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경호의 사람도서관 (16) 박예소 배우 겸 작가

박예소 배우 겸 작가.
박예소 배우 겸 작가.

[고양신문] 장마가 왔습니다. 무덥고 습한 일상에도 시원한 한줄기의 바람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이 보고 싶은 계절입니다. 요즘에는 일을 더 하고 싶어도 자의반 타의반으로 은퇴를 하거나, 더 이상 아무도 자신을 써주지 않기에 스스로 설 곳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번 사람책 인터뷰는 뮤지컬 배우로 활동하다가 스스로 극본을 쓰고 연출을 하며 자신이 만든 무대와 세상에서 주인공으로 살고자 하는 박예소 배우 이야기를 가져왔습니다.  박예소 배우는 고양시 무대에 도 자주 올랐고 현재 고양시예술공동체 활동을 하고 있다. 

인생 최초의 기억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

초등학교 3학년 때였습니다. 제가 외가 쪽에서 맏이였고 친척동생들이 6명 정도 있었습니다. 제가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을 어디선가 봤었나 봅니다. 설 연휴에 모인 동생들을 데리고 마치 내가 마리아 선생님이 된 것처럼 춤과 노래를 한 명씩 연습시켰습니다.

당시 저희 집은 집안일을 하거나 숙제를 하면 얼마씩 용돈을 받는 집안이었는데, 친척동생들을 데리고 어른들 앞에서 연극을 공연했던 날, 아버지가 저에게 당시 만원이라는 큰 거금을 주셨습니다. 방의 미닫이문을 열고 닫으며 우리는 한 명씩 나와 친척 어른들 앞에서 패션쇼도 하고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었던 기억이 납니다. 저한테는 너무나 소중한 경험이었는데 저만의 무대를 만들어 가족들을 즐겁게 했던 경험이 이제 보니 지금의 직업으로 이어지지 않았나 싶습니다. 용돈을 주실 때 눈물이 그렁그렁 매달린 감동어린 아버지의 표정이 저는 아직도 잊히지 않습니다.

지역에서 살다가 중학교 3학년 때 서울에 올라와 지하철을 처음 탔었는데, 당시 지하철 내의 사람들의 무표정한 얼굴을 보고 많이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왜 그런 마음이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때 사람들의 이 무심한 얼굴에 표정을 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감동어린 표정을 사람들에게도 만들어 주고 싶다는 생각을 막연하게 했던 것 같습니다. 그 때부터 사람들의 마음과 표정을 두드리고 싶다는 생각을 가슴 한편에 품고 지금까지 배우로 또 작가로 살았던 것 같습니다.

학창 시절 때 겪은 인상적인 기억을 말씀해 주세요.

고등학교 2학년 때 우울감이 무척 컸을 때였습니다. 커다란 헤드폰으로 귀를 막고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 지냈던 기억이 납니다. 반 친구들과 무언가 같이할 것도 없었고. 그래도 성적이 나쁘지 않아 실장(지금의 반장)을 맡았는데, 학교축제가 다가오니 제가 나서서 무언가를 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당시 잘생긴 외국 아이돌 엔씨크의 노래와 큐티, 섹시, 팝이란 세 가지 콘셉트에 맞춰 반아이들과 춤을 추었고, 마지막에는 임상아의 뮤지컬로 무대를 마무리했습니다. 그 때 이후로 친구들과 친해지고 학교생활이 밝아졌던 기억이 납니다. 저를 생각해주는 친구들도 많이 생기고 이후로 학교 가는 날이 매번 즐거워졌는데, 스스로 왕따를 자처했던 내가 친구들과 좋은 무대를 만들었던 경험이, 당시 저에게 다른 사람들과 함께 어울릴 수 있는 방법을 알게 해주었습니다.

