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 구도심 답사]
골목길 도시화석을 찾아서 - 관산동(1)

옛이름 ‘벽제’로도 불리는 통일로 소중심지 
상권 발달한 웃말, 빌라들이 빼곡한 안말 
오래된 건물과 골목, 초고층빌딩이 나란히  
시대별 특징 있는 빌라의 변천 “흥미로워”

[고양신문] 지난주 프롤로그를 읽지 못한 독자들을 위해 간단히 연재의 방향을 다시 한 번 밝혀드리자면, 이 시리즈는 고양의 구도심 마을에서 전해오는 유서 깊은 이야기나 오랜 역사유적을 찾으려는 기획이 아니다. 가까운 과거의 삶을 읽을 수 있는 ‘현재’의 모습들을 찾아 사진과 글로 기록하려고 한다. 일상 주변의 풍경이 급격히 변화하는 오늘날, 한 시절 한 장소의 흔적을 담고 있는 소중한 도시화석들을 기억의 수장고에 보관해두려는 것. 오래되지 않은 과거라는 이유로,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이유로 하찮게 잊혀진다는 게 아쉽기 때문이다.    

빌라들이 빼곡하게 들어서 있는 관산동 남쪽마을. 
빌라들이 빼곡하게 들어서 있는 관산동 남쪽마을. 

1번 국도 ‘통일로’의 중심마을 

맨 왼쪽 점선이 조선시대의 의주길, 붉은 선은 경기도가 정비한 경기옛길 의주길 코스. 지도 왼쪽 공릉천을 따라 나란히 뻗어올라간 노란색 길이 통일로다. [이미지출처=경기옛길 의주길 리플릿]
맨 왼쪽 점선이 조선시대의 의주길, 붉은 선은 경기도가 정비한 경기옛길 의주길 코스. 지도 왼쪽 공릉천을 따라 나란히 뻗어올라간 노란색 길이 통일로다. [이미지출처=경기옛길 의주길 리플릿]

본격적인 골목길 도시화석 탐사 나들이를 시작할 동네는 관산동 구도심이다. 관산동은 독자적인 법정동 명칭인 동시에, 내유동과 대자동을 포함하는 넓은 면적을 아우르는 행정동 명칭이기도 하다. 기자가 답사하려는 관산동은 과거 벽제읍 시절부터 인근 지역의 중심지 역할을 했던, 현 관산동행정복지센터가 자리하고 있는 통일로 좌·우 구도심 마을로 한정하려고 한다. 

관산(官山)이라는 지명은 조선 전기 고양군청 관아가 있었던 인근 고읍(고골)마을에서 유래했다. 옛 동네에서 비롯된 이름을 인근에 새롭게 성장한 동네가 가져오는 것은 지명의 전래에서 흔하게 발견되는 경우다. 

지도를 보며 관산동 마을의 입지를 살펴보자. 관산동은 1번 국도인 통일로 고양시 구간(삼송~신원~관산~가장~내유)의 중심 마을임을 알 수 있다. 사실 조선시대 고양을 대표하는 옛길은 의주길(한양~의주)이었다. 한양을 출발해 삼송동 숫돌고개를 넘어온 의주길은 오금동과 선유동, 고양동을 거쳐 혜음령을 넘고, 파주 광탄과 주내(파주읍), 선유리(문산읍)를 지나 파평면 화석정 부근에서 임진강을 건너 개성으로 향한다. 지금의 통일로보다 동쪽으로 선을 그으며 옛마을들을 지난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식민지 시대에 차량이 통행할 수 있는 근대적 도로(신작로)가 의주길 서쪽에 만들어졌고, 그 길이 박정희 정부에서 정비·확장돼 1972년 ‘통일로’라 명명됐다. 통일로는 대자동에서 봉일천까지는 공릉천과 나란히 가고, 금촌부터 문산까지는 경의선 기찻길과 나란히 달린다. 

