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의 편지
[고양신문] 선거가 끝났다. 한바탕 말싸움이 끝난 느낌이다. 말싸움 뒤의 허망함이 밀려온다. 민주가 이겼고, 국힘은 졌다고 표계산을 하지만, 진짜 이기고 진걸까. 어쩌다 대통령이 된 윤석열 대통령은 검사 경력이 전부인 인생답게 쩌렁쩌렁 말 정치를 한다. 이 말이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생각하고 예측하는 능력은 모자란 것 같다. 당연하다. 아무리 뛰어난 사람도 경험하고 쌓이지 않으면 잘 하기 어렵다.
윤석열 대통령은 어쩌다 대통령이 되었을까. 확실하게 한몫한 건, 더불어민주당과 언론이다. 진보를 내건 정치인들의 도덕성 논란과 이 논란 덕분에 화제가 된 전 윤석열 검찰총장을 잽싸게 상품화시킨 언론. 이 둘이 윤석열 대통령을 만든 것 같다.
어쩌다가 대통령이 만들어지는 한국사회 정치시장의 가장 큰 피해자는 국민이다. 거대 양당은 돌아가며 서로의 권력을 받쳐준다. 이번엔 윤석열 대통령이 민주당에 표를 몰아줬다. 마치 보은이라도 하듯.
87년 민주항쟁 이후 역대 대통령과 측근들은 모두 다음 정권에 의해 심판받았다. 대부분 정치의 도덕과 윤리, 양심을 저버린 데 대한 추궁과 심판이었다. 국민들은 정권의 도덕과 윤리, 양심이 무너진 정도와 이에 대한 추궁과 심판이 적정한지 판단하기 바빴다. 이 판단은 다음 선거의 표심으로 드러났다. 정책과 공약에 대한 갈망보다, 도덕성에 대한 심판이 더 절실한 경우가 많았다. 정책이 뒤로 밀린 채, 핑퐁게임처럼 돌아가는 양당 선거 구조에서 가장 큰 피해는 소수 정책정당에게 돌아간다.
이번 선거에서 기후위기 정책은 가장 중요한 화두였다. 그러나 국민은 기후위기 정책을 가장 잘 대변한 녹색정의당에 단 1석도 내어주지 못했다. 윤석열 정권의 무능력과 전 정권에 대한 과도한 심판이 민주당 지지의 동력이 되었다. 거대야당 곁에서 오락가락했던 정의당에 대한 실망이 반영된 점도 있지만, 양당에 대한 실망에 비교한다면 ‘0석’은 가혹하다. 국민은 정책보다는 심판에 표를 몰아주었다. 국민의힘에 대한 심판은 소수 진보정당의 표까지 거대 야당에 몰아주는 방식으로 진행된 것 같다. 여야에서 파생된 정당이 아니라, 다른 정책노선을 제시하는 소수 정당의 자리가 사라지면서, 거대양당의 독점구도는 더 굳건해졌다. 거대 양당 사이에서 정치인들보다 더 치열하게 표계산을 해야 했던 국민의 마음, 찍을 정당이 없어도 찍어야만 했던 부동층의 마음을 헤아려 보아야 한다.
고양은 정의당에 의석을 3번이나 내어준 곳이었다. 전국에서 유일한 소수정당 지역구 1석이었다. 심상정이라서 가능했다. 심상정 의원은 진보정치의 스타이기도 했지만, 지역으로 푹 파고든 지역 정치인이기도 했다. 고양을 잠시 거쳐간 유시민이나 한명숙과는 달랐다.
심상정의 눈물을 두 번 보았다. 온갖 비난을 떠안으면서 얻어낸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위성정당 앞에 무너졌을 때, 심상정은 지칠 대로 지쳐있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합의했던 정치인들은 너도나도 나서서 이를 무력화시키는 편법을 동원했다. 편법은 정당화 되고, 화살은 심상정에게 돌아갔다. 그 때 심상정은 중앙정치를 떠나 지역에 충실하고 싶다고 이야기 꺼냈다. 고양시민이 허락한 소수정당 1석으로 거대양당의 틈새를 치열하게 비집고 들어갔지만, 도덕과 양심을 버려도 버틸 수 있는 양당정치 구도에 질식해 돌아왔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이제 양당구조를 굳건하게 만드는 장치에 불과하게 됐고, 심상정은 지역구 4선을 앞두고 좌절했다. 한국사회 진보정치의 상징이자, 소수정당 지역구 대표였던 여전사 심상정은 결국 눈물을 흘리며 정계은퇴를 꺼냈다. 독재 혹은 거대 양당정치만 경험해본 한국정치사에서 소수 진보정당의 깃발을 들고 온전히 몰입했던 심상정만이 흘릴 수 있는 눈물이었다. 심상정은 고양 지역정치사에도 큰 기록을 남겼다. 진보와 보수를 넘어 유일한 3선 국회의원이었다. 누구보다 사랑받은 정치인이었다.
우린 아직 전체주의 시대를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다양한 표현, 다양한 선택이 막혀있다. 특히 정치에서 그렇다. 전체주의에 저항했던 체코의 첫 대통령 바츨라프 하벨은 ‘도덕 실천으로서의 정치’를 강조했다. 정치가 도덕을 잃으면 걷잡을 수 없는 파국을 불러올 수 있다고 말했다. 정치인의 말싸움을 상품화하고, 말싸움 잘 하는 정치인이 우상이 되는 현실에서는 도덕에 대한 심판은 유약해지고, 정치 팬덤은 강해진다.
정치의 주도권을 정치인으로부터, 언론으로부터 가져와야 한다. 시민이 가져와야 한다. 그래야 정치의 도덕을 제대로 심판할 수 있고 나와 우리, 국가의 미래를 ‘어쩌다 정치인’에게 맡기는 일을 막을 수 있다. 진보도 소수도 걷어내고 고양시민으로 돌아오는 심상정을 환영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