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신문] 윤석열 정부 3년차를 맞아 대한민국의 안보 상황이 악화되고 있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 능력은 지난 17일 스톡홀름 국제평화연구소(SIPRI)가 연례보고서에서 밝힌대로 현재 50기의 핵탄두를 조립했고 90개 핵탄두를 만들 정도의 핵분열 물질을 보유하고 있을 정도로 발전했다. 또한 지난 20일 북·러 간 체결된 조약도 “어느 한쪽이 무력침공을 받아 전쟁 상태에 처하면 유엔헌장 제51조와 양국 법에 준하여 지체없이 군사적 원조를 제공한다”는 군사동맹으로서, 한반도를 둘러싼 지정학적 리스크가 급격히 높아졌다. 여기에 한밤중 북한 오물풍선이 남하하고 있다는 핸드폰 문자경보가 수시로 울리는 게 국민들의 일상이 되었다. 힘으로 안보를 굳건히 했다는 윤 정부 하에서 왜 이렇게 된 걸까?  

최악의 상황 만드는 ‘안보 딜레마’

‘안보 딜레마’ 때문이다. 안보 딜레마(security dilemma)란 1950년 헤르츠(John Herz)가 만든 개념으로 국제관계에서 어느 한 국가의 안보 증대가 다른 국가의 안보 불안을 야기하는 경우를 일컫는다. 헤르츠에 의하면 무정부 상태의 국제체제 하에서 안보를 강화하려는 국가는 상대국의 권력 영향에서 벗어나기 위해 더 많은 힘을 추구하는데, 이것이 상대국의 안보 불안을 야기해 최악의 상황을 대비하도록 강요함으로써 거꾸로 자신의 안보가 취약해진다는 것이다. 안보 딜레마는 공격용 무기와 방어용 무기의 구별이 어렵고, 방어보다 공격이 더 유리한 상황에서 크게 나타난다. 

취임 2주년 연설에서 '3축 체계 구축'을 강조한 윤석열 대통령.
취임 2주년 연설에서 '3축 체계 구축'을 강조한 윤석열 대통령.

안보 딜레마는 한반도의 안보 상황에 딱 들어맞는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5월 9일 국민보고 연설문에서 “2023년 4월 워싱턴 선언으로 한미동맹을 핵 기반의 안보동맹으로 업그레이드하고, 한미연합연습을 다시 시작하고 한국형 3축 체계를 구축해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을 억제하는 방어능력을 획기적으로 강화했다”고 자랑했다. 여기서 ‘한국형 3축 체계’란 공격(kill chain)-방어(KAMD)-응징보복(KMPR)으로 구성되는데, 1단계 킬체인은 북한의 핵미사일 관련 지휘·발사·지원체계·이동식 발사대 등 핵심 표적을 탐지해 사용 징후가 있을 경우 발사 전에 제거하는 공격체계이다. 상대방이 공격하기 전 미리 탐지해 선제공격으로 무력화한다는 군사전술로서, 오인(誤認)과 실수의 가능성 때문에 전쟁을 야기할 수 있어 매우 위험한 방식이다. 북한에게는 심각한 안보 위협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여기에 ‘참수작전’까지 가세하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참수작전이란 “적의 수뇌부를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무력화”하는 작전으로서 김정은 위원장을 게거하겠다는 것이다. 신원식 국방장관은 작년 12월 종편에 출연해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시험 발사하면 참수작전과 미국의 전략자산 추가 전개를 고려하겠다고 발언했다. 북한을 자극해 반(反)작용을 유발하려고 안달이 나지 않은 이상 하기 어려운 발언이다.

한반도의 긴장을 고조시키는 강경 발언을 이어가고 있는 신원식 국방장관.  
한반도의 긴장을 고조시키는 강경 발언을 이어가고 있는 신원식 국방장관.  

