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으로 본 세상
『두 번 다시 오지 않는 스페샬 선풍기』(오세나 지음. 달그림)

박미숙 『그림책은 힘이 세다』 저자 
박미숙 『그림책은 힘이 세다』 저자 

[고양신문] 덥다. 더워도 너무 덥다. 24시간 에어컨을 튼다. 에어컨 없이는 단 하루도 못 살 거 같다. 아니 하루가 뭔가, 1분 1초도 견디기 힘들다. 올여름 유난히 덥다는 생각을 한다. 잠깐 밖에 나갈라치면 비 오듯 땀이 흐른다. 덕분에 귀찮아서 들고 다니지 않던 손수건도 꼭 챙긴다. 역시 귀찮아서 어디다 뒀는지도 모르게 쳐박아 놨던 부채도 꺼내 들고, 얼음물도 챙긴다. 그래도 덥다. 더워. 

지구온난화 때문이겠지. 이제는 이렇게 더운 날에 익숙해져야겠지. 그래도 다행이지 뭔가. 우리에겐 상하좌우 돌아가며 골고루 공기를 식혀줄 에어컨이 있다. 웬만한 일이 아니고선 밖에 나가지 않고, 이동할 때 역시 차 안을 시원하게 해 줄 에어컨이 있으니 살만하다. 예전에는 에어컨이 지구온난화의 주범이라고 여겨 도서관에서 아이들과 에어컨 안 쓰기 캠페인도 벌였는데, 그런 고민을 할 여유도 없다. 너무 더운데 어쩌란 말인가.

‘그럼 동물들은?’ 솔직히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다. 이 더운 여름을 동물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지난 5월 멕시코에서는 한낮 기온이 45도까지 올랐는데 고함원숭이 140여 마리가 심각한 탈수 증세와 열사병으로 죽었다고 한다. 과학자들은 이러한 이상고온 현상으로 나비, 개구리, 고슴도치부터 물고기, 새, 토끼까지 많은 동물의 생태와 행동, 겉모습은 물론 개체수에도 큰 영향을 미쳐 생태계가 파괴되고 있다고 경고한다. 캥거루가 팔뚝을 핥으며 열을 식히는 모습은 이제는 일상화되어 버렸고, 일부 조류가 열 발산이 쉽도록 몸이 작아지고, 부리와 날개가 길어지는 등 진화를 하고 있지만, 이렇게 빠르게 진행되는 지구온난화 속도를 동물들 진화가 따라잡기는 쉽지 않은 노릇이다(한겨레신문 2024년 8월 7일자 인용)

『두 번 다시 오지 않는 스페샬 선풍기』(오세나 지음. 달그림). 어느 날 숲속에 툭 하고 떨어진 선풍기 하나. 땅도 나무도 너무 더워서일까? 초록빛이던 숲속은 어느새 빨갛게 변해버린 상태다. 동물들은 이리저리 나무 그늘을 찾아 얼굴을 디밀고 누워보지만, 더위를 막기는 역부족이다. 그러다 새 한 마리가 선풍기 버튼을 누른다. 어랏? ‘대바박박박. 시워워워원하다.’ 동물들은 이 시원함을 독점하지 않는다. ‘이리와봐와와워워월’ 다른 동물들을 부른다. ‘딸깍’ 강풍 효과가 있다는 걸 알았다. 더 시워워워원한 바람이 더 많은 동물들을 식혀준다. 그때 어디선가 북극곰 한 마리가 나타난다. (뒷이야기가 궁금하신 분들은 책을 보시길. 신간이라 책 내용은 여기까지만 남겨둔다.) 

글을 쓰다 말고 잠깐 고개를 들어 에어컨을 쳐다본다. ‘20세기 최고의 발명품’ 가운데 하나라는 저것. 한때 오존층을 파괴한다는 이유로 시끄러웠던 냉매문제는 기술로 해결했지만, 온실가스 배출 문제는 여전하다. 특히 에어컨은 에너지를 많이 쓰는 가전제품 가운데 하나이다. 인간들이 더위를 식히기 위해 쓰기는 하지만, 사용하면 할수록 지구 온도는 더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현재를 사는 인간들에게 더위를 피하게 해 주지만, 같은 시간을 사는 동물들에게는 최악의 물건일 수 있다. 

문득, 왜 책에 ‘두 번 다시 오지 않는’이라는 제목을 붙였을까 생각해보았다. 어쩌면 스페샬 선풍기는 지구가 우리에게 보내는 마지막 기회가 아닐까? 동물들과 함께 살라고. 그러기 위해서 인간들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생각해보라는 경고일 수도 있겠다. 

가만히 일어나 에어컨 리모컨을 든다. 잠깐 멈칫했지만, 끈다. 커다란 부채도 옆에 두고 땀을 닦을 손수건도 꺼내둔다. 오늘 하루는 켜보지 않기로 한다. 뭐 얼마나 큰 효과가 있겠냐만, 이것으로 그림책 속 벌겋게 달아오른 동물들이 자기 색깔을 조금이라도 찾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다. 

‘징~’ 휴대전화 문자가 날아온다. 폭염경고 문자이다. 동물들에게는 이런 경고 문자를 보내줄 이도 확인할 휴대전화도 없을 텐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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