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전 <온전한 나>
나희균·류민자·승연례·서윤희·정재은
~6월 16일, 안상철미술관

특별기획전 '온전한 나' 전시가 열리고 있는 안상철미술관. 
특별기획전 '온전한 나' 전시가 열리고 있는 안상철미술관. 

[고양신문] 재작년 가을 모 일간지에 실린 ‘남편 그늘 벗고… ‘온전한 나’로 일어선 女 화가들’이라는 기사가 문화계에 잔잔한 반향을 일으켰다. 제목 그대로 유명 예술가의 배우자이면서, 자신만의 독립적인 예술세계를 구축한 여성 화가들을 재조명하는 기사였다.

기사에서 언급된 작가들을 한자리에 초청한 전시가 양주시 백석읍에 자리한 안상철 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지난달 23일 시작된 특별기획전 <온전한 나>는 유명인의 아내라는 선입견을 털어내고 부단히 작업에 정진해 스스로의 독보적 작품세계를 펼쳐나가고 있는 5명의 작가들을 만날 수 있는 전시다. 90대 나희균, 80대 류민자, 70대 승연례 작가와 ‘온전한 나’ 정신을 계승하고 있는 50대 서윤희, 정재은 작가가 그 주인공이다. 

안상철미술관 관계자는 “전시 구성은 기사를 기반으로 출발했지만, 사실 남편 또는 가족의 유명세가 무색할 정도로 작가들의 작품 세계는 깊고 탄탄하다”고 말했다. 이어 “유명 화가의 부인 또는 조력자로서 편안한 삶을 뒤로하고 자신의 세계를 스스로 소중히 여기며 인생 후반까지 동력을 유지하고 있는 작가들의 삶의 태도 또한 작품과 함께 들여다보아야 할 감상 포인트”라고 소개했다. 

안상철 하인두 이건용… 남편이자 동료예술가 

나희균 작가는 파격적인 구조와 실험으로 주목받은 국전 스타 안상철 작가의 아내이자, 한국 최초의 여성서양화가로 불리는 나혜석의 조카다. 본인 또한 1950년대에 프랑스에 유학하고, 1960년대에는 기하학적 추상회화를 제작했고, 1970~80년대에는 오브제, 네온, 철을 소재로 산업화 시대에 걸맞은 전위적인 입체작품을 다양하게 선보였다. 1990년대부터는 평면 작업으로 돌아가 우주 공간이나 자연, 문자 등을 소재로 초월적 세계와 정신세계를 표현하는 데 집중했다. 구순에 접어든 현재까지 한시도 작업을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진화해 온 나희균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안상철미술관 앞 기산저수지의 풍경을 담은 회화 ‘고요’ 시리즈를 선보인다.

나희균 작 '고요2'.
나희균 작 '고요2'.

류민자 작가는 기하학적인 색면추상의 대가 하인두 작가의 아내이자, 화폭을 색띠로 채운 추상작업으로 현대미술 시장에서 주목받고 있는 하태임 작가의 어머니다. 굵고 짧은 선으로 생명의 근원적 율동을 표현하는 류민자 작가의 작품은 우리 고유의 아름다움과 불교 사상을 새롭게 재구성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전시에 출품한 ‘피안’은 대담한 배치와 화사한 색감을 통해 색면 산수화의 새로운 면모를 보여주는 작품으로, 한 작품만으로 전시장 한쪽 벽면을 압도할 만한 대작이다. 작가는 자연에서 받은 인상을 불교의 우주관에 근거해 캔버스 위에 풀어낸다. 단청을 닮은 장식적인 색채는 생의 환희와 역동성을 보여주는 듯하다.  

류민자 작 '피안'. 
류민자 작 '피안'. 

승연례 작가는 우리 화단에 개념 미술을 도입하고 발전시킨 이건용 작가의 아내이다. 일필휘지의 필력이 돋보이는 드로잉 회화는 이건용의 신체 회화에 나오는 생생한 필치와 닮아있다. 그림 속 야자수의 부드러운 듯 강인한 자태는 작가 자신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또한 감상자의 각도에 따라 화면이 달라 보여 마치 나무가 살아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승 작가는 “10여 년 전 개인전 초대로 샌디에이고에 머물렀던 당시 이층 숙소 밖의 풍성한 야자수의 생명력에 매료돼 이후 계속 나무 주제로 작업하고 있다. 클래식 음악을 들으며 음률의 속도에 따라 붓의 강약을 조절하며 화폭에 에너지를 담아낸다”고 밝혔다.

승연례 작 '종려나무'. 
승연례 작 '종려나무'. 

스스로 개척한 전업작가의 길  

서윤희 작가는 기억이 생성되고 소멸하는 순환 구조를 자연의 위대한 시간으로 해석해 화폭에 풀어내는 작가다. 특히 특정 지역에서 채집한 자연물로 자신만의 염료를 만들어 삶의 흔적을 기록하는 작업방식으로도 주목을 받았다. 안상철미술관 관계자는 “회화의 과정에서 자연을 채집해 염료를 만드는 서 작가의 작업은 그 자체로 신체 미술이자 퍼포먼스이며, 특정 지역 자연의 흔적을 기록하는 대지미술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퍼포먼스를 영상에 담는 비디오 아트까지 장르를 넘나드는 서윤희 작가의 독특한 작업 방식은 새롭지 않으면 아름답지 않다는 현대미술의 개념을 내포한다”고 덧붙였다. 서 작가는 온전한 여성 전업 작가로서의 가능성을 후배 작가들에게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온전한 나> 전시에 초청됐다.  

서윤희 직 'Memory Gap_where am I'. 
서윤희 직 'Memory Gap_where am I'. 

‘화인(畵人)’이라 적은 명함을 가지고 다니는 정재은 작가는 미 국무부 대북 특별대표로 활약하는 성김 전 주한미국대사의 아내이다. 30년 가까이 남편의 외교활동을 내조한 작가는 다시 그림을 그리기 위해 홀로 한국에 왔다. 정 작가는 “외국으로 다니다 보니 오히려 시선이 안쪽으로 향해 민화로 다시 작업을 시작했다”면서 “민화는 유머와 해학이 있고 시점이 여럿인 점도 자유롭고 재밌다”고 말한다. 서양화를 전공한 작가답게 민화 소재를 재구성하고 본인만의 감성을 담아낸다. 작가는 영화 <나랏말싸미>에 배경으로 나오는 일월오봉도와 교태전의 모란 병풍을 그리기도 했다. 전시작 중 ‘첩첩서중(Lost in Books)’은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린 <책거리 유럽 순회전>에 출품한 작품으로, 현지에서도 ‘건축적 구성미가 뛰어나다’는 호평을 받았다. 

정재은 작 '첩첩산중'. 
정재은 작 '첩첩산중'. 

전시도 관람하고 풍경도 구경하고 

안상철미술관 관계자는 “50대부터 90대까지 연령대는 다르지만, 오랜 시간 꾸준히 자신만의 길을 연마한 이들의 행보는 각자 다른 방향에서 ‘온전한 나’를 찾으려 노력하는 모든 예술가의 행로와 맞닿아 있다”고 말했다. 안상철미술관의 위치는 장흥관광단지 기산저수지 바로 옆이라 고양에서도 멀지 않다. 여성화가들의 다채로운 개성과 열정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전시를 놓치지 말자. 호수를 끼고 있는 미술관 주변의 멋진 경치는 덤이다. 전시는 6월 16일까지 열린다. 

안상철미술관 
주소  양주시 백석읍 권율로 905
문의  031-874-0734

안상철미술관 전경. 
안상철미술관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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