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택 생태환경평론가
박수택 생태환경평론가

[고양신문] 동북아생물다양성연구소장 현진오 박사를 비롯한 식물학자들과 식물에 관심 높은 시민들이 '식물탐사대'라는 모임을 꾸려 자연에 나가 식물종을 찾아보고 기록하는 활동을 10여년 째 이어오고 있다. 식물은 광합성 기능으로 대기중의 이산화탄소를 빨아들여 열매나 뿌리에 영양물질을 저장하고 부산물로 산소를 내놓는다. 식물이 없으면 인간을 비롯한 동물은 먹을 것은 물론이고 호흡에 필요한 산소를 얻지 못하니 살아갈 수 없다.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라도 허투루 대해선 안 될 일이다. 지구상의 식물은 대략 35만 종으로 알려져 있다. 생태계의 바탕을 이루는 식물의 계통을 파악하고 무슨 종인지 판별하는 식물분류학은 기초 과학으로 중요하다. 태곳적부터 인간은 풀, 나무를 보고 특징을 잡아 이름을 붙이고 구분하며 이용해왔다. 식물을 구분할 때 가장 절실하고 분명한 기준은 '먹을 수 있는가 없는가, 사람에게 어떤 쓸모가 있는가'였을 것이다. 기독교 구약성경에도 사람에게 이익을 주는 나무와 그렇지 않은 나무 이야기가 등장한다.

나무나라에서 나무 국민들이 왕을 모시겠다고 나섰다. 올리브나무를 찾아가서 왕이 되어 달라고 청했다. 올리브나무는 풍성한 기름으로 신과 인간을 섬기는 영광을 버리고 어찌 왕의 권세를 휘두르겠느냐며 사양했다. 나무들은 무화과나무를 찾아가서 왕이 되어 달라고 청했다. 무화과나무도 달고 맛난 열매 맺기를 버리고 다른 나무들 위에서 날뛸 수 없다며 거절했다. 나무들은 다시 포도나무에게 청했지만 그도 신과 사람을 즐겁게 하는 포도주 내는 일을 그만둘 수 없다며 고개를 저었다. 나무들은 결국 가시나무에게 왕이 되어달라고 청했다. 가시나무는 앞의 열매 맺는 다른 세 나무와 다르게 덥석 받아들이며 조건을 달았다. “너희가 나를 왕으로 삼겠거든 내 그늘 아래로 숨어라, 안 그러면 가시덤불에서 불이 뿜어나와 레바논의 백향목을 살라버릴 것이다!” 가시나무는 다른 나무들에게 절대 복종을 요구한 것이다. 나무 나라는 내놓는 열매 없이 폭정을 휘두르는 가시나무를 왕으로 받들고 고초를 겪어야 했다. 

이 이야기는 이복 형제 70명을 한 자리에서 죽이고 왕으로 행세한 아비멜렉이라는 인물을 빗댄 것으로 구약성경 사사기(士師記) 8~9장에 나온다. 이들의 아버지 기드온은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용사 300명을 가려뽑아 이스라엘을 위협하는 이민족을 물리쳤다. 사람들이 위업을 기려 기드온과 후손들을 왕으로 받들겠다고 청했지만 기드온은 사양했다. 여종의 소생인 아비멜렉은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자기 모친의 고향 사람들을 선동한다. 형제 70명보다는 자기 한 명이 다스리는 것이 낫다는 여론을 일으키고 자금을 거둬 건달과 불량배를 고용했다. 무리를 이끌고 아버지의 집으로 쳐들어가 형제들을 모두 죽였다. 요담이라는 막내만 몸을 숨겨 겨우 목숨을 부지했다. 사람들은 살인자 아비멜렉을 왕으로 삼았다. 요담은 산에 올라가 아비멜렉을 왕으로 받든 사람들에게 가시나무 왕 비유를 들며 이것이 옳고 마땅한가 외쳐 묻는다. 왕으로 자처하고 왕으로 받든 행위들이 옳고 마땅하지 않다면 장차 서로 불로 사르게 될 것이라고 저주의 예언을 던진다.

피를 내고 들어선 권력은 피를 내며 무너진다. 아비멜렉과 지지자들 사이에 불화 반목이 일어나 참혹한 살륙이 이어졌다. 아비멜렉은 자기 권력의 기반인 성읍 사람들을 차례로 학살하고 싸움을 지속하다가 높은 망루에서 여인이 던진 맷돌에 맞아 머리가 깨진다. 여인에게 죽임을 당했다는 소리가 나올까 두렵다며 그는 부하 병사에게 칼로 자신을 찌르라고 명한다. 가시나무 같았던 폭군의 최후는 비참했다. 아비멜렉은 형제 70명의 피값을, 그를 도운 성읍 사람들은 죄악의 대가를  치렀고, 요담의 저주는 이뤄졌다고 성경은 전한다. 특정 종교의 신앙 여부와 상관없이 비유 기록의 의미와 교훈을 짚어본다. 올리브, 무화과, 포도나무는 모두 자신의 열매로 남을 이롭게 하는 존재다. 익은 벼가 고개를 숙이듯 겸손하기도 하다. 가시나무는 스스로를 위하고 지키려 가시로 남을 위협하고 상처를 준다. 권좌에 앉으려면 선의를 갖고 역량을 발휘해 국민에게 복리를 베풀고 높은 비전을 제시해 국가 사회 공동체를 밝은 미래로 이끌 수 있어야 마땅하다. 

이솝 우화에도 비슷하게 개구리들이 신에게 왕을 보내달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신은 통나무를 연못에 던져준다. 아무 말도 없이 물에 떠있는 통나무왕에게 싫증이 난 개구리들은 다른 왕을 보내달라고 조른다. 황새가 날아왔다. 개구리들은 멋지고 우아한 왕이 생겼다고 기뻐하다가 하나씩 황새의 날카로운 부리에 찍혀 황새의 뱃속으로 들어가고 말았다. 나무나라나 연못의 개구리들이나 자신들이 세운 왕에게 해를 당한다. 그럴 줄 알았다면 그런 왕을 구하지 않았을 텐데 안이하게 결정하고 성급하게 선택한 대가는 크고도 무겁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주권은 유권자 국민에게 있다. 국민은 선거를 통해 국가를 운영할 정부 지도자를 세운다. 정부 지도자는 일정 기간에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권력으로 봉사하는 청지기일 뿐이다. 주권자 국민에게 귀 기울이며 부지런하고 사심이 없어야 마땅하다. 지방의회 의원, 시장 군수 도지사, 국회의원...그리고 대통령까지, 설마하니 나무나라의 가시나무왕 같은 존재는 아니길 빌고 싶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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