 

통일로 북쪽에서 바라본 남쪽 도로변 상가 모습. 대로를 따라 저층 상가건물이 횡으로 늘어서 있다.   
통일로 북쪽에서 바라본 남쪽 도로변 상가 모습. 대로를 따라 저층 상가건물이 횡으로 늘어서 있다.   

남북 방향으로 활발한 교통의 연결 

분단과 전쟁 이후 고양과 파주는 접경 배후 군사지역이 되며 산업화와 경제발전에서 소외되고 말았다. 그나마 관산동과 조리읍(봉일천), 금촌과 문산 등 통일로 주변의 마을들이 지역의 거점으로서 주택가와 도심을 형성했다. 그중에서도 고양군 시절부터 벽제읍의 중심이었던 관산동은 숨가쁘게 전개된 산업화시기에 지방에서 대거 수도권으로 상경한 인구 중 일부가 정착하며 도심이 성장했다. 

이처럼 관산동의 공간적 연결성의 핵심은 통일로다. 각각 동쪽과 서쪽에 자리하고 있는 원당과 고양동으로 연결되는 도로망보다 남쪽의 삼송동과 서울 은평구, 북쪽의 봉일천과 금촌으로 가는 교통편이 훨씬 편리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행신과 화정, 일산신도시 등 1990년대 이후 중앙로와 자유로 중심으로 개발된 고양시 남서부의 대규모 택지지구와는 상대적으로 연결성이 낮을 수밖에 없다. 수년 전부터는 통일로 라인을 따라 3호선 삼송역에서 경의중앙선 금촌역을 전철로 연결하는 ‘통일로선(파주시에서는 조리금촌선이라 부른다)’에 대한 요구가 높지만, 실현가능성을 확보하려면 여러 가지 과제들이 놓여있는 게 현실이다. 

 

북쪽마을 상가거리 한가운데에 10여 년 전 고층 주상복합빌딩(더 퍼스트프라임)이 들어서며 관산동의 마을 풍경이 크게 달라졌다. 
북쪽마을 상가거리 한가운데에 10여 년 전 고층 주상복합빌딩(더 퍼스트프라임)이 들어서며 관산동의 마을 풍경이 크게 달라졌다. 

학교, 주거지, 상가가 공존하는 통일로 북쪽마을 웃말

통일로변에서 관산동이 큰 마을로 성장한 까닭은 지도를 보면 답이 나온다. 양주에서 발원해 고양시 동부의 야트막한 산악지역을 빠져나온 공릉천이 북서쪽을 향해 크게 반원을 그리며 넓은 퇴적지를 만들어놓은 곳이 바로 관산동이기 때문이다. 

고양군 벽제읍에서 고양시 관산동으로 이어지는 행정중심지답게, 구도심에는 각종 공공기관들이 자리하고 있다. 관산동행정복지센터와 복지회관, 관산파출소, 119관산지구대, 관산우체국 등이 큰길 양쪽에 골고루 자리 잡고 있고, 벽제농협 본점과 대형 로컬푸드직매장도 대로에 접해 있다. 

관산동마을은 마을 중심을 관통하는 통일로를 기준으로 북쪽 웃말과 남쪽 안말로 나뉜다. 야트막한 야산(건지산)으로 둘러싸인 웃말에는 80년대 이후 조성된 저층 빌라단지와 2000년대 이후 들어선 고층 아파트단지가 공존한다. 

 

관산동 2000년대 이전까지 관산동 북쪽마을을 대표했던 새서울 아파트. 80년대 중반에 지어졌다. 
관산동 2000년대 이전까지 관산동 북쪽마을을 대표했던 새서울 아파트. 80년대 중반에 지어졌다. 

구옥이 주를 이루던 관산동 웃말에 규모를 갖춘 아파트단지가 들어선 해는 새서울아파트(6개 동), 허스아파트(4개 동)가 입주한 1987년이었다. 비록 5층짜리 저층 아파트였지만, 나름 상가와 관리실, 놀이터까지 갖춰 오래도록 관산동 웃말의 간판 역할을 했다. 대규모 아파트가 지어지기 전 저층아파트의 전형을 보여주는 새서울아파트와 허스아파트는 흥미로운 요소들이 많은데, 이어지는 연재에서 천천히 살펴보자. 

