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신문] 번지라고 부르는 공자의 제자가 스승이 늘 강조하는 '어짊(仁)'이 무슨 뜻인지 이해하기 어려웠던 모양이다. 공자께 직접 질문했다. “인(仁)이란 무엇입니까?” 공자의 답은 간단했다. “사람을 사랑하는 것(愛人)이다.” 내친 김에 번지는 '앎(知, 智)'이란 무엇인가도 물었다. 공자가 답했다. “사람을 아는 것이다.” 번지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사랑이란 仁을 두루 고르게 펴는 것으로 아는데, 앎-지혜란 사람을 알아서 골라가며 사랑하라는 뜻인지, 그렇다면 스승의 가르침은 모순이 아닌가 의심이 들었다. 공자가 설명을 붙였다. “정직한 사람을 들어쓰고 모든 곧지 못한 사람을 버리면 곧지 못한 사람도 곧게 할 수 있다.” 번지는 더 여쭙기가 면구해서 물러나와 자기보다 깨달음이 깊은 동료 제자 자하(子夏)에게 스승과 나눈 대화의 뜻을 물었다. 자하는 무릎을 치며 탄복했다. “얼마나 그 뜻이 깊은가, 스승의 말씀이!' 자하는 태평성대를 이룬 고대의 임금들을 예로 들며 뜻을 풀었다.
“순 임금이 천하를 다스릴 적에 여럿 가운데 고요를 들어썼더니 어질지 못한 자들이 멀어졌다오. 또 (상나라) 탕왕이 이윤을 높이 들어썼더니 역시 어질지 못한 자들이 멀어졌소이다.” 공자의 언행과 제자들과 나눈 문답을 기록한 유교의 대표 경전 <논어>의 '안연편 22장' 내용이다. 고요와 이윤은 고대 중국의 전설적인 현인으로 유능하고 선한 정승의 표상이다. 훗날 논어에 주를 달고 해설을 붙여 <논어집주>를 펴낸 주자의 해석을 보자. “어질지 못한 자들이 멀어졌다는 것은 사람들이 모두 어질게 바뀌어 어질지 못한 자를 찾아볼 수 없었으니 멀리 사라진 것과 같음을 말한다. 이것이 이른바 '곧지 못한 자도 스스로 곧게 한다'는 뜻이다. 자하는 공자께서 인(仁)과 지(知,智)를 겸하여 말씀하셨음을 알았던 것이다.” 권력자는 백성에게 어진 정치를 펴야 하며, 어진 정치를 펴려면 어떤 품성의 인재를 들어써야 하는지 짚어주는 교훈이다. '인사는 만사'라는 요즘 표현과도 통한다.
유교에서 성현으로 추앙받는 공자가 활동하던 시기는 기원전 6세기로 중국 주(周)왕조가 허약해지면서 제후국들이 서로 힘을 다투고 전쟁을 벌여 민중이 고통을 겪던 시대다. 공자는 도탄에 빠진 백성이 살아나려면 권력자인 제후와 대부들이 자신들만을 위한 권력 욕심을 내려놓고 도덕과 윤리를 회복해 백성을 위한 덕치(德治)를 펴야한다고 설파했다. 노나라에서 제후를 제치고 실권을 휘두르던 계강자라는 대부가 나라 다스림(政事)에 관해 묻자 공자는 면전에서 날카롭게 지적한다. “정사란 바로잡는다(正)는 뜻이니 당신이 바른 자세로 솔선한다면 누가 감히 바르지 않겠습니까?” 계강자가 이어서 도둑 대책을 묻자 공자는 강한 어조를 이어간다. “만일 당신이 탐욕을 부리지 않는다면 상을 줘가며 도둑질하라고 해도 하지 않을 것입니다(논어-안연편 17, 18장).” 권력자가 스스로 윤리 도덕에 충실하면 대중의 심성도 순해지고 민심도 절로 따라오는 것이니 '너부터 잘하라'는 질타였다.
공자에 버금가는 성현이라고 해서 아성(亞聖)으로 꼽히는 맹자는 “백성이 가장 소중하고, 사직은 그 다음이며, 군주는 가볍다(民爲貴,社稷次之,君爲輕 -맹자 진심하14)”라며 백성이 으뜸인 민본사상을 제시했다. 민귀군경(民貴君輕)이란 말로 압축한다. 맹자는 군주가 백성과 고락을 함께하고, 백성의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왕도(王道)의 시작이라고 역설했다(맹자-양혜왕상 3장). 아무리 임금이라도 백성을 돌보지 않고 인의를 무시하면 끌어내리고 새 임금을 세워야 한다고도 갈파했다. 은의 탕왕이 하의 폭군 걸왕을 몰아내고 주나라 무왕이 은나라의 폭군 주왕을 무찌른 역사를 예로 들면서, 인의를 해친 잔학한 자는 임금으로 볼 수 없고 일개 사내일 뿐이니 그를 벤 것은 군주를 시해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맹자-양혜왕하 8장). 무도한 권력자들에겐 등골 서늘한 경고요, 민중에게는 저항, 혁명의 정당성을 명쾌하게 제시한 민주주의 이론이다.
공자, 맹자가 걱정하고 분노하던 상황이 21세기 이땅에서 벌어지고 있다. 밤새워 물건 배달하던 41살 노동자가 쿠팡 측 독촉에 '개처럼 뛰고있긴 해요' 문자를 남기고 숨을 거뒀다. 경기 화성의 배터리 업체에서 노동자 23명이 화재로 목숨을 잃었다. 외국인은 18명이다. 힘들고 더럽고 위험한 일은 외부 하청에 떠넘기는 관행에 소중한 목숨이 스러져 간다. 일자리, 주택난, 물가고, 기후위기까지, 서민들은 힘든데 정치권은 주도권 다툼에 여념이 없다. 홍수 실종자를 수색하던 해병대원이 급류에 휩쓸려 희생된 사고는 사건으로 바뀌었다. 대통령실 개입 의혹까지 겹친 채 1년내내 책임 소재를 놓고 논쟁 중이다. 고위 공직자들은 경쟁하듯 인권 무지, 약자 무시의 발언을 쏟아낸다. 요즘엔 방송통신위원장 후보자가 공영방송에 색깔을 덧씌우며 스스로 편향된 인물임을 드러낸다. 부끄러움도 거리낌도 없다. 공자, 맹자께 달려가 묻고 싶어진다. “이땅의 권력자들에겐 인(仁)이 있는 걸까요? 올곧고 유능한 인물을 알아보고 들어쓰는 지혜는 있는 걸까요? 없다면... 어떻게 할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