연합군사훈련으로 반발 초래

한·미가 하고 있는 연합군사훈련도 북한에게는 심각한 안보 위협이다. 한미 연합훈련은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군사훈련으로서 매년 3월과 8월 정례적으로 시행하고 있다. 올해 3월 실시했던 ‘자유의 방패’(프리덤실드) 훈련은 “북핵 위협 무력화에 중점을 두고 실전적으로 실시”한다며, 지상·해상·공중에서의 야외 기동훈련을 대폭 확대하였다. 애초 이 훈련은 병력과 장비가 움직이지 않고,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이용해 작전계획 등을 익히고 상황 조치하는 지휘소연습(CPX)이었다. 작년 12월 한·미 간 핵협의그룹(NCG) 회의에서 합의됐던 핵작전 연습은 올해 8월 ‘을지자유의 방패’(UFS) 훈련에서 북한의 핵사용 시나리오를 포함시켜 실시할 예정이라고 한다. 

북한은 한미 연합훈련 기간 전 병력을 동원해 대응 훈련을 하는데, 모내기철과 겹쳐 농사를 망친다며 신경질적 반응을 보인다. 특히 연합훈련 기간에 전개되는 미국의 핵폭격기·핵잠수함·항공모함 등 전략자산은 북한이 가장 예민하게 반응하는 안보위협 요소이다.  

북한이 느끼는 안보 위협은 남쪽에서 생각하는 것 이상이다. 북한 입장에서는 경제력이 59.7배(2022년)에 달하고 국방비(2022년 54.6조 원)를 자신의 국민총소득(NI, 2022년 36.7조 원)보다 더 많이 쓰는 남한이 존재 그 자체로 위협이다. 그런데 남한의 대통령과 국방장관이 합세해 수시로 북한을 위협하는 발언을 하고 있다. 북한의 반작용이 나오지 않는 게 이상하다. 북한의 핵무기 개발도 따지고 보면 남한과 재래식 군비경쟁을 경제적으로 도저히 감당할 수 없었기에 추진된 것 아닌가? 
 
동맹 체결도 안보위협 높여

안보 딜레마는 동맹을 맺을 때도 발생한다. 동맹이란 공동의 적을 겨냥해 군사적으로 협력하겠다는 약속인데, 상대국 입장에서는 미래 침략의 선도적 요인으로 여길 수밖에 없다. 북·러 간 동맹조약 체결이 한국에게 안보 위협이 되는 이유이다. 윤석열 정부 들어 추진된 한·일 간 군사협력도 북한과 중국·러시아에겐 안보위협 요소이다. 민주화 이후 역대 정부들이 미국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일본과 군사협력을 하지 않았던 것은 식민지 역사문제 외에도 중·러를 자극해 한반도를 한·미·일 대 북·중·러 진영 대결장으로 만들지 않으려 했기 때문이었다.

한·미·일 3국 군사훈련이 이달 말에 ‘프리덤 에지’라는 이름으로 동(東)중국해에서 실시될 예정이다. 이번 훈련은 작년 8월 캠프 데이비드 정상회의를 통해 ‘3각 동맹’으로 거듭난 한·마·일 3국이 사상 처음으로 진행하는 훈련이다. 미국의 핵추진 항공모함 시어도어 루스벨트호까지 참가하는 이 훈련에 대해 중국은 크게 반발할 것이다. 중국 입장에서는 한·미·일이 중국을 겨냥해 대만 유사사태 발생 시 공동 대응하기 위해 벌이는 군사훈련으로 간주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해상에서 진행된 한-미-일 3국 군사훈련. 
해상에서 진행된 한-미-일 3국 군사훈련. 

안보 딜레마를 헤쳐나가는 길

현대전에서는 지지 않는 게 이기는 것이 아니다. 전쟁을 예방하는 게 이기는 길이다. 핵무기를 비롯한 대량살상무기가 즐비해 전쟁이 발발할 경우 민족 전체의 공멸로 이어질 한반도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전쟁이 아니라도 군사적 긴장이 높아지면 한국이 입는 피해가 북한에 비해 훨씬 크다. 한국은 개방돼있고 경제적 대외의존도가 높아 안보상황이 불안해지면 경제가 크게 휘청거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남북이 적대하며 대치한 채 미·중·러·일 등 세계 4대 군사강국으로 둘러싸인 한국의 정치 지도자들은 ‘안보 딜레마’를 생각하며 처신해야 한다.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는 안보를 강화하려는 자신의 행동이 어떻게 상대를 불안하게 만드는지 역지사지(易地思之)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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