안정화 방안을 내도록 되어 있다. 하지만 이명박정부에서는 이를 무시했고 박근혜정부는 기초연금 금액만 올리는 선에서 문제를 덮어버렸다. 문재인정부 또한 4가지 개혁안을 국회에 제출만 했을 뿐 실제 재정개선을 위한 노력을 하지 않았다. 사실상 노무현 정부 이후 세 번의 정부 모두 이 문제를 방치한 셈이다. 그나마 윤석열정부는 연금개혁이 대통령 공약사항이고 더는 미룰 수 없다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됐기 때문에 겨우 국회 공론화위원회까지 구성됐다고 보면 된다. 
 

❚현재 국회에 두 가지 안이 올라와 있고 시민 500명의 시민 숙의 토론을 통해 최종안을 결정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간단히 설명한다면. 
현행 국민연금은 내는 돈의 비율(보험료율)이 9%, 받는 돈의 비율(소득대체율) 40%인데 첫 번째 안은 보험료율을 13%로 올리고 소득대체율도 50%로 올리는 일명 ‘더 내고 더 받자’는 개혁안이다. 반면 두 번째 안은 보험료율은 12%까지만 올리는 대신 소득대체율은 그대로 40%로 두는 ‘더 내고 그대로 받자’는 개혁안이다. 얼핏 보면 큰 차이가 없어 보이기도 하고 오히려 ‘더 내고 더 받자’는 개혁안이 더 매력적으로 느껴질지 모르지만 두 안의 차이는 매우 크다. 수지균형 측면에서 봤을 때 원래 소득대체율이 40%라면 낸 만큼 받기 위해서는 보험료를 20%까지 올려야 한다. 그런데 현재 국민연금은 9%만 내면서 40%를 받고 있기 때문에 이미 11%가량 수지 불균형 상태다. 이 상황에서 내는 돈은 고작 4% 올리면서 받는 돈도 10%로 올리겠다는 것은 재정 불균형 문제는 그냥 방치하겠다는 말과 같다. 이건 연금개혁안이라고 볼 수 없는 사실상 개악에 가깝다. 반면 후자는 보험료율만 올리는 것이기 때문에 재정 안정화라는 본래 목적에 부합하는 개혁안이다. 물론 여전히 수지불균형 문제가 남아 있지만 단계적으로 보험료율을 인상하면 되기 때문에 문제 해결의 첫 단추를 꿸 수 있다는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진전이라고 볼 수 있다. 

❚정리하자면 ‘더 내고 더 받자’는 개혁안은 당장 국민연금 기금에 들어오는 돈은 많지만 나중에 나가야 하는 돈이 더 크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후세대 부담을 더 키우게 된다는 뜻인가.
그렇다. 연금개혁의 핵심 목표인 재정안정화에는 아무런 기여도 하지 않고 오히려 기금 소진 이후에는 국민연금을 내는 세대의 보험료 부담만 크게 늘어나게 된다. 문제는 그 시기가 다가왔을 때 청년 세대가 이러한 부담을 불만 없이 받아들일 수 있을까. 엄청난 세대 갈등이 발생할 텐데. 심지어 이런 말도 안되는 결정을 자신들이 결정한 것도 아니고 연금을 받게 될 앞선 세대가 일방적으로 결정했다고 한다면 누가 동의할 수 있겠나. 때문에 연금제도를 먼저 도입한 서구권 국가들은 미래세대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오히려 현 세대의 보험료를 수지균형 이상으로 올려서 기금을 쌓아놓는 방식으로 개혁을 하고 있는 상황이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기금을 소진시키는 방향으로 개혁안이 마련되면 안된다. 물론 제2안을 선택해도 2062년까지 기금이 소진되긴 하지만 일단 재정 안정화로 방향이 잡히면 제2차, 제3차 연금개혁을 하면서 소진 시기를 지속적으로 늦출 수 있다. 이렇게 단계적인 개혁안이 마련되면 보험료율을 급격하게 인상하지 않아도 되고 연금제도의 신뢰도와 지속가능성도 담보할 수 있게 된다. 
 

❚전자를 주장하는 진영에서는 소득대체율을 높여야 국민연금 보장성을 높이고 노인 빈곤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이야기하는데.
소득대체율을 높이는 방식으로 노인 빈곤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 오히려 노년층의 소득불평등만 더 심화시킬 뿐이다. 실질적으로 혜택을 보는 쪽은 연금가입기간이 길고 노동소득이 높은, 소위 ‘중심부 노동시장’에 진입한 계층이고 오히려 가입기간이 들쭉날쭉한 불안정노동 계층과의 노후 소득격차는 더 커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굳이 따지자면 현세대 노동시장 중심부에 위치한 집단의 이해관계만이 반영된 것인데 이걸 진보 진영에서 주장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생각한다.      
 

❚현행 국민연금 제도로는 노인 빈곤문제를 해결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대안이 있다면. 
과거에는 공적연금제도가 국민연금뿐이었지만 노무현정부 이후 소득 하위 70%를 대상으로 하는 기초연금제도가 도입됐고 1년 이상 고용된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한 퇴직연금 제도도 도입됐다. 특히 퇴직연금은 사용자인 회사가 전적으로 부담하는데 전체 규모가 2022년 기준으로 57조원에 달한다. 이처럼 국민연금 외 기초연금과 퇴직연금까지 더한 일명 ‘연금 3총사’를 통해 국민들의 노후보장 제도를 새롭게 재편해야 한다. 중산층의 경우 국민연금과 퇴직연금을 통해 노후를 설계하고 중하위계층은 기초연금 금액을 인상해 부의 재분배를 이뤄내야 한다. 물론 이렇게 해도 소득격차는 여전히 존재하겠지만 재정안정성도 위협하고 소득재분배 효과도 낮은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인상보다는 훨씬 나은 대안이라고 생각한다. 
 

❚덧붙이고 싶은 말이 있다면.
연금문제는 기후위기와 같다. 의사결정권이 없는 미래세대에게 일방적으로 짐을 물려줘서는 안된다. 21세기 인류사회에 가장 중요한 가치가 공존이라고 생각하는데 인간과 자연의 공존 뿐만 아니라 세대 간 공존도 매우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연금문제다. 선진국들의 연금개혁 사례를 봐도 연금에 관한 올바른 정보만 제공하게 되면 시민들은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하게 된다. 우리나라도 이제 공론화위원회를 통해 연금개혁안 결정을 앞두고 있는데 최대한 객관적인 데이터를 제공한다면 올바른 결정을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국민연금 개혁안 결정을 앞두고 연금개혁의 주요쟁점에 대해 시사인 전혜원 기자와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정책위원장의 대담을 책으로 엮어낸 『연금에 대해 말하지 않는 것들』.
국민연금 개혁안 결정을 앞두고 연금개혁의 주요쟁점에 대해 시사인 전혜원 기자와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정책위원장의 대담을 책으로 엮어낸 『연금에 대해 말하지 않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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