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철 특별전 <눈 감고 산을 보니 구름이더라>
다양한 실험으로 독보적 예술세계
“내가 돌이라면, 북한산은 가족·고향”
7월 7일까지, 정발산동 갤러리 뜰
[고양신문] 일산동구 정발산동에 위치한 ‘갤러리 뜰(대표 김유선)’이 오픈 2주년을 맞아 특별전을 진행 중이다. <눈 감고 산을 보니 구름이더라>라는 타이틀을 내건 장철 화백의 초대전이다. 지난 21일 열린 오프닝 행사에서는 ‘권오길손국수’의 권오길 대표 주선으로 선정화 가야금병창이 축하연주를 펼쳐 참가자들의 박수갈채를 받았다.
장철 작가는 ‘먹의 화가, 수묵진경의 화가, 북한산을 그리는 화가’로 불린다. 산과 자연을 소재로 한 50여 점의 작품은 다채로운 기법과 재료로 구성되어 있다. 맨 처음 마주하게 되는 웅장한 북한산 그림은 눈이 덮인 듯, 구름에 잠긴 듯 신비롭다. 관람자들의 자유로운 감상을 위해 작품 제목은 별도로 붙이지 않았다고 한다.
작가는 자신만의 재료와 도구를 찾기 위해 치열하게 공부했다. 그의 작품은 동양화와 서양화 기법을 응용한 독창적인 결과물이라 할 만하다. 먹과 붓, 한지와 나이프 등의 도구를 이용해 자신이 직접 제작한 캔버스에 먹, 소금, 녹말가루 등을 혼합해 작품을 완성했다. 작가의 설명을 들어보자.
“종이는 시간이 흐르면 산화하고 좀이 슬어요. 그걸 방지할 수 있는 방법을 고심했지요. 좀이나 해충들이 가장 싫어하는 게 소금인데, 장기간 보존을 위해 녹말가루에 소금과 횟가루를 혼합했습니다.”
일반적인 먹은 송진이나 식물 기름을 연소시켜 생긴 까만 그을음을 아교로 굳혀 만들어진다. 아교는 동물성 영양분이라 좀이 슬기 쉽다. 부식을 방지하고자 작가는 소금과 분채가루를 섞었다. 그의 그림이 오래도록 변하지 않는 비결이다. 작품 속 흰색은 조개 가루에 녹말풀을 섞어 만든 물감을 칠한 것이다.
작가가 한동안 즐겨 그렸던 작품은 ‘돌 시리즈’다. 70년 가까이 살면서 한 곳에 머물지 못하고 늘 방황했던 자신의 동적 이미지를 정주하는 돌의 이미지로 표현했다. 그가 북한산을 자주 그리는 이유는 뭘까.
“반평생을 북한산 근처에서 살았어요. 어린 시절 세검정 쪽으로 멱 감으러 갈 때도 북한산 고개를 넘어가곤 했지요. 눈을 감고 있으면 작은 돌부리가 있는 곳까지 다 기억나요. 제 자신이 돌이라면, 산은 가족 혹은 고향을 의미합니다.”
세로줄이 그어진 추상작품들은 제작 과정이 까다롭다. 여러 번 접은 종이에 그림을 그린 후, 물에 담갔다가 펼친다. 그것들을 여러 장 배접하여 완성한다. 추상작품은 정형화되지 않아서, 애초의 의도와 달라진 모습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제 행위 자체가 예술로 승화된 것일까요? 수학 공식처럼 계산이 많이 들어간 것은 예술과는 거리가 있다고 봐요.”
전시에는 해바라기 씨앗을 독특하게 표현한 작품들이 눈에 띈다. 그중 하나는, 커다란 그릇에 한자로 해바라기 규(葵)자를 써 넣고 해바라기 씨앗을 그려 넣었다.
“풍요의 상징인 해바라기는 꽃보다 씨앗이 훨씬 더 가치가 있다고 봐요. 달항아리에 씨앗을 심으면 온 마을 전체를 해바라기로 덮을 수 있을 거예요. 씨앗 하나만 있으면 일산 전체가 행복해질 수 있을 테고요.”
눈매가 또렷한 부엉이 그림도 눈길을 끈다. 일필휘지한 먹그림 위에 크레파스로 눈동자를 그려 넣었다. 아이들의 전용물이라고 생각하는 크레파스도 그에게는 좋은 표현 도구인 셈이다.
장 작가는 고가의 종이에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깬다. 신문지나 포장박스로 만든 재활용지에 그리기도 한다. 이런 종이는 질은 나쁘지만, 먹을 빨리 흡수한다는 장점이 있다. 때로는 자연 친화적인 광목을 캔버스로 사용하기도 한다.
“미켈란젤로나 라파엘로 등 서양의 위대한 작가들은 모든 재료를 직접 만들었어요. 요즘은 대부분 구입하는데요. 작가의 역량뿐만 아니라 개성도 줄어든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작가들에게 뭐든지 만들어 써라, 만들 수 없는 것까지 다 만들어 쓰자고 말하고 싶어요.”
그는 철물점에서 구입한 빗자루로 붓을 만든다. 몇백만 원짜리 값비싼 붓보다 자신이 만든 붓이 더 좋다. 제작된 붓은 모든 사람을 위한 붓이지, 나만을 위한 붓은 아니라고 한다. 그만의 독특한 작품이 탄생한 배경이다.
그동안 작가는 ‘나’, ‘잔상’, ‘가슴산’ 등의 작품으로 다수의 개인전과 그룹전에 참여했다. 앞으로는 조형 작품도 시도할 계획이다. 고양시에 거주하던 그는 양평군 용문으로 이주했고, 부인 송명희씨가 운영하는 한옥 갤러리카페 ‘아틀리에 용문’의 가구도 그가 직접 만들었다.
전시를 기획한 갤러리 뜰의 이상현 공동대표는 “오픈한 지 이제 2년 된 아기 같은 갤러리이지만, 그동안 마흔 세 번의 전시를 꾸준히 열었다”면서 “작은 뜰이 장철 화백의 작품으로 큰 뜰이 된 것 같아 가슴이 벅차다. 여운이 남는 작품들을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 싶다”면서 초대인사를 전했다. 전시는 7월 7일까지 계속된다.
갤러리 뜰
주소 고양시 일산동구 산두로 255-18(월요일 휴관)
문의 070-4833-004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