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 마을숲 생태조사  (3) 덕양산
 
임진왜란 때 나라 지킨 행주대첩의 무대
누리길 양옆엔 애기나리, 남산제비꽃 군락
먹이식물 풍부 다양한 곤충 만날 수 있어
산새와 물새 두루 볼 수 있는 생태계 보고
수변 탐방로 또 조성, 야생생물 교란 우려

고양시민들이 지난달 12일 덕양산 탐방로를 따라 걸으며 생태조사를 하고 있다. 
고양시민들이 지난달 12일 덕양산 탐방로를 따라 걸으며 생태조사를 하고 있다. 

[고양신문] 한강과 창릉천의 합수부에 우뚝 솟은 덕양산(124.9m)은 고양을 대표하는 ‘작지만 큰’ 산이다. 고양이라는 지명이 이 산에서 나왔고, 새해 첫날이면 정상에서 해돋이 행사가 열린다. 
1413년(태종 13년) 지방행정 개편을 단행한 조선은 지금의 일산 지역을 중심으로 한 ‘고봉현’과 덕양 지역인 ‘덕양현’의 이름을 한 자씩 따서 고양현으로 통합했다. 고양현은 1471년 고양군으로 승격해 조선과 일제강점기, 대한민국을 거치면서 500여 년간 이어져 오다가 1992년 고양시로 승격했다. 군 단위의 작은 고을에 불과했던 고양은 시가 되자마자 비약적으로 성장해 지금은 인구 108만 명이 거주하는 전국 10대 도시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한강하구에 자리한 덕양산은 임진왜란 당시 위기에 빠진 나라를 지켜낸 행주대첩의 무대이기도 하다. 산의 남쪽 면이 절벽인 천혜의 요새로 삼국시대 토성이 발견되는 등 오래전부터 군사 요충지 구실을 해 왔다. 임진왜란 때는 전라도 관찰사 권율이 서울을 되찾기 위해 관군과 승병 3000여 명을 이끌고 행주산성에 진을 친 뒤 10배에 달하는 왜군의 공격을 물리친 유서 깊은 땅이다. 

행주산성 품은 천혜의 요새
덕양산이 위치한 행주동은 ‘살구나무 행(杏)’ 자를 쓰는 고을답게 가로수로 아름드리 살구나무가 줄지어 서 있어 꽃피는 계절이면 장관을 연출한다. 행주산성이 1963년 사적 56호로 지정되고 1969년 이 일대가 문화재보호구역으로 지정된 뒤, 산성 안에 소나무, 잣나무, 은행나무, 회화나무, 모과나무, 단풍나무, 계수나무, 화살나무, 물푸레나무, 주목 등 18개 수종 1800여 그루의 나무가 식재되었다. 
지난달 12일과 27일 두 차례 생태조사 결과, 덕양산에는 29과 51종의 식물이 확인되었다. 50여 년 전 심은 소나무와 잣나무들이 울창하게 숲을 이루고, 넓은잎나무의 푸르른 잎사귀들이 여름철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주고 있었다. 
과거 군사용 철책이 철거된 자리에는 시민들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행주산성역사공원이 최근 조성되었는데 날이 더워서인지 이용객은 그리 많지 않았다. 고양시 인재교육원에서 한강을 오른쪽으로 두고 조성된 고양누리길 5코스인 행주산성 역사누리길 입구에는 회화나무들이 꽃을 피우기 시작했고, 가시칠엽수와 함께 칠엽수도 여러 그루 눈에 띄었다. 임진왜란 당시 일본과 혈전을 벌였던 행주산성의 역사공원에는 일본 원산의 칠엽수가 무심하게 자라고 있었다. 

사진1. 고양시민들이 지난달 12일 덕양산 탐방로를 따라 걸으며 생태조사를 하고 있다. 사진2, 3 모감주나무 꽃과 열매사진4 하늘소는 딱따구리가 좋아하는 먹잇감이다.사진5 둥지를 떠난 아기 소쩍새 삼남매가 덕양산 탐방로 주변에서 어미새를 기다리고 있다.사진6 수변공간에 탐방로가 추가로 조성돼 겨울철새들의 교란이 우려된다.사진7. 덕양산은 주변 생태계가 단절돼 야생 포유류가 서식하기 어려운 환경이다.
모감주나무 열매
모감주나무 꽃
모감주나무 꽃

주차장 주변에 심어진 모감주나무(golden raintree)는 꽈리처럼 생긴 작년 열매를 아직 매달고 있는데, 6~7월 개화하는 노란 꽃이 장맛비에 떨어지면 이름처럼 ‘금비’가 내려 땅바닥을 노랗게 덮은 모습이 인상적이다. 꽃이 귀한 계절에 모감주는 배고픈 벌들에게 고마운 밀원식물이 되어주기도 한다. 

