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35주년 기획>
초고령화 고양, 노인돌봄 대안 찾자②
살림의료사회적협동조합, 12년의 벅찬 실천
의료사협·데이케어센터·마을공동체 협력까지
지역통합돌봄사업, 여성주의·호혜적 돌봄원칙
[고양신문] “만성질환으로 주기적으로 약 처방을 받아야 했어요. 의사가 환자인 제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경험이 많아서 힘들었어요. 살림은 제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들어주기 때문에 특별한 설명을 추가할 필요없이 적절한 진료와 처방이 가능했어요. 그래서 멀어도, 교통비가 들어도 살림의원을 찾고, 모처럼 나들이 하는 기분으로 은평구 친구들도 만나는 즐거움도 누리고 있어요.”
살림데이케어센터 화장실에 붙어있는 메모 ‘내가 살림 조합원이 된 이유’이다. 2012년 2월 348명의 조합원이 모여 가정의학과 ‘살림의원’과 살림의료사회적협동조합을 만들었다. 2016년 ‘살림치과’가 만들어지고, 2021년 9월 장기요양보험 제도에 따른 ‘방문요양’과 ‘주간보호센터’를 운영하는 ‘살림데이케어센터’가 문을 열었다. 2022년부터는 방문진료를 전담하는 ‘살림재택의료센터’를 설립해 돌봄 기능을 더욱 확대할 수 있었다. 치매 케어 노인들을 위한 서로돌봄카페도 조합원들의 힘으로 운영됐다. 여성주의, 소외된 이들을 우선하는 의료사회적협동조합과 지역협동조합, 활발한 마을네트워크 구축까지. 마을에서 진보적인 가치를 구현하며 지역의 확장까지 이뤄낸 은평구 살림의사협은 전국적으로 부러움을 사고 있다.
“2012년 여성주의 의료사협을 고민하는 이들과 지역, 마을을 고민하는 이들이 만나서 출발을 했죠. 조합원이 약 4500명으로 늘어나고, 확장을 많이 했어요. 지역에 믿을 만한 의료기관이 없다는 대중적 문제의식과 준비하는 이들의 촘촘한 준비, 치열한 논의가 있었습니다.”
2012년 창립 멤버인 살림데이케어센터 봉미숙 센터장의 설명이다. 살림의사협이 추구하는 여성주의는 성별, 인종, 성적 지향 등으로 인한 차별과 사회적 불평등이 없는 사회를 만들어 모두 함께 건강해지자는 목표를 갖고 있다. 어쩌면 당연한 건강할 권리를 개인 노력만으로 누릴 수 없다면 이웃과 함께 건강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보자는 것이다.
‘약자원칙, 적정진료, 호혜적 돌봄’이라는 가치를 지역사회에서 의료협동조합과 돌봄 실천을 통해 구현해내고 있는 살림의사협. 은평지역의 다양한 단체, 회원들이 조합원으로 참여하고 있기에 가능했다. 사실상 시민사회단체 연대회의와 마을공동체 역할을 하고 있다. 조합원 산하에 다양한 위원회가 있고, 동모임, 지역모임이 촘촘하게 엮어지고, 주민들은 조합원, 소모임 회원으로 참여한다. 밤샘 토론이 이사회뿐아니라 대의원회의, 총회에서도 당연하다. 1명만 문제제기를 해도 일사분란하게 투표소가 차려지고 투표가 진행된다.
다양한 아이디어는 바로바로 실험하고, 실천한다. 고관절 환자들이 의료와 돌봄을 동시에 누릴 수 있는 케어비엔비 사업은 LH와 같이 시도했고, 욕창 환자들에게는 제도적인 방문 횟수가 부족한 방문간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마을간호스테이션’, 마을 주치의 제도 시범 등이 시도됐다. 내 이웃이 치매에 걸렸을 때 ‘나는 어떤 태도와 의사소통을 해야할까’를 고민하는 프로그램, 죽음을 배우고 대비하는 사전연명교육. ‘함께 하는 건강실천단’은 건강한 마을공동체를 위해 조합원들이 66일 동안 서로의 건강을 격려하는 프로그램이었다. 같이 불광천을 달리거나 108배도 함께 했다. 30분 책읽기부터 40개 정도의 무궁무진한 아이디어의 모임들이 있다.
이사회는 보건복지부 사업 이전부터 지역통합돌봄을 고민하며 2019년과 2023년 두 차례 일본 연수를 다녀오고, 다양한 모델 적용을 고민했다. 고령사회를 먼저 맞이한 일본의 사례를 공부하며 유연한 돌봄사업, 요양보호 시스템을 고민하고 있다.
“믿을 수 있는 의료기관이 있으면 좋겠다.”
“병들고 장애가 있더라도 끝까지 존엄을 잃지 않고 살고 싶다.”
“끝까지 나답게 살다가 아는 얼굴들 사이에서 죽고 싶다.”
당연한 바람이지만 쉽지않은 소망을 마을에서 실천하고 있는 살림의사협. “안심하고 나이 드는 마을을 만들기 위해 의료와 돌봄의 통합”을 이루려고 노력한다. 올해는 ‘돌봄쌀롱’을 운영하며 노년 돌봄, ‘케어러 돌봄’, 1인 가구 돌봄, 아동 돌봄 등으로 주제를 정해 조합원뿐아니라 지역사회까지 논의를 확장해나가고 있다. 5월에 노인 돌봄을 나누었고, 6월에는 돌봄을 하는 주체들의 돌봄을, 7월에는 1인 가구의 돌봄을 고민했다.
모두가 고민하며 망설일 때 성큼 나아가고, 그 실천을 다시 지역과 이웃을 위해 나누고 있는 은평구 살림의사협. ‘부러우면 지는 것’이 아니라 서둘러 배우고 따라가면 될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