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비슷한 거 하는 M세대의 글쓰기>

[고양신문] 얼마 전에 생일을 맞았습니다. 마지막 삼십 대입니다. 어쩐지 아련해져서 잠시 저의 지난 십 년을 돌아보았습니다. 서른하나에 방송작가가 됐고, 서른여덟에 글쓰기 강의를 시작했고, 그리고 서른아홉, 지금은 소설가 지망생입니다.

한 줄로 요약하고 보니 지난 10년간의 제 글쓰기가 마치 소설에 다다르기 위한 지난한 여정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소설은 제게 쉽게 문을 열어주지 않았습니다. 이미 여러 번 자랑했으나 한 번만 더 자랑하자면, 저는 제 소설이 동아 신춘문예 최종심에 올랐다는 소식으로 2024년을 열었습니다. 잔뜩 으쓱해져 봄에는 문예지 신인문학상을 타보겠다며 분주하게 원고를 손봤으나 똑 떨어졌습니다. 심지어 이번에는 최종심에도 오르지 않았습니다. 

속상함은 이내 분노로 바뀌어, 니들이 뭘 아냐, 은희경, 구효서 작가님도 잘 썼다는데, 니들이 그분들보다 소설을 더 잘 아냐, 식의 거친 생각을 마구 쏟아붓고는 다시 모니터 앞에 앉았습니다. 다른 공모전 마감이 코앞이라 오래 분노할 시간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번에 도전하는 장르는 스토리입니다. 스토리는 소설이긴 하나 정통 문학보다는 덜 고매하고, 웹소설보다는 더 진지한 글입니다. 즉, 유려한 문장 표현보다는 사건을 설득력 있게 쭉 밀고 나가는 힘이 중요한, 말 그대로 ‘이야기’가 중심인 장르입니다. 그리하여 저는 한 달 하고 열흘 동안 하고 싶은 이야기를 원고지 800매에 꽉꽉 채워 마감을 겨우 한 시간 남겨놓은 시점에서 겨우 ‘보내기’ 버튼을 누를 수 있었습니다. 

될런가? 그것은 저도 알 수 없습니다. 여차하면 또 시간만 날린 꼴이 돼 버리겠지만 이쯤 되면 그런 건 생각하지 않게 됩니다. 이쯤이라 하면 서른아홉에 소설가가 되겠다고 생계에 눈을 감은 상황을 말합니다. 생계가 문제이긴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언제나 문제일 것이기에 잠시 제쳐두고 지금은 너와의 문제를 해결하고야 말겠어, 하는 결의로 유감없이 글을 썼습니다. 그런데 마흔을 목전에 두고 이런 결의를 품기 위해서는 한 가지 전제 조건이 필요합니다. 바로 집입니다.

[작가의 집 구경하기] 다양한 장르의 '글'이 생산되는 테이블. 열정과 희열과 고통이 뒤섞이는 현장이다.  
[작가의 집 구경하기] 다양한 장르의 '글'이 생산되는 테이블. 열정과 희열과 고통이 뒤섞이는 현장이다.  

제가 이 나이에 생계를 모른 척하고 온종일 글쓰기에 매달릴 수 있는 이유 역시 집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온전한 제집은 아닙니다. 집값의 60%를 은행의 손을 빌렸으므로 저는 사실상 제집의 바지사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재벌 총수들은 10%도 안 되는 지분으로도 자자손손 대표 노릇을 한다는 사실을 상기하면, 저는 꽤 신뢰할 만한 바지사장입니다.

이렇게 바지사장이 되면서까지 집을 마련한 이유는 딱 한 가지입니다. 주거가 흔들리지 않는 삶, 시몬스 침대처럼 안정된 삶에서 쓰는 일에 집중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집을 사자마자 건보료는 3배 가까이 뛰고, 대출은 일흔 살까지 갚아야 하고, 이런저런 부대비용에 숨만 쉬어도 월 백은 나가는 날들이 시작되었으나, 여전히 저는 이 집을 30대의 제게 준 최고의 생일선물이라고 생각합니다(실제로 서른일곱 생일날 이사를 왔으므로 이 집은 문자 그대로 제 생일선물입니다). 

[작가의 집 구경하기] 뚝딱뚝딱... 어딘가를 고칠수도 있다. '내 집'이니까. 
[작가의 집 구경하기] 뚝딱뚝딱... 어딘가를 고칠수도 있다. '내 집'이니까. 

왜냐하면 이젠 누구도 저를 집에서 나가라고 할 수 없게 됐기 때문입니다. 해마다 집주인이 월세를 올린다고 하진 않을까 전전긍긍하다가 결국 이사 갈 집을 구하고 이사를 하고 낯선 환경에 적응하느라 몇 달을 허비할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마흔을 목전에 둔 어느 날, 소설을 한번 써볼까? 하는, 말도 안 되는 시도를 할 수 있게 된 겁니다. 

다만 이제부터 글쓰기 과정에서 벌어지는 모든 실패는 오롯이 제 재능과 끈기를 탓해야 합니다. 그것은 굉장히 숨 막히는 일이나 동시에 제가 바라던 삶의 조건이기도 합니다. 괴롭고 즐거운 서른아홉의 쓰는 날들이 펼쳐질 것 같습니다. 

[작가의 집 구경하기] 커피와 차가 글쓰기 영혼에 시동을 걸어주길.
[작가의 집 구경하기] 커피와 차가 글쓰기 영혼에 시동을 걸어주길.
[작가의 집 구경하기]  이곳에서만큼은 몸도 마음도 릴렉스~.
[작가의 집 구경하기]  이곳에서만큼은 몸도 마음도 릴렉스~.
[작가의 집 구경하기] 작가와 동거하는 베란다의 식물들. 멀리 고봉산도 보인다. 
[작가의 집 구경하기] 작가와 동거하는 베란다의 식물들. 멀리 고봉산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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