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빛시론] 정재훈 서울여자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고양신문] 요즘 워낙 출산율이 낮고 출생아 수도 적다 보니 다들 나라 걱정을 한다. 그러면서 곳곳에서 세미나, 포럼, 긴급대책 회의 등이 열린다. 이러한 흐름에서 볼 수 있는 공통점이 있다. “인구, 인구, 인구... 인구 위기에서 벗어나야...”

그런데 한 가지 물어보자. 인구는 누가 구성하나? 나 한 사람 한 사람이 모여 인구가 된다. 나는 어떻게 나왔나? 두 사람, 즉 내 부모님이 만나서 결혼을 하고 낳았다. 두 분이 가족을 만든 결과가 나다. 나같은 사람들이 모여서 대한민국 인구 5000만을 만들었다. 그래서 다시 묻는다. 인구 위기는 어디에서 오는가? 가족 위기에서 온다. 지금 초저출산ㆍ초저출생 현상은 인구 위기 이전에 가족 위기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런데 국가는 7080 산아제한시대 인구규모를 관리하던 인구정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당시에도 불법이었던 낙태 시술을 보건소에서 해주는 MR사업이라는 것을 하면서 산아제한을 성공적으로 했던 추억에 머무르고 있다. 그러다 보니 이제는 출산장려금 많이 주고 집 장만 하는 데 대출 많이 해줄 테니, 즉 이렇게 자원을 투입할 테니 국민 여러분은 (애국자가 되어서) 아이를 낳으라”는 발전주의체제적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사회적으로도 “아이 낳고 애국하자”는 구호가 넘쳐나는 상황이다. 애국주의, 국가주의에 기초한 인구정책으로써 아이울음소리를 높일 수 있을까?

애국주의 시대는 지났다. 국민은 국가의 다양한 정책을 지켜보고 경험하면서 개인적 이해관계를 중심으로 개별적 결정을 한다. 그 과정을 통해 아이가 나온다. 게다가 이주배경인구의 대규모 유입을 전제로 한다면 앞으로는 ‘국민’ 개념에서도 벗어나 한국사회 구성원으로서 시민을 전제하는 정치적ㆍ정책적 변화까지도 필요하다. 궁극적으로 인구 규모를 관리하는 인구정책으로 귀결되더라도, 정책을 전달하는 과정은 가족정책이라는 주요한 통로를 지나가야 한다. 

지금까지 인구정책은 양적 규모 관리에 초점을 맞춘 대응을 해왔다. 그 결과 가족 관련 가치관 변화와 관련 욕구에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했다. 이제는 가족의 다양성, 삶의 다양성에 대응하는 정책적 변화가 필요한 시기가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6년 이후 저출산 대응의 흐름은 ‘출산 장려를 위한 자원 투입에 따른 산출로서 출산율 증가’를 전제로 하는 전통적 인구정책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예산 투입 방향만 7080년대 산아제한에서 출산장려로 바뀌었을 뿐이다. 저출산 예산 투입의 결과로서 도달해야 할 출산율 목표를 정하고 국민 반응을 기대하는 방식이었다. 

다양화ㆍ개별화된 욕구를 갖기 시작한 한국사회 구성원들은 전통적인 인구정책에 반응하지 않고 있다. 대안으로서 출산주체로서 여성을 전제로 하는 가족정책, 여성 사회참여라는 혁명적 변화에 사회적 교육ㆍ돌봄체계 구축과 민주적 가족관계를 만들어내는 새로운 가족정책이 필요하다. 사회적 약자 집단만 대상으로 하는 여성가족부 중심 협소한 가족정책에서, 범정부 차원의 가족정책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 가족이 생활의 중심에 자리매김하지 않고 있는 사회에서 저출산⋅저출생 현상의 반등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은 인구정책이 아니라 가족정책이다. 인구 위기가 아니라 가족 위기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다. 저출생위기대응부가 인구위기 대응에 앞서 가족 위기에 어떻게 대응하는 명칭과 조직 구조를 가져야 할지에 대한 논의를 시작할 때이다. 인구 위기 앞에 있는 가족의 위기와 변화에 눈을 돌려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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