누리길 입구 담장에는 중국이 고향인 능소화가 멋들어지게 늘어져 있고, 가지런한 잎맥이 특징인 산딸나무와 산수유, 말채나무 등 층층나무 집안 나무들이 일부러 구색을 갖춘 듯 서 있었다. 입구에서 탐방객을 맞는 108계단 양옆으로는 애기나리와 남산제비꽃 군락지가 제법 길게 이어져 있다. 우리나라 자생식물인 두 종은 가시박, 돼지풀, 단풍잎돼지풀, 서양등골나물 등 대부분 북미에서 들어와 무섭게 세를 뻗쳐가고 있는 생태교란 식물들 사이에서 기죽지 않고 당당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겸재 정선의 행호관어도 조망
가파른 계단을 올라 조금만 걸어가면 팔각정 초소 전망대가 나와 시원한 강바람을 느낄 수 있다. 이곳은 1741년 겸재 정선이 양천 현감으로 부임한 뒤 김포 개화산 쪽에서 행호의 웅어잡이 모습을 화폭에 담은 ‘행호관어도’의 무대이다. 행주산성 앞 한강하구는 창릉천이 합류하면서 강폭이 넓어지고 유속이 느려져 강이 마치 호수와 같다 해서 고양 사람들은 이곳을 ‘행호’라 불렀다. 행주나루는 음력 4월 말이면 웅어잡이배로 가득했다. 웅어는 고양의 대표적 먹을거리로 조선 말기에는 행주에 사옹원 소속의 위어소를 두어 웅어를 잡아 왕에게 진상했다.

창릉천이 합류하는 덕양산 아래 한강하구는 호수처럼 잔잔해 행호라고 불린다.
창릉천이 합류하는 덕양산 아래 한강하구는 호수처럼 잔잔해 행호라고 불린다.

정자를 지나면 덕양산 산길과 강변 길의 갈림길이 나온다. 두 사람이 나란히 걸을 수 없는 좁다란 탐방로를 따라 잎을 태우고 나오는 노란색 재를 천연염색에 사용한다는 노린재나무가 나타난다. 싸리, 족제비싸리, 땅비싸리, 아까시나무 등 콩과 식물이 흔하게 보이는데, 이름엔 싸리가 들어가지만 콩과 식물과는 꽃이나 열매가 다르게 생긴 대극과 집안의 광대싸리도 귀여운 열매를 매달고 한몫 끼어 있다.
잎에서 독특한 냄새가 나는 누리장나무는 한창 바람개비처럼 생긴 흰 꽃을 소담하게 피워올렸다. 김경숙 숲해설가는 “잎을 비벼 아이들에게 냄새를 맡아보라고 하면 라면 수프 냄새가 난다고 하고, 어른들은 원기소 냄새가 난다고 해요. 생태 공부를 하면서 깨알같은 재미를 선사하는 나무”라고 했다. 붉은 자주색 꽃을 총상꽃차례로 피워낸 덩굴식물 칡도 절박해 보이는 덩굴손을 멀리 뻗치고 있다. 이제 막 꽃을 피울 참인 미국자리공도 곳곳에 자리를 잡았다. 

떡갈나무, 때죽나무 유난히 많아
덕양산에는 참나무 여섯 종류 중 커다란 잎사귀에 거치가 물결처럼 구불구불한 떡갈나무가 유난히 많고 신갈나무, 갈참나무와 졸참나무, 상수리나무도 섞여 있다. 꽃봉오리와 열매의 모습이 신기하게 닮았고 바나나 송이를 닮은 충영(벌레집)을 어김없이 매달고 있는 때죽나무는 어린나무들이 많아 개체 증식 능력이 뛰어난 것으로 보인다. 
드물게 보이는 식물로는 개곽향과 개똥쑥, 파리풀, 모시물통이가 있고 진딧물과의 오배자면충이 만든 벌레혹 오배자를 울룩불룩 달고 있는 붉나무는 환경이 잘 맞는지 잎사귀가 매우 컸다. 

