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늬만 ‘어울림누리’

 

덕양어울림누리가 문을 연지 한달이 넘었다. 인구 89만에 이르는 대도시에 생긴 첫 문화예술 공간에 대한 기대는 컸다. 서울 예술의전당 만큼 훌륭하다는 덕양어울림누리는 ‘고양’ 이라는 울타리 속에 무언의 공감대를 형성해 주었고 예전에 느끼지 못했던 자긍심 같은 것도 솟아올랐다. 그러나 고양문화재단이 이끈 덕양어울림누리 개막공연은 실망이었다.

덕양어울림누리를 운영하고 있는 고양문화재단은 개막공연을 통해 철저히 ‘보여주는 공연’을 선언했다. 예술의전당이나 문화센타 등등 그 흔한 이름들을 제치고 ‘어울림누리’ 라는 순 우리말 이름을 내걸었을 때 뭔가 다르겠구나 하고 기대했었는데, 정작 문을 열고 보니 어울림은 없고 문화적 권위만 대단하다는 것을 느꼈다.

세계적 교향악단을 초청했고 웅장한 궁중제례악을 보여줬고 세계 각국의 문화상품을 무대에 올렸다. 숨 가쁘게 쏟아지는 초대형 공연은 화려하기는 했으나 잔치의 주인공들을 행복하게 만들어주진 못했다. 개막공연의 최대 화제였던 이탈리아 교향악단 라스칼라 공연을 보자. 세계적 지휘자 ‘리카르도 무티’의 명성만으로도 큰 관심을 끈 이 공연은 실패로 끝났다. 고양문화재단은 서울 예술의 전당과 같은 수준의 공연을 내세우면서 으뜸자리 30만원, (중간 생략) 가장 자리 10만원을 받겠다고 했다. 으뜸자리는 500석으로 전체의 절반을 차지하고 관람료가 낮은 가장자리는 98석 밖에 없었다. 굳이 경기 탓을 하지 않더라도 숨막히는 관람료다.

어울림누리 공연장 전체 좌석 1,218석 중 라스칼라 공연 유료 좌석은 200여석. 자리를 메우기 위한 초대장은 공연 당일까지 쏟아졌다. ‘비싼 공연’에 빠짐없이 모여든 초대 손님들은 으뜸자린지 가장자린지 상관없이 꽉 차게 앉는 바람에 곳곳에서 작은 실랑이가 벌어졌고 급기야 30만원 내고 아무자리나 앉는 웃지못할 일이 벌어졌다. 수익은 둘째 치고 고양에서 괜찮은 클래식공연 한번 보는 것을 고대했던 수많은 시민들에겐 ‘갈 수 없는 문화잔캄로 끝났다.

더 실망스러운 것은 문화재단 일부 관계자들의 평가다. “고양의 문화수준이 이 정도인지 몰랐다”는 말로 라스칼라 공연 결과를 ‘고양시민의 문화수준 탓’으로 미루는 재단 측 관계자의 모습을 보고 상당한 착각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히 평가하면 라스칼라 공연의 결과는 고양문화재단의 수준이다.

‘세계적인 문화 명소’를 선언하고 ‘최고급 공연장’을 내세운다 해도 고양시민들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하면 어울림누리는 마을 공연장 역할도 제대로 못하게 된다는 현실을 고양문화재단은 각인해야 할 것이다.
덕양어울림누리는 예술의 전당보다도 더 사랑받을 수 있는 문화공간이다. 5분 10분이면 달려갈 수 있는 마을 사람들이 곧 수준 높은 소비자인데다 마을 안에 훌륭한 문화예술인들이 얼마나 많이 살고 있는가.

어쩌면 이들을 서로 잘 연결 시켜주는 것만으로도 덕양어울림누리는 훌륭한 문화공간으로 자리 잡아 갈 수 있을 것이다. 세계적인 공연, 수준 높은 공연을  몇 번 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문화를 통해 행복감을 느끼느냐가 더 중요하다.

고양시민들이 원하는 문화는 ‘보는 수준’에 그치지 않는다. 참여하는 문화를 통해 새로운 나를 발견하고 숨겨진 끼를 발산하고 잠재적 능력을 개발하고 싶어한다. 문화재단은 고양시민들의 문화적 욕구를 존중하고 사랑해야 한다. 문화재단의 프로그램을 통해 많은 고양시민들이 행복해진다면 누가 감히 경제적 잣대로 공격할 수 있겠는가.

이제 한달이다. 경황없이 출발한 탓도 있고 갑자기 모여든 각각의 인재들이 고양문화재단의 사명과 역할에 대해 아직 중지를 모으지 못하고 있는 탓도 있을 것이다. 개막공연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와 다양한 방법의 여론조사를 통해 문화재단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대로 잡아간다면 좋은 결실이 있으리라고 기대된다. 고양시민이 원하는 문화, 쾌히 투자할 수 있는 경제적 여건과 참여하고픈 프로그램, 예술가와 시민이 무대와 객석을 넘어 하나 될 수 있는 참신한 아이디어 등등 이제라도 시민의 소리를 많이 들어야 한다. 덕양어울림누리가 이름 그대로 고양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문화를 중심으로 행복하게 어우러지는 곳이 되려면 ‘뭔가 보여 주겠다’는 옛 생각을 버리고 ‘무엇을 원하는지’ 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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