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비슷한 거 하는 M세대의 글쓰기>
[고양신문] 얼마 전에 고양신문 창간 35주년 기념식이 있었습니다. 기자님이 올 수 있냐고 물었을 때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가겠다고 했습니다. 이런 행사는 미리 잡힌 일정을 취소하고서라도 가야 합니다. 모든 일이 제 빈약한 상상의 틀 밖에서 벌어지기 때문입니다.
메이저 일간지의 기념식이라면 그 풍경을 상상하는 게 어렵지 않습니다. 호텔 연회장에서, 양복을 입은 일군의 남성 연장자들이 주도하는 빤한 모습일 겁니다. 그러나 수도권 중견 도시 지역신문 행사의 풍경은 도통 감이 오지 않습니다. 장소도 호텔이 아닌 구청입니다. 행사의 구체적인 상(象)을 얻기 위해서라도 저는 꼭 그 자리에 가야 했습니다.
무슨 글을 쓰려고 지역신문 행사까지 봐야 하는가, 라고 묻는다면 딱히 할 말은 없습니다. 글쓰기란 그렇게 효율적인 일이 아니다, 라고 할밖에요. 평소에 이것저것 부지런히 봐두면 어느 날 그 상(象)들이 머릿속에서 하나의 주제로 엮이며 그럴듯한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혹은 그때 본 걸 여기에 넣으면 되겠다, 하며 장면 묘사에 요긴하게 써먹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 이유로 작가들은 기회가 닿을 때마다 부지런히 보고 듣고 경험하며 머릿속 글 창고를 꽉꽉 채워놓아야 합니다.
입장할 때 방명록을 써야 했는데, 이름 옆에 직업을 쓰는 난도 있습니다. 그냥 ‘작가’라고 쓰면 될 것을 괜히 앞에 ‘프리랜서’ 네 글자를 더 붙입니다. 책도 냈고 극본도 여럿 썼으니 이제 작가라는 호칭에 떳떳해질 만도 한데 여전히 무안한 마음이 듭니다. 등단 작가가 아니어서 그렇습니다. ‘등단’이라는 말은 신춘문예나 문예지 신인문학상을 받은 작가에게만 붙여줍니다. ‘프리랜서 작가’라는 여섯 글자에서 제 마음속 열등감을 봅니다.
그러나 우울한 기분은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금세 날아갑니다. 연두색 테이블보와 책상 의자로 구색을 맞춘 경내가 자아내는, 마치 성공한 어르신의 칠순 잔치 같은 감성! 저녁 식사로는 샌드위치 반쪽과 떡 두 개가 제공되고, 어느 여사님이 직접 빚었다는 막걸리 축하주까지! 모든 풍경이 제 남루한 상상력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 있습니다.
식순의 첫 번째는 몸에도 좋고 정신에도 좋은 어르신들의 축사 말씀입니다. 대표님, 의원님, 교수님, 이사, 고문이 한마디씩 거들면서 축사 시간이 점점 길어집니다. 모르긴 몰라도 어른들의 목젖 아래엔 훈화 주머니라는 기관이 따로 있는 게 분명합니다. 그러지 않고서야 이렇게 재생 버튼을 누른 것처럼 훌륭한 말씀을 줄줄 읊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청중석 어르신들의 기개도 만만치 않습니다. 트럼프가 쓸 법한 모자를 쓴 어르신은 축사 중에 신문을 활짝 펼쳐 읽고 계시고(당연히 고양신문이겠지요?), 투쟁 조끼를 입은 다른 어르신은 반가운 얼굴을 발견했는지 동에서 서로, 당당하게 강당을 가로지릅니다.
저는 맨 뒷자리에 앉아 이 아름다운 풍경을 구경하다가 허기가 지면 구석에 놓인 박스를 뒤져 도시락을 까먹고, 방울토마토를 우물거리며 우크라이나에서 온 세르게이 씨의 연주를 감상하다가 아름다운 시민분의 수상엔 힘껏 박수도 보냅니다. 이런 제가 처량해 보였는지 기자님 한 분이 오셔서 “작가님, 칼럼 잘 읽고 있어요, 팬이에요” 하시는데, 그 말에 오히려 더 부끄러워졌습니다.
저는 결혼식도 혼자 가는 사람인지라, 가서 코스 요리 다 먹고 와인도 세 잔씩 마시고 오는 사람인지라, 괜찮습니다. 혼자 두셔도 됩니다. 혼자 와야 이 귀한 풍경을 한 장면도 놓치지 않고 살뜰히 구경할 수 있기에 오히려 혼자 오는 것을 더 좋아합니다. 그래서 마지막까지 남아 손을 흔들며 기념사진도 찍고 온 겁니다. 정말이지 기억에 남을만한 밤이었습니다.
고양신문의 창간 35주년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40주년에도, 50주년에도 계속 초대해주시기를 고대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