사진1. 고양시민들이 지난달 12일 덕양산 탐방로를 따라 걸으며 생태조사를 하고 있다. 사진2, 3 모감주나무 꽃과 열매사진4 하늘소는 딱따구리가 좋아하는 먹잇감이다.사진5 둥지를 떠난 아기 소쩍새 삼남매가 덕양산 탐방로 주변에서 어미새를 기다리고 있다.사진6 수변공간에 탐방로가 추가로 조성돼 겨울철새들의 교란이 우려된다.사진7. 덕양산은 주변 생태계가 단절돼 야생 포유류가 서식하기 어려운 환경이다.
하늘소는 딱따구리가 좋아하는 먹잇감이다.

줄기의 가시를 더듬어보아야 정확한 동정이 가능한 청미래덩굴, 청가시덩굴, 밀나물, 선밀나물 등 청미래덩굴 집안의 네 식구도 고루 터를 잡고 있는데, 망개떡을 싸는 청미래덩굴만 열매가 빨갛게 익고 나머지 셋은 열매가 검붉게 익어간다. 
먹이식물이 풍부하고 곤충이 서식하기에 알맞은 환경인 덕양산은 다양한 곤충을 만날 수 있다. 이번 조사에서는 곤충 41과 61종이 확인되었다. 신부날개매미충, 부채날개매미충은 새끼손톱보다 작은 하얀 실뭉치처럼 보이는 약충과 투명 날개의 성충이 많았고, 색이 화려한 꽃매미를 비롯해 갈색날개매미충, 쥐머리거품벌레, 미국선녀벌레도 보였다. 모두 노린재목 매미아목에 속하는 곤충들로 나무나 과실의 수액을 먹고 사는 공통점을 지닌 이들은 농가에 피해를 주는 해충으로 분류되는데 개체 수의 급증이 우려되었다. 
이밖에 제법 큰 홍점알락나비와 배얼룩재주나방 애벌레, 톱하늘소가 인상적이었고 풍뎅이 종류와 노린재류도 다양한 종이 나타났다. 지난달 말 시민 참여 조사 때는 십각류에 속하는 말똥게의 어린 개체 한 마리가 게걸음으로 나타나 탐방객의 귀여움을 독차지했다.

아기 소쩍새 삼남매와 황홀한 조우
산림과 하천이 만나는 덕양산은 물새와 산새가 고루 살기 좋은 곳이다. 지난달 두 차례 조사에서 조류는 19과 26종이 확인되었는데, 멸종위기야생생물 2급인 새호리기와 붉은배새매, 천연기념물인 소쩍새 등이 포함돼 생태적 가치를 증명했다. 
인재교육원 앞 탐방로 들머리에 꾀꼬리 한 마리가 홀연히 나타나더니 되지빠귀, 개개비, 물까치, 괭이갈매기 등이 연달아 모습을 드러내며 산새와 물새들이 경쟁하듯 목청을 높였다. 

사진1. 고양시민들이 지난달 12일 덕양산 탐방로를 따라 걸으며 생태조사를 하고 있다. 사진2, 3 모감주나무 꽃과 열매사진4 하늘소는 딱따구리가 좋아하는 먹잇감이다.사진5 둥지를 떠난 아기 소쩍새 삼남매가 덕양산 탐방로 주변에서 어미새를 기다리고 있다.사진6 수변공간에 탐방로가 추가로 조성돼 겨울철새들의 교란이 우려된다.사진7. 덕양산은 주변 생태계가 단절돼 야생 포유류가 서식하기 어려운 환경이다.
둥지를 벗어난 아기 소쩍새 삼남매가 덕양산 탐방로 옆 나무 위에서 어미새를 기다리고 있다.

탐방로 주변 나무들에는 딱따구리들이 뚫어놓은 구멍이 많이 보였다. 딱따구리의 구멍은 다양한 조류들이 둥지로 사용해 훌륭한 번식지 구실을 한다. 덕양산은 사람이 출입하지 못하도록 막아놓은 구역이 많아 여름철 번식기에 새들이 안정적으로 번식하기에 유리해 보였다. 그래서인지 이번 생태조사에서 이소에 성공한 박새, 꿩, 꾀꼬리, 직박구리, 괭이갈매기 등 어린새(유조)들이 다수 관찰되었다. 

