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지혜 칼럼] 조용한 퇴행

신지혜 기본소득당 대변인
신지혜 기본소득당 대변인

[고양신문]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나태주 시인의 풀꽃은 여전히 사랑받고 있다. 풀꽃뿐만 아니라 모두 귀한 존재라고 알려주는 시가 국민에게 위로를 전했기 때문이다. 시의 인기가 높을 무렵에는 인권 교육할 때 이 시를 응용하기도 했다.  

‘자세히 보면 보입니다’ 자연스럽게 당연히 여기는 일상에서도 자세히 보면 인권적이지 않은 장면이 보인다고 말이다. 예로 드는 일상은 교복에 붙어있는 이름표다. 아예 교복에 박음질 되어 있는 이름표는 학교가 아닌 공간에서도 학생의 이름을 훤히 드러내도 괜찮다는 인식이 깔려있다. 자신들의 옷에 이름표를 달고 거리에 나서라고 하면 반길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내 이름을 밝히기 전에 상대가 이름표를 보며 내 이름을 부르며 말을 건네는 불편함을 학생이라서 감당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  

이름표처럼, 보통 사람들 사이에서 안 되는 일이 학생에게는 예외인 경우가 종종 있었다. 사람을 때려선 안 된다고 배우지만 체벌을 위해서 학생을 때려도 된다는 것도 대표적이었다. 두발 단속을 포함해 학교의 규칙이 학생의 인권을 침해하는 데 거리낌이 없었던 시절이 있었다.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학생을 통제할 수 있다는 인식은 학생이기 이전에 동등한 우리 사회구성원인 사람이라는 것을 가리곤 했다. 그래서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이 바로 학생인권조례다. 교육이나 규칙이라는 근거로 학생의 인권을 침해하지 않도록, 다양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학생이 학교에서 차별받지 않도록 최소한의 근거를 만든 것이었다. 그렇게 인권은 잘 보이지 않던 사람이나 인권보다 다른 것이 우선했던 공간을 향해 차츰 넓혀져 왔다.  

얼마 전, 인권의 영역을 확장해 왔던 역사를 다시 되돌리는 결정이 있었다. 충남에 이어 서울에서도 학생인권조례가 폐지된 것이다. 수많은 시민들이 반대했지만, 국민의힘 의원이 대다수인 서울시의회는 시민들의 목소리를 묵살했다. 이번 총선에서 정부여당이 민심의 경고를 받은 이유 중엔 민주주의의 퇴행도 분명 있었을텐데, 국민이 보낸 경고를 가벼이 무시하며 인권의 퇴행을 결정한 것이다. 더욱 우려되는 것은 인권을 퇴행시키는 정치적 결정이 가져올 일상에서의 퇴행이다.  

학부모단체가 서울시의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사진출처=오마이뉴스, ©윤근혁 기자 ⓒ교육언론창]

윤석열 대통령이 선거과정에서부터 말했던 것이 여성가족부 폐지다. 노골적으로 성평등 증진을 위해 애쓰는 부서를 없애겠다고 공언했다. 실제로 폐지까지 나아가지 못했어도, 국민의 성평등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지난해 여성가족부가 실시한 가족실태조사에서 3년 전에 비해 성역할 고정관념이 강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경제적 부양이나 의사결정은 남성이 하고, 가사 및 돌봄은 여성이 해야한다고 동의하는 비율이 높아진 것이다. 정부가 성평등 증진에 대한 의지가 없다고 노골적으로 밝히니, 이를 체념하는 국민의 인식 역시 후퇴하고 있는 셈이다.  

인권을 퇴행시키는 정치적 결정이 일과 가정의 양립을 위해 필수적인 일상에서의 성평등 인식에서부터 퇴행하는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여성가족부는 이 통계를 발표하지 않았다. 성평등을 증진해야 할 부서가 손 놓고 있는 것이다.  

정치가 모든 국민의 삶을 나아지게 하기는커녕 인권의 퇴행에 앞장서고 있다. 일상에서의 조용한 퇴행을 멈추고 다시 인권 확장의 길로 들어설 정치가 필요한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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