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출신 트로트가수 로미나

“한국 음식도 맛있고 한국 사람들도 정겹고 한국 날씨도 마음에 들어요.” 독일 출신 트로트 가수 로미나는 한국생활 14년차로 한국의 모든 것이 마음에 들어 독일로 떠나지 못하고 있다.
“한국 음식도 맛있고 한국 사람들도 정겹고 한국 날씨도 마음에 들어요.” 독일 출신 트로트 가수 로미나는 한국생활 14년차로 한국의 모든 것이 마음에 들어 독일로 떠나지 못하고 있다.

방송활동하며 일산 12년 거주  
전국노래자랑 고양편으로 데뷔
‘동백아가씨’ 불러 이미자 감응
드라마·예능프로에도 출연  

 

[고양신문] 파란 눈에 금발의 젊은 독일인이 이난영의 ‘목포의 눈물’이나 이미자의 ‘동백 아가씨’를 부른다. 눈을 감고 들으면 완숙한 기량의 한국 트로트 가수라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의 출중한 노래실력이다. 단순히 노래뿐 아니다. 닭갈비와 막걸리, 삼겹살과 생선회를 즐기고 한복의 아름다움을 누구보다 칭송하며 한국의 사극을 챙겨본다. 

독일 함부르크에서 온 ‘파란눈의 트로트가수’ 로미나 알렉산드라 폴리노스(36세) 이야기다. 본인이 거주하는 일산 웨스턴돔 인근의 한 카페에서 10일 만난 그는 외모를 제외하고는 영락없는 한국인이자 일산주민이었다. 

로미나는 애초 중국 베이징에서 2년 간 어학연수를 하고 귀국해 함부르크대에서 동양학을 전공하려고 했다. 그런데 2009년 중국에서 사귄 한국인 친구 영향으로 한국외대 교환학생을 신청했는데, 교환학생으로 있으면서 “한국의 모든 것이 마음에 들어서” 귀국하지 않고 줄곧 거주하게 됐다. 그리고 2012년경 한국에서 가장 친한 친구의 권유로 일산으로 이사온 로미나는 “호수공원이 너무 좋아서 일산을 떠나기 싫다”고 한다. 

“한국 음식도 맛있고 한국 사람들도 정겹고 한국 날씨도 마음에 들어요. 저는 날씨에 따라 기분이 많이 달라지는데 고향인 함부르크에서는 비오는 날이 잦아서 우울한 기분일 때가 많았어요. 그런데 한국에서는 햇볕도 많은 데다 사람들도 자주 만나게 되면서 성격이 좀 바뀐 거 같아요.” 

한국생활 14년차인 로미나는 대부분을 일산에서 보냈다. 트로트 가수로서의 데뷔무대 역시 일산이었다. 2012년 KBS ‘전국노래자랑’의 무대가 일산호수공원에서 꾸며졌는데 그 때 로미나는 ‘립스틱 짙게 바르고’를 불러 장려상을 받았다. 

이듬해인 2013년 가을에는 직접 기타 치며 ‘동백 아가씨’를 부른 영상을 유튜브에 올리면서 본격적으로 자신을 알렸다. ‘동백 아가씨를’ 부르는 유튜브 영상을 우연히 접한 이미자 선생이 그를 직접 수제자로 받아들여 콘서트에 초대 가수로 여러 차례 무대에 오르기도 했다. 올해 5월 일산 아람누리에서 열린 이미자의 데뷔 65주년 특별 감사콘서트 무대에도 섰다. ‘이미자의 수제자’라는 호칭은 말뿐이 아니었다. 로미나는 이미자의 콘서트에는 자주 섰는데 그 횟수가 무려 50여 차례다.

무슨 이유로 한국에서도 호불호가 분명 갈리는 트로트에 취하게 됐을까. 2009년 한국 친구네 집에 놀러 갔다가 친구 아버지가 틀어놓은 ‘동백 아가씨’를 우연히 듣고 트로트의 매력에 빠졌다는 이야기가 인터넷에 떠도는데 사실을 확인하니 “그렇다”고 했다. 

“제가 원래 빠른 음악보다 감성적이고 느린 음악을 좋아했어요. 독일에 있을 때도 요즘 음악보다는 올드팝을 좋아했어요. 옛 샹송이나 에디트 피아프도 좋아했구요. 한국의 트로트를 들으면 슬픈 가사도 한 번 생각할 수 있고 한국의 아픈 역사를 공부할 수 있는 것 같아요.”

로미나는 ‘불후의 명곡’, ‘가요 무대’ 같은 음악프로에 출연하기고 하고 KBS ‘6시 내고향’에 고정출연하며 대중적 인지도를 높여갔다. 또한  KBS 일일 드라마 ‘가족을 지켜라’에 조연 출연과 ‘미녀들의 수다’, ‘이웃집 찰스’, ‘대한외국인’ 등 각종 예능에도 출연했다. 하지만 사람들이 본인을 가장 많이 알아보게 한 계기는 의외로 한 드라마의 단역 출연이었다. tvN ‘눈물의 여왕’에서 독일 병원의 간호사 역할로 잠깐 등장했는데 이것이 사람들의 눈길을 끈 것이다. 

“드라마 시청률이 높아서 그런지 사람들이 딱 알아보시더라구요. 독일에 있을 때 아역으로 출연하기도 했고 연기에 흥미를 느끼지만 저의 본업은 어디까지나 가수예요.” 

하지만 파란눈의 독일인이 간드러진 창법으로 ‘흑산도 아가씨’를 불렀을 때 사람들이 느꼈을 경이로움이 시간이 지나면서 이제는 조금씩 덜해지고 있다. ‘1호 외국인 트로트 가수’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가수활동을 시작했지만 부침이 없을 수 없는 연예계에서 살아남기가 쉽지 않았다. 언제부터인가 섭외 순위에서 조금씩 밀려나기 시작한 것이다. 불현 듯 독일로 돌아갈까라는 생각이 나기도 했다. 

“제가 2021년 독도홍보대사가 됐거든요. ‘독도는 한국땅’이라는 노래를 독일어로 불러요. 차라리 독일 가서 독도가 한국땅이라는 걸 알리면서 살까도 생각하는데, 그럴 것 같지는 않습니다. 한국의 음식, 한국의 트로트, 한국의 친구, 그리고 호수공원과 헤어지기 싫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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