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은 방학

[고양신문] 지난 7월의 어느 금요일, 중학교 친구들을 만났습니다. 가끔 단톡방에서 소식을 전하긴 했지만 서로 얼굴을 직접 만나 소주 한잔 기울인 것은 15년 만입니다. 코로나가 가져온 변화에는 유붕자원방래 불역락호(有朋自遠方來 不亦樂呼)도 확실히 있습니다. 월요일부터 마음이 싱숭생숭합니다. 그리운 친구들을 만나니 당연한 감정일 수도 있겠지만 한편에는 나가기 꺼려지는 마음도 있었습니다. 15년의 공백을 단순히 바빴다는 이유만으로 채우기엔 무엇인가 부족함이 있습니다. 우리에겐 무슨 일이 있었을까요? 

15년 전에도 우리는 졸업한 중학교 근처인 마포에서 만났습니다. 정확한 장소는 생각나지 않지만, 이번처럼 돼지갈빗집이 아닐까 강력하게 추측해 봅니다. 제 고향 마포는 지금도 갈빗집이 참 많습니다. 서서갈비의 원조가 마포인 거 다 아시죠?^^

밤이 깊어질 때까지 우리는 부어라 마셔라 했고 그동안 밀렸던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그 당시 각자의 위치에서 가장 바쁘게 살고 있었고 모든 고민의 근원인 인간관계에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지요. 대기업에 다니는 J는 안주 대신 자신을 괴롭히는 상사를 씹으며 연거푸 술을 들이켰고, 대학병원에서 막 레지던트를 끝내고 전문의가 되었던 S는 인턴, 레지던트 시절을 회상하며 요즘 애들을 주제로 푸념이 대단했습니다. 저 역시 새로운 학교에 와서 정신과 약을 먹으며 관리자들과 싸우고 있었으니 분노의 에너지들이 한데 모여 ‘신과 함께’를 7시간 넘게 찍었습니다. 

돌아오는 길, 평소보다 더 무거워진 제 마음을 발견했습니다. 힘든 현재를 잊고 추억 가득한 과거를 이야기하며 위로받길 원했나 봅니다. 날선 이야기들이 새벽 공기와 섞여 저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지금 유지하는 관계도 힘든데, 또 하나의 커뮤니티를 만들어 가는 게 옳을까?’. 추억은 물방울이라서 멀리서 보면 아름답지만 가까이 가면 터질 수도 있다는 생각이 가득했습니다. 그렇게 조금씩 멀어져갔고 시간은 흘러 지금 우리는 그 옛날 마포종점 어느 갈빗집에서 만나고 있습니다. 

서서갈비와 함께 '마포' 하면 연상되는 이미지인 '마포종점' 노래비.
서서갈비와 함께 '마포' 하면 연상되는 이미지인 '마포종점' 노래비.

처음 시작도 그때와 같네요. 서로 얼굴 보자마자 중학교 때와 그대로라고 외칩니다. 어이가 없습니다. 50을 넘은 중년 남자 4명이 35년 전 모습을 서로에게 모두 발견했다고 환희에 차서 외치고 있으니 콜럼버스도 신대륙을 발견할 때 이 정도는 아니었을 겁니다. 

J는 자신이 임원이 되어 상사를 씹지 않지만 고혈압, 당뇨, 오십견을 주제로 먹고 있는 약들을 소개합니다. S는 동료 의대 교수가 쓴 ‘의대 증원의 부당함’이라는 칼럼을 주석을 달아가며 소개합니다. K는 제가 요즘 알아보고 있는 농막 설치에 대한 허가 요건을 세세하게 설명해 줍니다. 그리고 저는 그들을 텃밭 농사를 짓고 있는 ‘자유’ 농장에 초대하고 있습니다. 

12시 신데렐라가 되어 우리는 정확히 11시에 헤어졌고 누구 먼저 할 것 없이 도착 순서대로 단톡방에 너무 아쉽다는 이야기를 남겼습니다. 초대한 ‘자유’ 농장에서의 만남을 기대한다는 말과 함께. 그때는 아쉽지 않았고, 지금은 아쉬운 이유는 무엇일까요?

현재에 대해 무뎌진 마음들이 이제 과거를 이야기할 여유를 갖게 된 것일까요? 아니면 먹고 살 만한 여유들이 날카로운 시선을 무디게 해서 그럴까요? 이것도 아니면 가족 커뮤니티에서 소외된 우리가 동지애를 갖게 된 것일까요? 우리는 왜 이제 모임을 계속 가질 수 있게 되었을까요? 이러한 질문들을 밤 깊은 마포종점에 남기고 우리는 그렇게 헤어졌습니다.  

송원석 일산양일중 교사
송원석 일산양일중 교사

※덧붙이는 글 : 아침에 일어나 생각해보니 철학적 질문들이 어리석어 보였습니다. 왜냐구요? 몸도 마음도 같이 아픈 동질감. 2차에서 먹지 못한 먹태와 맥주 한잔. 이게 진실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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