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한진희 ‘잘 아플 수 있는 권리’ 특강
[고양신문]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다.’ ‘노력하면 반드시 건강을 되찾을 수 있다.’
당연하게 들리는 이런 말들이 누군가에게는 상처나 차별의 언어가 될 수 있다면. 자기관리를 못해서 치매, 비만환자가 되고, 간암, 위암의 원인을 환자에게 찾는 사회. 우리에게 아플 권리란 없는 걸까.
‘우리동네 서로돌봄 마당’이 주최하고 여성환경연대가 지원하는 ‘잘 아플 수 있는 권리는 무엇입니까’ 특강이 지난 27일 오후 7시30분 능곡 동녘교회에서 열렸다.
이날 특강을 한 조한진희 강사는 ‘다른몸들’ 대표,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 저자다. 조한 강사는 건강을 정상, 질병을 그렇지 못한 상태로 규정하고 질병 원인을 개인에게로 돌리는 사회에 대해 문제의식을 던지며 변화를 요구했다.
“2009년부터 2015년까지 저는 고3 수험생처럼 정말 열심히 투병생활을 했어요. 노력하면 반드시 건강을 되찾을 수 있을 줄 알았지만 그렇지 못했어요. 저는 이렇게 아픈 상태로 계속 살아야 하는데 그럼 나는 불완전한 사람인건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됐죠. 건강을 회복하지 못해도 불행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리고 건강한 사람의 시선과 아픈 사람의 시선은 어떻게 다를까를 고민하게 됐어요.”
한국사회는 질병 원인을 개인에게서 먼저 찾는다. 간암은 술을 많이 먹어서, 위암은 짜게 먹어서. 코로나 팬데믹 당시에는 개인들의 동선을 추적해 감염된 이들을 사회적으로 비난하는 분위기가 형성되기도 했다. 실제 전체 생애 중에서 통상적인 기준의 건강을 유지하는 기간은 20~30대 정도. 주변을 둘러봐도 질병이 전혀 없는 자부할 만한 건강을 유지하는 이들보다는 무언가 병이 있는 경우가 더 일반적이다. 조한 강사는 이전에는 질병을 ‘불운’으로 보다가 지금은 자기관리를 못해서, 실패자 취급을 하는 분위기라고 지적했다.
“성폭력 피해를 늦게 귀가해서, 미니스커트를 입어서, 노래방에 가서 당한 것처럼 피해자에게 손가락질을 하잖아요. 질병도 그래요. 아픈 사람이 뭔가 미안하고, 죄지은 것 같고, 실패자 취급을 하는 시대입니다. 질병을 이렇게 개인화하면 우리를 아프게 만드는 사회 구조를 결코 변화시킬 수 없어요. 성폭력이 여성을 대상화하는 사회적 문제인 것처럼 질병도 사회시스템의 문제로 바라봐야 합니다.”
조한 강사는 “WHO 세계보건기구는 ‘건강하다’는 기준은 신체적, 사회적, 영적으로 건강한 상태라고 규정했는데 그 기준으로 따지면 사실 한국 사회에 건강한 사람이 아무도 없다”며 “누군가가 건강하다, 건강하지 않다라는 것을 말하기 위해서는 그 개인이 살고 있는 사회가 어떤 사회인지를 같이 봐야한다”고 말했다. 불평등한 사회에서 건강을 강조하고, 질병, 건강하지 않은 상태를 외면하면서 오히려 건강할 권리, 아플 권리가 함께 침해받고 있다는 것.
“저의 동료는 척수염으로 근육이 점점 축소되는 장애를 갖고 있는데 신체 특성으로 허리 엑스레이를 찍을 수 없고, 결국 병원에서 급여 청구 대상 진료를 받지 못해 비급여 약을 먹을 수밖에 없어요. 많은 중증장애인들 중에 의료급여가 있어도 병원에 잘 안 가려고 하는 분들이 많은데 이유 중 하나가 병원에 가도 CT나 MRI같은 기계들이 비장애인 중심으로 만들어져 정확한 진단을 받기 어려워요. MRI를 찍어야 하는데 그 기계안에 들어가기 어려운 경우도 있어요. 병가신청을 위해서나 보험에서도 병을 인증받아야 하는데 그 인증 시스템 자체가 굉장히 비장애인 중심이어서 인증 자체가 안 되는 경우도 있죠.”
건강, 질병 진단을 받기 위한 의료의 대상에서도 건강하지 않은 사람, 장애인들은 권리를 침해받는다는 설명이다. 또한 여성, 노인, 여성노인들이 질병에 더 취약하다는 주장도 있다.
“많은 여성들이 혹은 어떤 남성들은 그를 포함해 퇴근 이후에도 계속 노동을 하잖아요. 보통 주당 6시간 이상이면 과로, 52시간 이상 노동으로 과로사가 염려된다는 이야기를 하는데 워킹맘들은 보통 주당 60시간 이상 노동하는 경우가 굉장히 많죠. 제가 요양보호사 노동자들과 모임을 하는데 그들 중 낮에는 요양보호사로 일하고, 저녁 때는 손주 돌봄하시는 분들이 있어요. 이분들의 일주일 노동시간을 살펴보면 요양보호사로 40시간 일하고, 할머니로 손주 돌봄을 35시간씩 해요. 일주일에 그럼 75시간을 일하는 거죠.”
서울의 지자체별 기대 수명은 서초구 86세, 강남구 84세, 송파구 83세인데 동대문구 81세, 도봉구 81세, 금천구 81세. 세수, 경제 상황과 기대 수명이 비례하는 것이다. 조한 강사는 “생물 감소는 모든 생명체가 갖는 생애 주기라고 전제되어 왔었는데 자본주의 사회가 되면서 쌩쌩한 몸만을 정상적인 몸으로 말하고 있다”며 “생로병사가 살아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된다. 우리 사회의 어떤 정상성에 대한 기준, 표준의 몸에 대한 기준 자체를 다 뒤집어야 된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