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으로 본 세상
『개욕탕』(김유 글, 소복이 그림. 천개의바람)

[고양신문] “얼른 귀부터 씻자.”
희영이라는 고등학교 때 친구는 누군가 내 험담을 했다는 소리를 들으면 내 손을 잡고 수돗가로 갔다. 이미 안 좋은 얘기는 다 들었고 마음도 상했는데 귀를 씻는다고 없던 일이 되나 싶었지만 친구가 시키는 대로 했다. 위로하려는 마음을 다치지 말게 하자는 생각 때문이다. 내가 손가락 끝에 물을 묻혀 귀에 뿌리고 “이제 됐지?”하고 억지로 웃어 보여야 그 의식(?)이 끝났다. 그때는 뭐 이런 게 문제를 해결해줄까 싶었지만, 생각해보면 귀를 씻는 행위는 제법 효험이 있었다. 그렇게 하고 나면 들은 이야기는 어느새 잊어버리고 평소처럼 친구들과 깔깔거리며 떡볶이를 먹으러 가곤 했으니까.      

그림책 『개욕탕』(김유 글, 소복이 그림. 천개의바람)에도 그런 이야기가 나온다. 사람들이 곤히 잠든 밤, 잠 못 든 개들이 찾아와 씻는 ‘개욕탕’. 투덜거리거나 화가 난 표정으로 들어온 개들은 무거운 가방과 두꺼운 겉옷을 벗고 욕탕으로 들어간다. 샴푸로 머리를 감으며 낮에 들었던 말을 씻고, 김 서린 거울에 ‘개’를 넣어 욕하는 말을 적고 샤워기로 지워버리기도 한다. 누군가를 향한 미움도 씻어버리고, 서로가 서로를 돌아보며 등을 밀어준다. 어느새 몸도 마음도 반짝반짝해진 개들은 거울을 보며 자신을 격려한다. “난 정말 멋져!” “그래 힘내자.” 다 같이 할머니 개가 사준 요구르트를 먹으며 개욕탕을 나선다. 마음까지 씻고 나오는 곳. ‘개욕탕’이다.     

목욕탕까지 가는 건 아니라도 수돗가로 달려가 귀를 씻어보면 좀 나아질까? 3월부터 시작된 많은 말들이 계속 쌓이기만 하는 요즘이다. 4년에 한 번씩 돌아오는 국회의원 선거. 정말 많은 말들이 쏟아졌다. 어제 누가 옳다는 말이 귀를 가득 채우고 갔는데 오늘은 어제 그 사람이 그르다는 말이 채워진다. 어제 그 말에 끄덕이던 고개가 오늘은 또 다른 말에 끄덕인다. ‘어떻게 하겠다’는 얘기는 빠지고, 서로 잘못했다는 말만 가득하다. 내일은 또 누가 잘못했다는 말들이 들릴까 생각하니 아예 귀를 닫고 싶다. ‘누가 나쁘다’ ‘아니 누가 더 나쁘다’는 말 사이 정작 중요한 ‘무엇을 하겠다’는 말들은 실종되어 버린, 참 슬픈 선거였다. 선거가 끝나면 좀 달라질까 했는데 그렇지 않다. 여전히 ‘누가 더 나쁜가’ 수많은 말만 들려온다. 

후보들이 그렇게 상대가 더 나쁘다는 말을 하는 사이, 듣는 우리들도 그렇게 되어 버렸다. 나와 의견이 다른 사람들과 선을 긋고 상대를 비난하는 말을 한다. 다정하게 인사를 하던 이웃들도, 서로 한자리에 앉아 맛난 밥을 먹는 가족들도, 어려울 때 힘이 되던 친구들도 쫙 갈라져 서로에게 바늘같이 뾰족한 말들을 쏟아놓는다. 덕지덕지 말딱지들이 귀를 막고 마음을 닫게 한다.      

‘마음까지 씻고 가게’ 
‘개욕탕’을 들어선 개들이 옷을 갈아입는 탈의실 벽에는 이런 글귀가 붙어 있다. 아마도 낮 동안 나쁜 말을 듣거나 힘든 하루를 보낸 개들은 저 글귀를 바라보며 뽀독뽀독 몸을 더 개끗하게 씻는 건 아닐까 싶다. 

박미숙 『그림책은 힘이 세다』 저자
박미숙 『그림책은 힘이 세다』 저자

선거는 끝났다. 이제 우리는 다시 다정한 이웃으로, 웃으며 밥을 먹는 가족으로, 축 처진 어깨를 다독이는 고운 친구로 돌아올 때다. 그러기 위해서 때밀이 타올 하나와 향기 좋은 비누를 챙겨 동네 가까운 목욕탕을 찾으면 어떨까? 구석구석 때를 밀고 귀를 씻다 보면 덕지덕지 말딱지들도 떨어져 나가고 마음까지 깨끗해질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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