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인터뷰] ‘세월호를 기억하는 일산시민모임’
이우창·장윤정 활동가
2014년 ‘참사진상규명’ 서명운동 시작
유가족과 아픔 나누며 다양한 활동
함께해 준 고양 시민사회 고맙고 든든
“고통에 배려 없는 사회… 달라졌으면”
[고양신문] 누군가는 “아직도 세월호 문제가 안 끝났냐?”고 물었다. 다른 누군가는 “10년이면 할 만큼 한 것 아니냐”고도 말했다. 하지만 유족들에게 10년 전 4월 16일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진상이 선명하게 밝혀지지도, 아픔이 온전히 치유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10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유족들의 슬픔에 손을 내밀어준 고양시민들이 있다. ‘세월호를 기억하는 일산시민모임(이하 세일모)’ 활동가들이 그들이다. 너무도 충격적인 참사를 전 국민이 생방송을 통해 실시간으로 목도했음에도, 진실이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현실에 분노한 시민들이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정발산역 앞 미관광장(현 일산문화광장)으로 삼삼오오 모여들어 진상규명을 위한 천만인 서명운동을 시작하며 자연스레 만들어진 모임이다.
모임이 만들어질 때만 해도 이 활동이 무려 10년이 넘도록 이어지리라고 짐작한 이는 아무도 없었다. 많은 국민이 한목소리로 진상규명을 요구한다면 머잖아 궁금증이 하나하나 풀어지리라 기대했지만, 답답한 현실은 기대를 따라주지 않았다.
10주기 기억의 날인 16일, 세일모 활동에 누구보다도 열심히 앞장서온 이우창·장윤정 활동가를 일산문화공원에서 만났다. 두 사람은 한목소리로 “유족들이 여전히 아픔 속에 있는데, 어떻게 이 일을 끝낼 수 있겠는가”라고 말했다.
일산문화광장에서 자라는 ‘기억의 나무’
“초창기 100여 명 시민이 소통 밴드를 만든 게 세일모의 출발이에요. 2014년 가장 먼저 시작한 일이 길거리 서명전이었어요. 천막 하나 없던 시절이었지만, 평일에는 저녁 시간에, 주말에는 낮부터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매일 서명대를 펼쳤지요. 볼펜이 얼어버리는 추운 날에는 세일모의 아지트 역할을 했던 대화동 아시아의친구들 사무실에서 유가족, 또는 청소년들과 함께 리본을 만들기도 했고요. 이후 노란천막을 장만하고, 노란색 단체티셔츠를 맞춰 입으며 장기전으로 들어갔습니다. 1주기를 맞아 세월호를 기억하는 시민 참여문화제를 열었고, 이후 매년 4월에 기억문화제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캠페인, 촛불문화제, 노란리본나누기, 북콘서트, 강연, 문화공연, 플래시몹 등, 장윤정씨가 회고와 함께 기자에게 전한 사진 속에는 유가족들과 또한 이웃들과 함께 했던 세일모의 시간 10년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이우창씨는 세월호 참사 6주기를 맞는 2020년에 일산문화광장 한쪽에 심은 ‘세월호 기억나무’ 이야기를 들려줬다.
“처음에는 세월호를 기억하기 위한 조형물을 만들고 싶었는데, 비용과 여건을 마련하는 게 쉽지 않았어요. 그래서 기억을 품고 자라나는 나무를 한 그루 심는 것도 의미가 있겠다 싶어서 4월에 화사한 꽃을 피우는 벚나무를 심고, 304명 희생자 한사람 한사람을 기억하겠다는 고양시민들의 마음을 담아 ‘소행성 304호’라고 이름을 붙였습니다. 이듬해인 7주기에는 작은 표지석도 세웠고요.”
세월호 기억나무 주변에는 100개가 넘는 노란 바람개비가 리본 모양으로 나무 곁을 에워싸고 있다. 이우창씨는 “매년 4.16 기억의 날에 빛바랜 바람개비를 새것으로 교체하는 행사를 한다”고 덧붙였다.
유가족들, 작은 리본 하나에도 큰 위로
세일모 활동 10년은 유가족들과 연대한 10년이기도 했다. 장윤정씨의 설명을 들어보자.
“초기에 지역단체별로 반을 하나씩 맡아 유가족들과 결연을 하고, 안산을 자주 방문하기도 했어요. 무엇보다도 세상에 없는 아이들을 위한 생일상을 함께 차렸던 일이 잊히지가 않아요. 작가들이 합류해 아이에 대한 기억을 모은 이야기를 읽어주고, 지역단체 회원들이 준비해 간 음식을 함께 나누는 일이 유가족들에게 커다란 위로가 됐던 것 같아요. 그 과정들이 책으로도 묶이고, 영화로도 만들어졌죠.”
