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성 고양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장

피해 직시하고 자기해석해 주체성 회복해야
평등시민, 여성으로 살아갈 수 있어

 

성폭력상담소 김미성 소장
성폭력상담소 김미성 소장

[고양신문] “여성주의 상담의 핵심은 피해자가 본인 상황을 제대로 바라보고, 스스로 대처할 수 있는 주체성을 회복하게 하는 것이에요. 상담에 그치지 않고 법적 대처를 돕고 법원모니터링까지 함께 하죠. 그러다보니 상담 한건 한건이 모두 나의 사건이라고 생각하게 돼요.”
올해 3월 1일부터 고양여성민우회 부설 성폭력상담소장을 맡은 도마(고양성폭력상담소는 상근자 간의 위계 형성 지양을 위해 별칭을 쓴다) 김미성 소장은 여성주의 상담의 다름에 대해 강조했다. 김 소장은 고양여성민우회 부설 피해자쉼터 ‘하담’에서 3년 정도 있다가 성폭력상담소 상근자 활동을 2년 하고 이번에 소장이 됐다.

성폭력예방교육 접하고 여성의식 자각
김 소장은 어떻게 여성운동, 상담을 하게 됐을까. 이전까지 그는 재무관련 회사에서 인사담당자로 일했다. 2014년 업무 특성상 성폭력 예방교육을 이수해야했다. 이왕 받는 김에 제대로 된 교육을 받아야겠다는 생각에 민우회 교육을 소개받았다. 

“커리큘럼을 보니 너무 좋았는데 100시간이 부담스러워서 고민을 하다가 회사에 꼭 필요한 교육이고, 잘 받아서 더 열심히 일하겠다”고 설득했다. 그렇게 열심히 설득하며 듣게 된 교육이 이직을 결심하는 계기가 됐다. 교육을 받는 과정에서 그가 알지 못했던 자기를 해석하게 됐다는 것. 스스로의 삶이 이해 되니 무엇을 하고 싶은지도 분명히 알 수 있게 됐다.

“교육을 받고 나니 보이더군요. 여느 날과 다름없는 점심식사 때였어요. 식당 TV에서 일본군성노예 관련 보도가 나오니까 부장님이 ‘도대체 언제적 위안부냐. 나라 간 관계도 있는데 이제 그만 좀 하지’라고 하시는 거예요. 그 부장님이 인성이 좋다는 평을 받는 분이었는데. 저는 그 순간 거기 앉아있는 것이 너무 힘들었습니다.”

아는만큼 보이기 시작했다. ‘미투’사건 보도를 보면서 오히려 가해자나 남성을 향해 ‘불쌍하다, 재수없게 걸려서 인생 끝났네’하는 동료들의 이야기가 부당하다는 걸 알게 됐다. 깨달음으로 직장생활이 불편해지면서 ‘여성운동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마침 하담에서 주말 근무자를 찾는다는 소식을 들었고, 2019년 상근활동가가 됐다.  그렇게 김 소장은 새로운 인생 2막을 시작했다. 

성폭력피해자를 돕는 일은 어떤 것일까. “피해자를 돕는다는 표현보다는 함께 한다는 말이 맞습니다. 여성단체의 피해자 지원은 피해자가 본인의 주체성을 회복하고, 본인의 피해를 제대로 들여다보고, 자기위치를 해석하는 힘을 갖게 합니다. 여성주의 상담은 사회적 권력 분석을 피해자와 함께 하는 것부터 시작하죠. 그렇게 주체성을 회복한 피해자는 그 힘으로 평등한 시민으로 여성으로 살아갈 수 있게 됩니다.” 

“피해자와 사회적권력분석 통해 인식전환”
상담소를 찾은 피해자와 상담자 사이에도 권력 관계가 형성되고, 그런 관계를 알아보고, 평등의 경험을 갖게 하면서 피해자가 사회 안에 놓여있는 상황, 자신을 해석할 수 있게 된다는 설명이다. 성폭력 피해자 상담은 피해자 지원을 넘어 사회운동이 돼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피해자들을 도와 고소 동행, 재판 방청을 하고, 전 과정을 밀착해 조력하다보면 활동가들에게는 ‘나의 사건’이 된다. 물론 처음부터 제대로 대처를 못해 피해를 인정받지 못하거나 오히려 무고를 당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고소부터 경찰 조사까지 차근차근 소명하고 진술해야하는데 그렇지 못해서 불이익을 당하는 경우를 보면 안타깝습니다. 실제 가해자는 오히려 경찰 조사를 받기까지 시간도 있고, 충분한 준비를 해서 대처를 합니다. 가해자의 경우 가해 전문 변호사에, 대처 정보를 교류하는 커뮤니티 사이트까지 있는데 정작 피해자들은 사건화 초기에 제대로 된 정보나 조력을 얻기가 쉽지 않아요.”