지난달 12일 오전 9시40분께 관찰된 소쩍새 삼남매가 대표적이다. 등산로에서 가까운 나무 위에서 이제 막 둥지 밖 세상으로 나온 소쩍새 아기 세 마리가 동그란 두 눈을 크게 뜨고 황홀한 눈맞춤을 하였고, 어미새는 걱정되는지 주변을 맴돌았다. ‘소쩍 소쩍꿍’하고 운다고 해서 이름 지어진 소쩍새는 야간에 소리를 들을 수 있지만 직접 관찰하기는 어려운 종으로 천연기념물 324-6호로 보호되고 있다. 
김동원 조사원(삼육대 동물자원학과 3)은 “사람의 간섭이 적다 보니 등산로와 가까운 장소에서도 번식이 가능했던 것으로 보인다. 소쩍새가 이곳에서 번식했다는 것은 다른 올빼미과 조류인 솔부엉이 등도 덕양산에서 번식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한강과 만나는 가장자리 갈대밭에서는 갓 태어난 개개비들이 모여 노래 연습을 하고 있었다. 바로 옆에는 수변 탐방로 공사가 한창이었는데, 꺼벙이(새끼 꿩) 여러 마리가 노출된 곳에서 먹이활동을 하고 있었다. 
2주 뒤 다시 만난 꺼벙이들은 아기 티를 많이 벗어나 장끼, 까투리 모양새로 의젓하게 성장하고 있었다. 행주산성 위쪽 정자에서는 꾀꼬리 어린새 두세 마리가 특유의 소리를 내며 다급하게 어미를 부르고 있었고 어미 꾀꼬리는 연달아 경계음을 냈다. 그 위로는 날쌘 사냥꾼인 새호리기가 사냥감을 찾고 있었다.

사진1. 고양시민들이 지난달 12일 덕양산 탐방로를 따라 걸으며 생태조사를 하고 있다. 사진2, 3 모감주나무 꽃과 열매사진4 하늘소는 딱따구리가 좋아하는 먹잇감이다.사진5 둥지를 떠난 아기 소쩍새 삼남매가 덕양산 탐방로 주변에서 어미새를 기다리고 있다.사진6 수변공간에 탐방로가 추가로 조성돼 겨울철새들의 교란이 우려된다.사진7. 덕양산은 주변 생태계가 단절돼 야생 포유류가 서식하기 어려운 환경이다.
수변공간에 탐방로가 추가로 조성돼 겨울철새들의 교란이 우려된다.
사진1. 고양시민들이 지난달 12일 덕양산 탐방로를 따라 걸으며 생태조사를 하고 있다. 사진2, 3 모감주나무 꽃과 열매사진4 하늘소는 딱따구리가 좋아하는 먹잇감이다.사진5 둥지를 떠난 아기 소쩍새 삼남매가 덕양산 탐방로 주변에서 어미새를 기다리고 있다.사진6 수변공간에 탐방로가 추가로 조성돼 겨울철새들의 교란이 우려된다.사진7. 덕양산은 주변 생태계가 단절돼 야생 포유류가 서식하기 어려운 환경이다.
덕양산은 주변 생태계가 단절돼 야생 포유류가 서식하기 어려운 환경이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작은 산과 수변부에 탐방로가 너무 많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또 고양의 대부분 산이 그렇듯 덕양산도 주변 생태축이 단절되어 야생 포유류가 살아가기 어려운 환경인 것으로 드러났다. 창릉천 합류 지점인 행주수위관측소 주변에 삵과 고라니의 발자국이 발견되었을 뿐, 산속에 설치한 무인 카메라에는 야생동물이 촬영되지 않았다. 
박평수 사회적협동조합 한강 고양지부장은 “하천과 접한 덕양산은 과거 백로 서식지가 있을만큼 생물다양성이 높은 지역이다. 하지만 부서별, 기관별로 경쟁적으로 수변부까지 탐방로를 만들어 겨울철새 등의 생태계 교란이 우려된다. 야생동물 서식지 보호를 위한 탐방로 정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취재도움=사회적협동조합 한강 고양시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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