이우창씨는 세일모 활동의 흔적들이 유가족들에게 위로로 전해진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 커다란 감동과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슬픔의 도시 안산을 떠나 일산으로 이사를 오신 분이 계셨는데, 거리를 걷는 아이들의 가방에 노란 리본이 달려있고, 식당이나 상점 등에서 노란리본이 놓여있는 모습을 마주하며 울컥, 고마운 마음이 솟구쳤다고 하시더라고요. 누군가가 기억해준다는 것만큼 큰 위로가 없는 것 같아요.”
사회적 문제 전반으로 관심 확장
시간이 흐르며 세일모 활동은 세월호를 넘어 다양한 형태로 반복되는 사회적 참사 전반에 대한 기억과 애도로 확장됐다. 멀게는 한국전쟁 당시 벌어진 비극인 금정굴 민간인학살부터 재작년 이태원 참사까지, 안타깝게 희생된 이들을 기억하는 마음이 하나의 결이라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밖에도 서로의 응원과 지지가 필요한 다양한 성격의 시민사회 연대활동에 부지런히 힘을 보태고 있다. 고양의 많은 시민사회 활동가들 역시 세일모의 활동에 기꺼이 손을 잡아주었기 때문이다.
물론 고마운 이들만 있었던 건 아니다. 세일모의 활동을 편견의 시선으로 바라보며 노골적으로 반감을 드러내는 이들도 있었고, 기억나무 표지석이 흉하게 긁혀 훼손당하는 일도 겪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든든한 이웃들이 있었기에 수시로 마주해야 했던 편견과 무례의 시선들을 이겨낼 수 있었다.
함께 해 준 많은 이웃들 중에서 특별한 감사를 전하고픈 사람을 딱 한 명씩 꼽아달라는 기자의 집요한 요청에 두 사람이 답했다.
“고양시민햇빛발전사회적협동조합을 이끄는 박평수 대표님이야말로 세월호에 늘 진심이신 분입니다.” - 이우창
“저는 한양문고 남윤숙 대표님. 너무도 든든한 세일모의 벗입니다. 또 김민애 기획자님도 있고, 행복한미래교육포럼과 고양평화청년회도 초창기부터 지금까지 한결같이 같이해 온 세월호 동지들입니다. 그리고 또… 죄송해요, 도저히 한 사람만 꼽을 수가 없네요(웃음).” - 장윤정
따뜻한 이웃들이 있는 동네, 고양
세일모는 올해 10주년 행사를 어느 해보다 다채롭게 열었다. 세월호참사 유가족들이 직접 준비한 공연 <연속, 극>, 개신교계에서 마련한 고양시민 기억예배, 리본을 나누고 기억글쓰기를 한 생명안전캠페인이 3월에 진행됐고, 지난 13일에는 10주기 기억식과 추모문화제를 열었다. 10주기 하루 전날 진행된 다큐영화 <바람의 세월> 상영회도 특별한 감동을 전했다. 유가족인 ‘지성이 아빠’ 문종택씨가 그동안 기록해온 영상과 자료들을 모아 만든 다큐멘터리에 유족들이 겪어낸 애통의 시간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세일모 활동을 여전히 지속하는 이유를 장윤정씨에게 물었다.
“진상규명과 재발방지 요구와 함께, 피해자를 두 번 죽이는 사회의 배려 없는 행태가 바로잡아졌으면 하는 마음도 큽니다. 세일모 활동을 하면서 우리 사회의 비인간적이고 폭력적인 일면을 알게 됐어요. 국가가 국민의 일상을 보호하고 안전을 지키는 게 당연한데도, 여전히 반복되는 참사들을 접하다 보면 현실과는 괴리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책임을 묻지 못하는 사회라면 참사는 반복될 수밖에 없습니다. 진상을 규명하고 올바른 책임을 지게 하는 것은 우리 공동체가 제대로 된 길로 나아가기 위해 꼭 필요한 활동이라고 생각해요.”
이우창씨는 이웃들에 대한 감사 인사로 소감을 대신했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고양은 참 대단한 동네예요. 우리는 그저 한발 앞장섰을 뿐이고, 정말이지 많은 이웃들이 함께해 주신 덕분에 오늘까지 왔어요. 한곳 한곳 감사 인사를 드리고 싶어요.”
두 사람의 바람을 담아 ‘세월호를 기억하는 일산시민모임’과 함께해온 단체들을 불러보도록 하자. 고양시민햇빛발전사회적협동조합, 고양시민회, 고양여성민우회, (사)고양YWCA, 고양종교인평화회의, 고양지역생협협의회, 고양평화청년회, 고양환경운동연합, (재)금정굴인권평화재단, 나들목일산교회, 동녘교회, 일산광장, 전교조고양중등지회, 청소년단체 ‘야호’, (사)평화누리, (사)행복한미래교육포럼, 한양문고주엽점. 따뜻한 세상을 함께 만들어가는 이들이다.
❚사진으로 만나는 세일모 활동 10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