간단한 개인소개를 부탁드려요.(근황까지)

저를 배우이자 작가로 소개하고 싶은 박예소입니다. 예술이 혁명적일 수 있다는 꿈을 꾸며 활동을 지속하고 있습니다. 극단을 차리며 연출, 안무감독, 배우, 의상, 무대설치 등 정말 많은 일을 했는데, 모두 소중한 일들이지만 가장 많이 집중하고 역시나 좋아했던 일은 배우와 작가입니다. 이제 보니 스스로가 배우와 작가를 하기 위해 다른 역할들도 함께 겸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예술은 저에게 삶의 원동력이 되기도 하고, 대인관계에 대한 문제점을 해결해주며 일상생활에 영향을 주는 칼날 혹은 위로가 됩니다. 관객에게 받는 카타르시스와 치유가 저는 혁명적이라 생각할 때가 많은데, 그렇다보니 가끔 예술이 종교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 때도 많습니다. 

예술로 세상을 선하게 재밌게 바꿔보고 싶습니다. 예술이 공동체를 떠올리게 만드는 힘이 있다 생각합니다. 현재 인간 박예소는 이런 삶을 살고 있지 못하지만, 작품 안에서 배우 박예소, 작가 박예소는 늘 혁명을 꿈꾸고 있습니다. 나이가 마흔 가까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여전히 배우이지만 저는 여전히 배우가 그리고 여전히 작가가 되고 싶습니다. 작품과 배우로 널리 알려져 지금하고 있는 인터뷰가 다시 꼭 회자되는 사람이 되길 꿈꿉니다.

지옥같았던 삶과 과거에 강렬한 스파이크를 날린다는, 판타지 락뮤지컬 '스파이크 어게인', 2021년작
지옥같았던 삶과 과거에 강렬한 스파이크를 날린다는, 판타지 락뮤지컬 '스파이크 어게인', 2021년작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을 소개해주세요.

제가 가장 아끼는 작품이자 동시에 많은 사람이 찾았던 작품은 바로 판타지 락뮤지컬 <스파이크 어게인>입니다. 누구에게나 필요한 위로를 전하는 동시에, 독특한 클리셰로 다가가고 싶어 여자배구를 소재로, 공격과 수비가 치열하게 진행되는 우리의 인생은 경기가 끝나도 계속 된다 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이 뮤지컬에서는 배구코트에서 부상병으로 퇴물 취급을 당하며 악플에 시달리던 혜원이 끝내 지옥 같은 현실을 이기지 못하고 자살을 합니다. 그러다 12년 전 고교배구단 시절의 19살로 돌아와 인생 2회차를 살게 되고, 과거를 다시 살아가게 된 혜원은 코트 뒤에서 망가져버린 자신의 모습과 작은 과거들을 하나씩 치유해 나가기 시작합니다. 과연 혜원은 죽음으로 끝난 자신의 인생에 또 다른 스파이크를 날릴 수 있을까가 주요 이야기입니다.

삶이 바꾸어도, 새로운 난관과 절망이 다가와도, 나라는 사람이 겪은 실패와 좌절이 다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중요한 기회가 될 수 있다, 오늘 못하면 내일 다시 시작할 수 있다 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너무나 간단한 이야기인데, 배우일을 하며 저는 매번 매일 스스로 자책하거나 실패하는 상황을 많이 겪다보니 그럴 때마다 ‘내일 더 잘할 거야, 더 잘 할 수 있지’라며 스스로 되뇌었던 경험이 결국 이번 작업으로 이어진 것 같습니다. 

<스파이크 어게인>은 아주 신나고 박진감 넘치면서 눈물을 흘릴 수 있는 작품입니다. 21년도에 초연하고 나서 추후 3년 동안 부족했던 문장과 원고를 계속 수정하고 업그레이드해서 매번 공연을 할 때마다 관람객들에게 좋은 피드백을 받고 있습니다. 어디선가 힘들고 고된 시간을 보내고 있을 청소년친구들을 초대하여 보여주고 싶다는 의견도 많이 받았습니다. <스파이크 어게인>은 여전히 진행형입니다. 계속 수정을 더해 더 좋은 뮤지컬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공연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누군가가 더 이상 찾지 않는 나, 나는 나를 다시 써먹을 수 있을까요?

배우는 항상 선택을 받아야하는 존재입니다. 주체적인 도전보다 늘 수동적인 존재로 기회를 기다렸던 것 같습니다. 그 기회를 잡는 건 정말 하늘의 별따기입니다. 저는 지금도 여전히 영화, 드라마 오디션을 리스트업 후보군에 오르는데 매번 떨어집니다. 

