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면 증면에 즈음하여

구독료가 아깝지 않은 신문으로

제 명함에 ‘구독자가 되어 주십시오’라는 글귀가 있습니다. 명함을 교환한 초면의 사람이 이 구절을 발견하고 묻습니다. “돈 내고 구독하는 겁니까?”
황당한 물음에 당황하지만 곧 그럴만하겠구나 이해가 갑니다. 출근시간이면 지하철역 입구에서 무료로 신문을 손에 안기고, 아파트 입구에 무가신문들이 허접하게 발에 채이지 않는가.
미끼 상품과 맞바꾸지 않으면 누가 신문을 돈내고 구독하는가, 하물며 생소한 지역신문을 공짜로 인식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겠구나하며 자위합니다.
일전에 동문 선배가 저희 신문에 상가분양 광고를 냈습니다. 그런데 분양문의는 별로 없고 타 신문사들에서 우리에게는 왜 광고를 주지 않느냐고 강요해 곤혹스러웠다고 했습니다. 그 이후 선배를 만나기 두렵습니다.
또한 낯익은 독자들은 만나면 “발톱을 숨기고 있는 거냐” “중요한 뉴스 다 놓치고 왠 한가한 소리냐”며 핀잔을 줍니다.
90만에 가까운 거대 도시로 하루가 다르게 변모하는 고양시에서 여론의 길목을 잡기에 신문사의 역량은 벅찰 따름입니다.
이렇게 왜곡된 신문시장과 지역 정체성이 뚜렷치 않은 수도권 지역에서 지역신문을 꾸리기에는 사실 힘겹습니다. 그러기에 명분도 중요하지만 우선은 계속 기업으로 살아야 다음을 기약한다며 상업적 요구에 부응할라치면 바로 날아옵니다.
“어려울수록 정도를 지켜라.” 뼈아픈 말입니다. 이쯤대면 ‘과연 고양신문은 누구를 위한 것이냐’ ‘나는 왜 이 자리에 있는갗 라는 자문을 해봅니다. 시민들의 호주머니 돈을 털어 시민이 주인인 신문을 만들자며 깃발을 든 초심을 생각합니다. 신문사 키우기, 매출 규모나 구독자 수 이런 물량주의의 질곡에 빠져 본심을 잃지 않았나 반성합니다.
그러나 현실은 냉험한 것. 고양신문은 대안 언론으로 정도를 걷되 물질적 재생산구조를 안정적으로 창출해 지속 가능한 모델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누구를 탓하겠는가. 결국 소비자인 구독자의 준엄한 평가를 받아야 하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종교도 서비스 상품’이라는데, 하물며 영리회사인 신문 상품은 정보 서비스 질로서 보답해야겠지요.
이번 호부터 12면으로 증면합니다. 그 동안 지면이 적어 충분한 내용을 싣기에 부족했습니다. ‘시민주 신문’으로 언론 본연의 사회비판 기능을 보다 충실히 하겠습니다. 그러나 지역신문은 시시비비를 가리기보다 정보가 우선일 수 밖에 없습니다. 고양신문은 이번 증면을 계기로 좀 더 생활밀착형 정보를 많이 채우겠습니다. 그 첫시도로 기획한 것이 고양시 36개동을 하나씩 순차적으로 골라, 집중취재를 하는 동(洞)특집 면입니다.
무엇보다도 알찬 정보를 많이 드려 구독료가 아깝지 않는 신문, 그 정보를 이용하여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때론 수익도 올릴 수 있는 신문으로 키우고자 노력하겠습니다. 지켜봐 주시고 많은 질정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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