스카이라인을 바꿔놓은 고층 주상복합건물

2000년대로 접어들며 고층아파트인 유승아파트가 2000년에, 대규모 단지인 관산주공그린빌아파트가 2003년에 각각 입주했다. 2014년에는 벽제시장이 있던 중심부에 고층 주상복합빌딩(더 퍼스트 프라임)이 들어서면서 마을의 스카이라인을 바꿔버렸다.       

안말(남쪽) 빌라골목에서 건너다 보이는 웃말(북쪽) 더 퍼스트 프라임 빌딩. 두 마을 사이에 통일로가 지나간다. 
안말(남쪽) 빌라골목에서 건너다 보이는 웃말(북쪽) 더 퍼스트 프라임 빌딩. 두 마을 사이에 통일로가 지나간다. 

교육기관 역시 관산초교, 고양제일중, 고양외고가 모두 웃말에 있고, 오랜 세월 방치됐던 마을 중턱 녹지대가 몇해 전 관산근린공원으로 단장을 해 휴식공간을 제공해주고 있다. 

상업적으로 관산동은 인근 지역 소중심지라는 위상에 걸맞게 동네병원, 약국, 카센터, 인테리어가게 등이 골고루 들어서 있지만, 매장의 숫자는 외식업의 비중이 높다. 특히 호프집 소주방과 같은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주점들이 골목 곳곳에 자리를 잡고 있어서 관산동으로 모여드는 유동인구의 특징과 소비성향을 짐작하게 한다. 

규모가 작은 다양한 가게들이 뒤섞여 있는 관산동 북쪽마을 상가골목. 
규모가 작은 다양한 가게들이 뒤섞여 있는 관산동 북쪽마을 상가골목. 

경로당에 남아있는 안말의 옛이름 ‘심천’

북쪽 웃말이 주거지역과 상가, 학교 등이 공존하는데 비해, 남쪽 안말은 통일로변에 늘어선 상가건물을 제외하면, 빌라와 연립주택들이 빼곡이 들어선 전형적인 주거지역이다. 

안말 아래쪽을 감싸고 흐르는 공릉천은 넓고 평평한 농경지를 만들어줬고, 오늘날에는 빌라 중심의 주거단지가 됐다. 녹지 공간 하나 없이 빽빽하게 들어선 빌라숲을 보면 풍경이 영 단조롭지만, 몇 발자국 걸어가면 탁 트인 공릉천이 있어서 답답하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마을의 옛 이름은 ‘심천’이었다. 공릉천 구간 중 물이 깊고 풍부한 이곳 주변을 옛사람들은 ‘깊은내’라고 불렀고, 한자이름으로는 심천(深川)마을이 됐다. 안말 빌라촌 한가운데에 자리한 경로당에는 ‘관산심천경로당’이라는 간판글씨가 붇어있다. 옛 지명의 흔적을 품은 반가운 도시화석이다.

 

관산심천경로당. 관산동의 옛 이름인 '심천'이 경로당 이름에 흔적을 남겼다.  
관산심천경로당. 관산동의 옛 이름인 '심천'이 경로당 이름에 흔적을 남겼다.  

1985년 이후 빌라 줄줄이 들어서  

관산동은 가히 빌라 천국이다. 다채로운 형태의 건물들이 수도권 변두리 빌라건축 변천사를 한자리에서 보여주는 전시장에 온 듯한 기분을 전해주기 때문이다. 건축 시기를 대략 확인해보니, 가장 오래된 빌라인 허스맨션이 1985년에 지어졌다. 생각보다 그리 오래된 건물들은 아닌 셈이다. 

