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으로 본 세상
『미안해』(김병하. 한울림어린이)

박미숙 『그림책은 힘이 세다』 저자 
박미숙 『그림책은 힘이 세다』 저자 

[고양신문] 사람들이 죽었다. 23명. 나중에 밝혀진 사인은 모두 질식사. 리튬을 다루는 공장이었지만, 리튬 폭발과 화재에 대비한 소방교육은 이루어진 적이 없었고, 리튬전지 화재 등을 진화할 소화 장비가 없어 더 큰 인명 피해가 났다고 한다. 23명 가운데 19명은 외국인 노동자. 대부분 자기 식구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한국으로 와서 일하는 사람들이었다. 누군가의 엄마이자 아빠고, 아들이자 딸인 목숨들이다. 

우리나라 산업재해 사망률은 다른 나라에 비해 월등히 높다. 근로자 만 명 당 사망자를 나타내는 ‘사고 사망 만인율’을 살펴보면, 2022년 기준 한국은 0.4로 영국의 14배, 독일과 일본의 3.5배에 이른다(BBC 코리아 2024년 6월 25일자 인용). 사고를 막거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기회가 많다는 것을 의미하는 수치이기도 하다.

뻔한 이야기지만, 이제는 정말 작업현장 문화가 달라져야 한다. 일하는 사람의 안전보다 빠르게 공정을 마치는 것이 우선인 분위기가 바뀌지 않는 한 안타까운 죽음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이번 사고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제대로 된 안전교육이 이루어지고 이를 철저히 관리 감독하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나라 산업 현장 근로자가 대부분 외국인 노동자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에 맞는 안전 대책과 교육이 이루어지는 것도 중요하다. 외국인 노동자 지원센터에서 이루어졌던 언어교육, 안전교육 등에 대한 예산이 올해 들어 전액 삭감되었다는 점도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대목이다.

화가 김씨 아저씨는 집 마당 한편에 텃밭을 만든다. 상추, 배추, 열무, 쑥갓, 옥수수, 강낭콩 씨앗을 뿌리고 고추, 가지, 오이, 토마토, 수세미 모종을 심는다. 물 주고 새싹 나는 거 보고, 벌레 잡아주고 자라는 거 보느라 하루에도 몇 번씩 텃밭에 간다. 김씨 아저씨 눈에는 온통 텃밭 채소만 보인다.

그렇게 텃밭에서 돌아오던 어느 날, 문득 보인다. 이미 여러 번 밟힌 흔적이 있는 민들레 하나. 아저씨는 잠을 이루지 못한다. 그리고 그 민들레 주변에 하얀 조약돌로 울타리를 만든다. 가두려는 것이 아니라 다시는 밟지 않기 위해. 김씨 아저씨는 자신의 텃밭 채소만을 향해 달려가던 마음이 부끄러웠을 것이다. 텃밭만 바라보던 자신의 눈빛에 고뇌했을 것이다. 짓밟혀 쓰러진 민들레를 바라보며 무언가를 사랑한다는 마음 이면에 다른 것의 상처와 죽음에 무관심했다는 걸 알게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는 제일 먼저 가슴을 밀어 올리며 떠오른 감정은 ‘미안함’. 아저씨는 텃밭을 돌보던 눈길을 돌려 하얀 조약돌을 모은다.

혹시 우리가 ‘죽음에 너무 익숙해진 건 아닌가?’ 워낙 큰 사건 사고가 많아서 이젠 웬만한 사고 소식에는 둔감해지고 무관심해진 것은 아닐까? ‘사람이 먼저’라는 말은 이런 사고 앞에서는 너무나 공허한 메아리일 뿐이다. 경제 논리에 매몰되어 빠르게 많이 생산해 내야 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건강하고 안전한 일터를 만드는 것이 먼저라는 사회적 분위기가 필요하다. 이런 사고 앞에서 ‘미안해’가 먼저여야 하는 이유이다. 

하얀 조약돌을 먼저 모아야 한다. 외국인 노동자도 낯선 환경에서 그들의 언어와 방식으로 안전하게 일을 할 수 있는 따뜻한 안전망도 포함해서 말이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사회적 사고에 대한 익숙함을 밀어내고 ‘미안함’을 떠올려야 한다. 사회적 책임은 그런 것이다. 책임질 사람 따로 있고 책임을 묻는 사람이 따로 있다는 논리만 앞세우는 사회에서는 ‘미안함’은 사회적일 수 없다. 나는 미안하다. 자꾸 잊고 사는 것이. 자꾸 둔감해지는 것이. 

민들레가 눈에 밟혀 잠을 이루지 못했던 화가 김씨 아저씨를 떠올린다. 이 그림책의 제목은 『미안해』(김병하 지음. 한울림어린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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