갯벌생태계 진단하는 국가해양생태계 종합조사
서해·남해·동해·제주까지 국내 갯벌 185곳 살펴
블루카본, 건강식품… 염생·사구식물 가치 부각
[고양신문] 해마다 여름이면 갯벌생태조사를 한다. 해양보호구역으로 지정된 습지보호지역은 매년, 일반 갯벌은 격년으로 같은 장소를 방문한다. 조사항목은 염생식물, 바닷새, 저서생물, 해양보호생 물, 물리환경 등이다. 이 조사는 갯벌과 연안, 해양 암반 생태계 전체의 상태를 진단하고 변화를 읽어 대응하려는 국가 종합조사 중 하나다.
갯벌 조사팀이 방문하는 갯벌은 전국에 180곳이 넘는다. 서해 인천 강화도·장봉도갯벌에서부터 경기 대부도·시흥갯벌을 거쳐 충남 가로림만·서천갯벌, 전남 무안·신안·순천만갯벌, 경남 마산·봉암갯벌, 부산 을숙도갯벌까지 서남해안을 집중적으로 다닌다. 강원도 고성해변에서 부산 기장해변, 제주도 하도리와 종달리해변은 2년에 한번씩 방문한다. 우리 에코코리아 연구팀은 염생식물과 갯벌 보호생물을 중심으로 조사하고 있다.
염생식물·사구식물 찾는 ‘식물사냥꾼’
식물 대부분은 짠물에서 살지 못한다. 해풍에 날려오는 소금기나 간혹 파도가 만든 거품이 튀어도 식물은 타들어 간다. 소금기는 식물의 가장 큰 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곳에 살아가는 식물이 염생식물과 사구식물이다. 얼핏 보면 소금기를 좋아해서 바닷가에 사는 것 같지만, 아니다. 실제로는 소금 스트레스를 온몸으로 버텨내는 중이다. 진화적으로 적응해서, 소금의 공격에 살아남은 식물들이란 뜻이다. 그러니 안전하고 영양 많은 육상이나 육수에서 사는 육상식물(생태학에서는 중생식물이라 한다)이 금수저라면 바닷가나 해수에 사는 염생식물과 사구식물은 식물계의 흙수저라 할 수 있다.
염생식물 조사 풍경은 이렇다. 지글대는 태양 아래 썰물이 되어 갯벌이 드러나면, 바닷가에 한 무리의 사람들이 어슬렁거린다. 대부분 챙이 큰 모자를 눌러쓰고, 긴팔옷을 입고 얼굴엔 하얀 천을 꽁꽁 싸맸다. 무릎 바로 아래까지 오는 똑같은 장화를 신고 있다. 이들은 오로지 땅만 보며 2km씩을 걸어 다니며 무언가를 끊임없이 찾고, 자르고, 캐고, 사진을 찍는다. 언뜻 나물채집하는 사람들 같기도 하고, 해안을 탐색하는 전문 요원(!)들 같지만 ‘식물사냥꾼’이 딱 들어맞는 표현 같다.
이들이 찾는 것은 갯벌조사 대상 식물 137종이다. 까만 펄갯벌을 붉게 물들여 붉은 바다를 연상케하는 칠면초, 하얀 모래사장 위 사구를 초록으로 뒤덮은 갯그령과 같은 식물들이다. 무슨 종인지 확인된 종들은 목록지에 기록하고, 카메라로 촬영하고, 표본을 채집한다. 무게를 재서 생물량도 측정한다. 위성지도에 식물의 분포를 그리고 면적과 피도 변화를 확인한다. 크고 넓은 면적은 쌍안경과 거리측정기, 드론을 사용하여 경계를 딴다. 이렇게 메일 다섯 곳 정도의 갯벌을 방문하면서 6월~8월 3개월 동안 주어진 물량을 소화한다.