사실 관산동뿐만 아니라 원당이나 능곡 등 고양시의 여러 구도심 마을들의 역사가 대개 비슷하다. 80년대 중반 이전까지 고양의 옛 마을들은 벽돌이나 블록, 슬레이트 등으로 지은 구옥들이 모여있는, 접경 배후지역 특유의 낙후된 풍경이었다. 그러다가 수도권의 인구 팽창이 고양까지 밀려들며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으로 주택 수요를 채울 수 있는, 소규모 건축회사들이 양산한 저층 빌라들이 앞다퉈 들어선 것이다. 

관산동 역시 앞선 허스맨션을 시작으로 미래주택, 자성빌라, 현대주택, 세인빌라, 통일빌라, 금강빌라, 대도빌라, 정우빌라, 동남빌라 등이 1990년대 중반까지 차례차례 골목을 채워나갔다. 이러한 빌라 건축 붐은 90년대 후반에 잠시 주춤하더니(아마도 IMF로 인한 건축 불경기의 영향인 듯), 2000년대 중반부터 다시 살아나기 시작해 2010년대 초 제2의 빌라건축 붐을 맞는다. 그렇게 40여 년에 걸쳐 관산동에 들어선 빌라와 아파트의 이름들은 기자가 세어본 것만 해도 무려 70여 곳에 가깝다. 

30여 년 전 지어진 빌라들은 대개' 00빌라'라는 이름을 달고 있다. 
30여 년 전 지어진 빌라들은 대개' 00빌라'라는 이름을 달고 있다. 

2000년대 이후 빌라의 ‘라’자 떼어버려 

이렇게 시기별로 들어선 빌라들은 명칭과 형태에서 분명한 차이를 보이기도 한다. 이름을 살펴보면 2000년대를 기준으로 그 이전에 지어진 빌라들은 대부분 ‘00빌라’, 또는 ‘00주택’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다. 

하지만 2000년대 이후에 지어진 빌라들은 거의 다 ‘00빌’이라는, 글자 하나가 단축된 명칭을 채택했다. 실제로 발음을 해보면 ‘00빌라’보다는 ‘00빌’이 왠지 세련돼 보이는 느낌도 든다. 예를 들자면 한신아르빌, 광산쉐르빌, 서광탑스빌, 청보하이츠빌처럼 한자이름과 영어이름을 연이어 붙이고 그 뒤에 ‘빌’로 마무리하는 흥미로운 작명법을 보여준다. 

 

2000년대 이후 지어진 빌라들은 한자어와 영어(또는 우리말) 이름을 함깨 병기한 뒤 '~빌'이라는 어미를 덧붙였다. 
2000년대 이후 지어진 빌라들은 한자어와 영어(또는 우리말) 이름을 함깨 병기한 뒤 '~빌'이라는 어미를 덧붙였다. 

그러다가 2010년대 중반을 넘어서면 아예 ‘00빌’도 떼어버리고, 엘리시아, NS타운, 더파라곤, 명진클래스처럼 창의적인 이름들이 주를 이룬다. 간판의 방향도 이 무렵부터 세로쓰기에서 가로쓰기로 바뀐다. 빌라 이름 작명과 표에도 시대적으로 유행하는 감각이 있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2010년대 이후 만들어진 새로운 감성의 빌라들. 간판 표기도 가로쓰기로 바뀌었다.
2010년대 이후 만들어진 새로운 감성의 빌라들. 간판 표기도 가로쓰기로 바뀌었다.

또 하나, 과거 저층 주거건물의 원조 명칭인 ‘연립’이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는 점도 의외였다. 앞서 언급한 작명의 유행학 측면에서 추측해보자면, 1980년대 중반에 이미 ‘연립’이라는 이름은 업계에서 퇴출된 듯하다. 

 90년대 특징은 벽돌건물, 2000년대는 필로티 구조   

빌라들은 형태적으로도 차이를 보여준다. 2000년대 이전에 지어진 빌라들은 대개 붉은벽돌, 또는 시멘트벽 마감에 페인트칠을 했다. 일부에서는 지붕이나 현관 위에 작은 기와를 장식한 모습도 볼 수도 있다.

