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신문] 국민들의 관심이 집중됐던 여야 영수회담이 성과 없이 끝났다. 윤석열 대통령 입장에서는 총선 참패와 지지율 추락 상황에서 민심을 수용하겠다는 태도를 보여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날려버렸다. 회담 배석자들의 전언에 의하면 윤 대통령은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12개 요구 사항에 대해 “이것은 이래서 안 되고, 저것은 저래서 안 된다”고 하면서 2시간 15분을 쓴 것으로 보인다. 85:15(민주당 주장), 7:3(대통령실 주장)의 비율로 윤 대통령의 발언이 많았음에도 민주당 측의 요구를 단 하나도 수용하지 않은 것 같다. 민주당은 회담 후 “마이동풍이고 마이웨이”였다며 반발했다. 이번 회담에서 윤 대통령은 반대 세력과의 대화를 통해 남은 임기 3년 국정을 무사히 끌고 갈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국민에게 주어야 했다.
윤 대통령의 국정 운영 결과
4·10 총선에서 윤 정부를 심판하겠다는 민심이 폭발해 여당이 참패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윤 대통령의 태도는 변하지 않고 있다. 사실 이번 회담 결과는 윤 대통령의 지난 발언들을 통해 어느 정도 예견된 것이기도 하다. 윤 대통령은 총선 엿새 후 국무회의 모두 발언을 통해 “취임 이후 지난 2년 동안 국민만 바라보며 국익을 위한 길을 걸어왔지만, 국민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며 “올바른 국정의 방향을 잡고 이를 실천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음에도, 국민들께서 체감하실 만큼의 변화를 만드는데 모자랐다”고 말했다. 한마디로 자신의 국정 방향이나 기조는 옳은데 국민들이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4·10 총선에서 표출된 국민들의 냉혹한 평가는 단순히 윤 대통령 내외의 행태나 소통 부족 때문만이 아니다. 냉전시대에나 어울릴 법한 시대 상황에 맞지 않은 윤 정부의 국정 방향과 기조에 대한 평가로 해석해야 한다.
국내적으로 윤 정부는 지난 2년간 반대 세력이나 야당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고 힘을 통해 일방적으로 제압하려고 했다. 정적인 이재명 대표에 대해 수백 차례의 압수수색과 ‘별건의 별건’ 수사를 통해 정치 무대에서의 제거를 시도했다. 민노총 등 노동운동 세력에 대해 이권 카르텔로 몰아 핵심 운동가들을 구속해 무력화시키려 했고, 의사 단체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시도를 하다 급기야 의료대란을 맞았다. 그간 윤 정부는 반대 세력과 만나 자신의 국정방향을 설명하고 설득하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 손쉽게 검찰을 동원해 힘으로 제압해 굴복시키는 방식으로 일관했다. 그 과정에서 윤 대통령은 검찰권의 편파적 남용을 유도하고 방조했다.
대외적으로는 미·일 편향외교로 불필요한 지정학적 긴장과 대결을 자초해 나라를 위험에 빠뜨렸다. 지난 2년의 미·일 편향외교 결과가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 북한과의 적대적 대결, 중국·러시아에 대한 적대시 외교는 안보 불안과 북한의 국제적 입지 강화로 귀결되었다. 북·러 협력 강화는 북한에게 핵·미사일 고도화뿐 아니라 UN 안보리에서 러시아의 거부권 행사로 북한의 입지를 넓혀주고 있다. 힘으로 북한을 압박해 굴복시키겠다는 윤 정부 의도와 정반대 결과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머리를 조아렸던 미·일 측의 반응도 시원찮다. 올해 6월 이탈리아에서 열리는 G7 정상회의에 한국은 초청받지 못했다. 의장국 이탈리아의 권한이라고 하지만 미국이 배려했다면 결과는 달라졌을 것이다. 대접은커녕 오히려 미·일 측의 청구서만 늘어나고 있다. 오는 7월 워싱턴에서 열리는 한·미·일 정상회담에서 미·일은 한국에 대해 대만해협 사태에서 역할을 요구할 개연성이 크다.
한국을 홀대하는 데 일본은 한술 더 뜨고 있다. 일본 정부는 강제징용 등 과거사 문제에서 양보는커녕 식민 지배 정당성 주장만 더 강화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지난 4월 독도와 위안부 문제 등에서 편향된 내용이 실린 중등 역사교과서 검정을 승인했다. 또한 일본 내 최대 메신저인 ‘라인 야후’의 경영권을 넘기라고 한국회사 네이버를 압박하는 행정 지도를 내렸다. 미국 바이든 행정부가 중국 회사 틱톡의 미국 사업권을 매각하라는 압박과 판박이다.
‘구동존이’의 자세로 반대세력과 공존해야
필자는 윤석열 대통령에게 생각을 바꾸라고 요구할 생각이 없다. 환갑을 넘긴 사람에게 생각을 바꾸라는 요구가 합당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회담의 기술에 대해 대통령과 참모들에게 조언하려고 한다. 이번 여야 영수회담처럼 반대 세력과의 회담에서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구동존이(求同存異)’의 마음 자세가 필요하다. ‘구동존이’란 이견(異見)은 일단 보류하고 의견이 같은 사안부터 협력하는 것을 말한다. 지금 윤 대통령의 처지처럼 힘으로 상대를 제압할 수 없는 여건에서는 상대방과 공존을 추구해야 한다.
이번 총선 결과가 108 : 192 로 나왔으니 남은 임기 3년의 국정 운영을 위해서는 야당 세력과의 공존과 협력이 불가피할 것이다. 윤 정부의 남은 3년 국정의 원활한 운영을 위해서는 먼저 상대방 얘기에 귀 기울이고 역지사지의 마음으로 상대의 처지를 헤아리는 게 급선무이다. 이재명 대표와 합의점을 찾기 위해서는 이 대표의 이해관계도 헤아려야겠지만, 민주당 열렬 지지자들의 여론을 살펴야 한다. 이 대표가 지지자들의 여망을 무시한 채 전적인 자율성을 행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여기에 윤 대통령의 지지층인 보수 진영의 입장과 정서도 헤아려야 할 것이다. 급격한 방향 전환은 위험부담이 클 것이고, 설혹 불가피하게 방향을 선회하더라도 핵심 지지층이 납득할 수 있는 논리를 준비해야 한다.
만약 이번 영수회담에 윤 대통령이 구동존이의 태도로 임했다면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었다. 야당이 요구한 ‘이태원 참사 특별법’은 충분히 합의할 수 있는 사안이었다. ‘김건희 특별법’이나 ‘채상병 특검법’과 다르게 ‘이태원 참사 특별법’은 윤 대통령 본인이나 여권 핵심에 큰 부담이 될 사안이 아니지 않은가? 야당 요구가 아니더라도 대통령실 발표처럼 “진상 조사와 재발 방지책 마련 그리고 피해 유족들에 대한 지원”은 언젠가는 해야 할 일이다. 민생 문제에서는 더 많은 공통분모를 찾을 수 있었다. 여야가 모두 윈윈할 수 있는 사안부터 찾아 합의하고 실천하면 될 것이다. 나아가 북한과 중·러에 대해서도 이처럼 구동존이의 태도로 임한다면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