갯벌 가득 붉게 물들이는 칠면초
우리가 꼭 알아야 할 염생·사구식물을 꼽자면, 여름철부터 가을철까지 온 갯벌을 붉게 물들이는 칠면초를 들 수 있다. 축축한 갯벌에서 자라며, 잎이 뭉툭하고 줄기가 곧게 올라와서 곁가지를 낸다. 이와 달리 갯벌 상부 건조한 곳에서 주로 녹색으로 풍성하게 자라는 식물이 해홍나물이다. 줄기 끝이 뾰족하고 가지가 뿌리에서부터 갈라진다. 이 두 식물은 종종 교잡이 되고 생육조건에 따라 외형이 비슷해지는 생태형을 가져 흔히 혼동하기도 한다. 더군다나 입이 더욱 좁고 축축한 갯벌에 자라는 좁은해홍나물도 있어 구별이 쉽지 않다.
요즘 갯벌에 칠면초를 복원해 경관을 개선하고자 하는 지자체도 많다. 올해는 봄에 비가 많이 와서 발아조건이 좋았고 여름에는 기온이 매우 높아 칠면초와 해홍나물이 매우 상태가 좋다. 갯벌 조사에서 확인한 바로는 칠면초군락이 일제히 꽃을 피우는 8월에는 꿀벌들에게 많은 꽃가루를 주는 화분식물이라는 것이다.
모래 잡아주고, 건강한 식재료 내어주고
모래사장이나 사구에는 특히 갯그령이나 순비기나무를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갯그령은 웬만 한 바닷가 곰솔 숲 앞이나 사구에서 터를 잡고 있다. 뜨거운 사막과 같은 사구에서 열을 피하고 광합성을 하기 위해 윗면은 분백의 왁스가 발라져 있고, 아랫면은 엽록소가 밀집되어 녹색을 띠고 있다. 뿌리가 모래 깊이 들어가서 모래를 포집해서 고정시키는 역할을 한다. 대개 이런 곳에 함께 자라는 식물은 순비기나무다. 순비기는 관목이라 줄기가 모래를 기면서 모래를 고정시킨다. 특히 꽃과 잎에 독특한 향을 내어 벌과 나비가 좋아하는 식물이다. 순비기 나무의 열매는 만형자라는 한약재로 사용된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많이 아는 식물은 아마도 먹을 수 있는 함초와 방풍나물이 아닐까싶다. 식물이름은 따로 있으니 함초는 퉁퉁마디, 방풍나물은 갯기름나물이다. 퉁퉁마디는 폐 염전에 재배하여 어민소득작물로 활용할 수 있는 식물이다. 무엇보다 가을철에 수확하면 올리브유와 같은 고소한 식물성기름을 얻을 수 있다. 가루는 식재료나 건강식품으로도 사용한다.
갯기름나물은 기관지나 호흡기에 좋은 건강한 식재료이다. 해초비빔밥에 넣으면 건강한 밥상을 차리는 데 도움이 되겠다. 갯벌조사팀의 관찰을 통해 갯기름 나물에는 매우 다양한 수분매개자들이 있어, 바닷가 생물다양성을 유지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기저식물이라는 점을 발견하기도 했다.
쓸모없는 것들의 쓰임새 살펴야
하구댐으로 막히지 않은 열린 하구인 장항습지에도 바닷물에 영향을 받는 염생식물이 자라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나문재다. 일년생식물이지만 나무처럼 크게 자라고 두툼해서 땔감으로도 사용했다고 한다. 잎도 칠면초나 해홍나물보다 길고 뾰족하여 쉽게 구별된다. 새섬매자기, 모새달과 해당화도 자라고 있다
이러한 염생식물과 사구식물이 과거에는 쓸모없다 천대받고 송두리째 매립되곤 했지만, 요즘은 블루카본이다 건강식품이다 해서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해안매립에 열을 올렸던 지자체들이 습지를 복원해 염생식물을 식재하기 위해 많은 노력과 예산을 들이고 있다. 장자가 이야기한 “쓸모없는 것이 되레 크게 쓰인다”는 무용지용(無用之用)의 지혜를 잊고 산 탓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