반면 2000년대 이후 지어진 빌라들은 형태와 마감재 등에서 획일성을 탈피해 다채로운 건축적 선택들을 보여준다. 또한 주차공간에 대한 별다른 배려가 눈에 띄지 않는 2000년대 이전 건물들과 달리, 1층을 주차공간으로 내어준 필로티 구조가 많은 것도 이 시기의 빌라들에서 나타나는 특징이다.

2000년대 들어선 빌라 중 일부는 필로티 구조로 주차장을 확보했다.
2000년대 들어선 빌라 중 일부는 필로티 구조로 주차장을 확보했다.

옛 골목 흔적 보여주는 삼각형 건물들 

관산동 빌라골목에서 발견되는 또 하나의 인상적인 요소 중 하나는 사각형을 벗어난, 마름모나 삼각형 형태의 건물들도 여럿 발견된다는 점이다. 건축주의 개성을 표현하려는 것은 아닐 테고, 이유가 뭘까? 답은 간단하다. 건물을 지을 땅 모양이 그렇게 생겼기 때문이고, 더 크게 봐서는 골목길의 모양이 그렇게 생겼기 때문이다. 

이는 자연마을에서 발전한 주택단지에서 많이 발견되는 양상인데, 불규칙하게 형성된 오래된 골목길과 새롭게 정비된 규칙적인 길들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삼각형의 자투리땅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관산동 토박이인 엄호용씨(삼화인테리어 대표)의 설명을 들어보니, 웃말에서 안말을 거쳐 공릉천으로 흘러드는 실개천이 몇 개 있었는데, 그 길을 복개하며 만들어진 길이 바로 지도에서 사선으로 표시되는 길들이라고 한다. 

삼각형 땅에 지어진 상가건물. 개천 복개도로(오른쪽길)와 통일로가 교차하며 삼각형 땅을 만들었다. 
삼각형 땅에 지어진 상가건물. 개천 복개도로(오른쪽길)와 통일로가 교차하며 삼각형 땅을 만들었다. 

이처럼 골목길을 걷다가 삼각형이나 마름모꼴 건물들을 마주하게 된다면, 주변 골목길이 오래전부터 있었던 길이거나, 복개된 개천의 흔적일 가능성이 높다. 

반면에 원당 주교동의 빌라들은 관산동과 비슷한 시기에 지어졌지만, 삼각형 모양의 건물들을 찾아볼 수 없다. 주교동은 80년대 중반 택지개발사업을 통해 일정 구역 전체의 길과 구획을 재정비한 후 빌라촌을 조성했기 때문이다. 공간의 쾌적성은 주교동 빌라골목이 훨씬 높겠지만, 구도심 답사가의 흥미와 호기심을 자극하는 쪽은 아무래도 관산동이다. 

관산동 구도심 마을에 대해 개괄적인 내용을 짚어보았다. 다음 시간에는 본격적으로 카메라에 기록된 관산동마을의 도시화석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도록 하자.

※ 도움말  엄호용 (관산동 삼화인테리어 대표)
※ 참고도서 갈등 도시』 『대서울의 길』 (김시덕, 열린책들)

새서울아파트와 같은 연도(1987년)에 완공된 허스아파트. 지붕을 한옥 기와처럼 장식하고, 벽면에 벽화를 그려넣은 독특한 외관이 인상적이다. 뒤쪽으로 2000년에 지어진 유승아파트가 보인다.   
새서울아파트와 같은 연도(1987년)에 완공된 허스아파트. 지붕을 한옥 기와처럼 장식하고, 벽면에 벽화를 그려넣은 독특한 외관이 인상적이다. 뒤쪽으로 2000년에 지어진 유승아파트가 보인다.   
관산동 남쪽 빌라단지를 둘러싸고 있는 공릉천 둑방. 마을의 녹지공간 역할을 한다. 
관산동 남쪽 빌라단지를 둘러싸고 있는 공릉천 둑방. 마을의 녹지공간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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