배우라는 울타리를 벗어나 감독, 연출, 무대 등 전체 창작과정에서 나만의 경험과 도전, 나만의 스토리를 갖고 있는 게 결국 배우로서 더 큰 연기영역과 차별성 있는 캐릭터를 만들 수 있다는 생각으로, 무대 위 아래, 안과 밖에서 다양한 역할을 자처했습니다.

해보지 않는 이상 나에게 어떤 재능이 있는지 알 수 없습니다. 친구들과 수다를 떨며 영화를 만들어보려고 비싸지만 카메라와 장소도 직접 임대해보고 스스로 촬영을 하다 보니 연기에 대해서 정말 많이 배우게 됩니다. 계속 기다리기보단 스스로 새로운 걸 시도하고 만들어 내는 과정 속에 자신의 존재를 밀어 넣어야 합니다. 슬픔과 우울감 속에 있는 것보단, 비록 훌륭한 작품을 만들지 못하더라도, 같은 꿈을 지향하는 친구들과 뜻을 모아 우리들만의 작은 무대를 함께 만들어내는 과정이 저를 크게 배우게 합니다. 배우는 실패를 해도 필모그래피에 다 남습니다. 이 얼마나 실용적입니까. 실패를 해도 기록에 다 남는다니. 이런 생각이 남들 눈에는 우습게 보일지라도 저는 실리를 추구하며 살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사람들에 대한 뜨겁고 따뜻한 시선을 관객들에게 전달하고 싶습니다.

불운한 삶을 살았던 한 여성이 사랑을 통해 변화하는 과정을 담은, 째즈뮤지컬 '오늘 하루'
불운한 삶을 살았던 한 여성이 사랑을 통해 변화하는 과정을 담은, 째즈뮤지컬 '오늘 하루'

 

❚ 내가 만일 독재자라면 가장 먼저 무엇을 하고 싶습니까? 

제가 만든 뮤지컬과 영화를 모든 국민이 필수적으로, 강제적으로 볼 수 있게 만들 겁니다. 제가 제작한 영화와 뮤지컬을 아이들의 교육과정에 넣거나 국적 취득에 가산점을 주는 제도를 만들 겁니다. 범법자들과 운전면허증 재발급자들한테 저의 뮤지컬과 영화를 보게 할 겁니다. 제 작품을 봐야지만 연인들이 결혼할 수 있게, 그리고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살아갈 수 있게 만들 겁니다. 전부 농담이지만 그만큼 제 작품에 대한 애정이 큽니다.

❚ 배우가 되고 싶은 청소년이나 시민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배우를 특별한 영역의 직업으로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프로든 아마추어든 처음 하는 사람이든 자신만의 무대에서 경험을 시작해보았으면 좋겠습니다.

배우라는 게 항상 특별한 역할을 맡는 게 아닙니다. 주저하지 말고 빨리 여러 번의 역할과 자신만의 작고 초라한 무대라도 무대에서 살아갈 수 있게 스스로를 만드는 게 배우의 삶입니다. 나는 배우야 하면서 특별한 무대, 중요한 무대에서 서기 위해 1~2년 동안 아무것도 안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10분짜리 극이 되었든, 마을 무대에 서거나, 자신의 연기로 도전할 수 있는 영역을 만들어서 그 안에서 커뮤니티를 찾고 새로운 기회를 계속 찾아야 합니다. 특별한 영역에 들어가지 않아도, 주인공이 아니어도 좋으니 본인이 시작할 수 있는 무대에서 주저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 지금 가장 듣고 싶은 말은.

‘박 배우님 이뻐요. 연기 너무 잘하시네요. 노래 너무 잘하시네요.’ 등 배우로서 개인의 칭찬도 너무 듣기 좋지만 궁극적으로 저에게 가장 울림이 있는 말은 “작품이 좋네요” 이었던 것 같습니다. 제 작품을 보고 자신의 삶에 위로가 되었다라는 말이 가장 듣고 싶습니다. 제 작품이 사랑받는 게 듣고 싶습니다. 그 안에 배우의 저, 작가의 제가 함께 들어가 있으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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