고소단계부터 변호사 선임 등 피해자 지원 필요
김 소장은 “경찰서에서 고소 접수 상담시에 성폭력피해자들에게 상담소를 안내 해주거나 연결을 해줄 수 있으면 좋겠다"며 “특히 국선변호사 선임 등의 지원이 고소준비나 고소단계부터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성폭력상담소 활동을 제대로 알리고 연계하는 방안을 고민 중이다. 경찰서가 피해자들에게 안내를 해주거나 연결을 해주면 좋겠다는 의견이다. 상담, 법률 지원 말고도 할일이 많다. 

“우리 활동이 여성운동, 사회운동으로 연결돼야 하죠. 지역사회에 여러 시민단체들과 연대도 하고 홍보도 나서고 활동을 알리는 토론회, 간담회도 마련하고 싶어요. 힘들지만 해야겠죠.”

상담소는 올해 하반기 교제폭력, 스토킹범죄를 주제로 거리 캠페인을 준비한다. 여성운동, 피해자를 돕는 일은 “누구나 할 수 있다”는 김 소장은 “시민단체에 회원으로 참여하고, 캠페인에 함께 해주고, 힘을 보태는 것부터 시작하라”고 조언했다.   

올해부터 상담소에서는 업무 시간 전 상근자들과 티타임을 갖는다. 조금이라도 여유를 갖고, 서로를 북돋는 시간을 갖기 위해서다. 오전부터 쉴틈 없는 업무가 시작된 후 누군가 ‘식사하세요’하고 외치면 점심 시간인 줄 알고, 알람이 울리면 퇴근 시간인 줄 안다. 상담소의 하루는 그렇게 끝나지만 또 누군가는 야근으로 남은 업무를 이어간다. 
 
“여성민우회를 알면서 삶을 해석하게 됐고, 이젠 나의 삶에서 여성운동을 분리할 수 없다”는 김 소장. 그러한 깨달음이 오늘을 살아가는 원동력이라는 그의 벅찬 내일이 궁금해진다. 

여성주의 상담은 심리지원을 넘어 사회적 운동으로 연결돼야 하기에 성폭력상담소는 캠페인, 다양한 활동을 함께 하고 있다. 
여성주의 상담은 심리지원을 넘어 사회적 운동으로 연결돼야 하기에 성폭력상담소는 캠페인, 다양한 활동을 함께 하고 있다. 

 

<고양성폭력상담소 내담자의 상담 마지막날 후기>

안녕하세요, 저는 성추행 및 준간강 피해자입니다. 저의 경우 모르는 사람이 아닌 지인 간에 일어난 사건으로 사건당시 가해자의 부인과 그 가족들은 가해자의 잘못도 있지만 제게 ‘왜 평소에 가해자에게 친절했냐’. ‘왜 술을 먹고 잠들었냐’는 반응이었습니다. 
저는 엄청난 수치심과 대인 기피증으로 사건 직후 며칠간 일을 하지 못했습니다. 가해자의 가족들은 저의 직장에 알리겠다며 조용히 넘어갈 것을 요구했습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난 후 매일매일 자살 생각에 베란다 난간에 서성였습니다. 살아갈 힘도 살 이유도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왜 나는 피해자인데 죽어야 하지’하는 억울한 마음도 들었습니다. 사건 직후에 성폭력 상담소에 전화를 걸게 되었고 그때 상담 선생님께서 직접 내방하여 상담을 받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해 주셨습니다.
첫 회기에는 계속해서 눈물이 나오고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는 통에 상담이 어려웠습니다. 두 번째 세 번째 회기에도  상담 직후에는 마음이 안정이 되었으나 상담하러 오는 길이 너무나도 괴롭고 누가 볼까 고통스러웠습니다. 
그러나 몇 번의 회기가 진행되면서 상담 선생님의 진실된 마음 그리고 차분한 태도에 저는 점점 마음의 문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이전에 했던 자살 생각도 많이 줄었고 일상으로 점차 돌아가려고 합니다. 피해자 여러분, 성폭력은 다른 폭력과는 달리 수치심을 동반하는 범죄로 너무나도 힘들 것을 잘 압니다. 하지만 상담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이 생각납니다.
지금 비록 상처입어 멈춰 있지만 또다시 앞으로 나아간다면 길게 보는 내 인생에서는 지금의 시기가 결코 상처만의 시간을 아닐 거라고 말입니다. 정신과를 다니고는 있지만 약만으로는 치료가 어렵습니다. 용기내서 방문하세요. 방문해서 근본적인 치료를 받으세요. 
여러분 숨지마세요. 혼자 계시지 마세요. 용기내 상담을 받으신다면 분명히 좋아질 거라고 확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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